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은달 Feb 25. 2023

종종 이불킥을 합니다.

그때 왜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하고


지난주부터 계속 계장님한테 깨지고 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러려니 해야지 이유를 생각해 봤자 내 머리만 아프다.


일을 안 한다고 하길래 없던 일도 당겨서 했더니 혼자만 앞서 가지 말란다. 어제는 소장님한테 한소리를 들으셨는지 뉴스 좀 보라신다. 보고 자료에 최신 내용이 없다고.


퇴근하고 집에서 혼자 치킨을 시켜 먹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 10시부터 누웠는데 2시가 넘어서까지 잠들지를 못하다가 기어코 아침 7시에 눈이 떠진다.

한 번 대들걸 그랬나, 싶다.


'일을 하라는 거예요 말라는 거예요! 최신이라니 도대체 뭐가 최신인데요. 보고자료에 들어갈 최신자료라는 게 도대체 뭐냐고요! 계장님도 뭐가 최신인지 모르시잖아요.

일을 안 한다고요? 사무실에 늦게까지 남아서 컴퓨터만 보고 있으면 많이 하는 건가요? 이번주 내내 출장만 하루에 5시간씩 다녔어요. 그러고 민원인들한테 욕만 먹었습니다. 현장에서 실상을 알아보라고 해서 출장을 나가면 사무실에 붙어있지도 않고 싸돌아다닌다고 하고,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으면 나와보지도 않고 책상머리에서 말만 한다고 해요.

저도 보고자료에 쓰고 싶어요. 너무 힘들다고. 출장 좀 줄여달라고. 민원인들도 말 좀 예쁘게 해 주시면 안 되냐고. 칭찬은 바라지도 않아요. 그냥 좀 내버려 두시라고요!'



누구한테라도 이렇게 말했으면 내 속이 좀 시원했을까. 어젯밤에 두 다리 쭉 뻗고 잤을까.

아마 그러진 못했을 거다. 공무원 조직의 골조는 어찌 됐건 상명하복이다. 까라면 까야한다. 라떼보다는 분위기가 많이 유연해졌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까라면 까야한다. 계장님이 한 소리했다고 그 자리에서 부르르 하면 먹고살기 힘든 조직이라는 얘기다.


거절은 명확히 하되 기분 나쁘지 않게 하기. 분노하더라도 욱하지 않기. 자기 목소리를 낼 때는 주도면밀하게 하기. 가끔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 다른 사람의 비난과 충고에 지나치게 마음 쓰지 않기. 이건 비단 공무원 조직뿐 아니라 사회생활을 할 때는 어디서든 필요한 기술이다.



계장님이 뭐라 하면

'과장님이 뭐라 하셨나 보다'

과장님이 뭐라 하면

'집에 무슨 일이 있으신가 보다'

내가 잘못했으면 죄송합니다, 하고 다시 하면 된다. 마음에 너무 담아두지 말고 오늘밤은 푹 자면 된다.




프리시즌이 시작되는 7월부터 시즌이 끝나는 이듬해 5월까지 대략 10개월 조금 넘게 나는 매일 이 생활 패턴을 유지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렇게 10개월을 살기가 쉽지 않다. 솔직히 정말 어렵다. 못 믿겠다면 한 번 시도해 보셔도 좋다. 10개월 내내 저녁 10시 전에 잠자기. 10개월 내내 정크푸드 먹지 않기. 10개월 내내 자유 시간에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쉬기. 10개월 내내 스트레스를 빨리 털고 평정심을 유지하기.

- 손흥민 < 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 중에서




EPL에서 득점왕 하려면 자기 관리가 저런 경지에 올라야 하나 보다. 스트레스를 빨리 털고 평정심을 유지하기 라니, 수도자의 경지 아닌가.


매거진의 이전글 공무원이 하고 싶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