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기간제 근로자가 새로 왔다. 공무원 시험을 치르기 전에 시청을 한 번 체험해보고 싶어서 왔단다.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젊은이를 오랜만에 만나서일까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졌다. 역시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왜 공무원이 되고 싶은 지였다.
왜 공무원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공무원이 되면 좋을 것 같아?
-다른 직업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보다 좋은 직업이 아닐지도 몰라.
-꿈의 직장은 절대 아니야.
등등...
쏟아지는 질문에도 MZ세대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공무원이라고 워라밸이 보장되지 않는 것도 알고 있고, 월급은 생각보다 더 쥐꼬리인 것도 알고 있다. 업무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민원 때문에 머리 쥐어뜯는 것도 안다. 그가 공무원을 희망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저는 이제 저를 그만 증명하고 싶어요. 공무원이 되면 정년까지는 절 증명할 필요가 없잖아요."
요즘 20대들에게 세상은 자신의 쓸모를 끊임없이 증명해내야 하는 증명 지옥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끝없이 설명하고 설득시키고 납득시켜야만 하는 시대. 나의 필요를 증명하지 못하는 순간 낙오될 거라는 거대한 불안 안에 살아가는 세대.
나는 초롱초롱한 얼굴로 선배(가 될지도 모를) 공무원들을 바라보는 사람을 앞에 두고 아무도 자기를 증명하지 않는 조직에서 지내는 것도 만만치는 않을 거라고 짓궂게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나다움을 설명하는 일은 어렵다. 심지어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은 더 어렵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일을 잘 하는지. 이런 증명은 곧 인생 증명과 같아서 토익 성적이나 자격증 같은 것으로는 설명이 안된다. 대한민국 주입식 교육으로는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인생의 답은 사지선다가 아니라 서술형이다. 충분한 양의 방황과 실패없이 내가 누구인지를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은 시련을 통해 단련되고 고독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절망에서 영감을 얻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청년들에게 혼란한 신호를 보낸다.한쪽에서는 아주 작은 실수조차 실패로 몰아가며 루저의 낙인을 찍기 바쁜데 다른 한쪽에서는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며 창조적인 인재상을 들이민다.마치 이리 오라고 손짓하다가 곁에 다가가면 냉정히 돌아서는 부모같다.'다가오지마, 그렇다고 너무 멀리 가지도 마.' 그러면 아이는 가만히 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 모든 것을 증명하다가 나동그라진 청춘들은 하고 싶은 일 대신 하기 싫은 일을 그만두는 미래를 설계한다. 뭐가 옳고 그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깨달은 인생의 진리가 있다면 내가 좋으면 장땡이라는 거다. 반대로 평양감사도 내가 싫으면 그만인 법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떠밀려 공무원이 되지만 않아도 절반은 성공이다.
그는 관리의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빼쩨르부르끄의 여러 관청과 부서를 두루 거치며 출세 가도를 달린 사람이었는데 사실 이 출세라는 것은 중요한 직무를 수행할 능력이 없다는 게 분명히 입증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오랜 근속 연수와 관등 덕에 쫓겨나지 않고 자리를 보존하는 것을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