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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은달 Aug 21. 2023

공무원입니다만, 살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 있었던 몇 가지 일들을 정리하자면 이러하다...






5월에는 정육점에서 썩은 고기를 팔고선 환불을 안 해준다며 민원 전화가 걸려왔다. 바로 정육점으로 가 문제의 고기를 살펴보았다. 고기는 산패하지도 부패하지도 않았다. 갈변되어 있었다. 갈변은 고기에 있는 피가 산소를 만나 색이 변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고기에 문제가 없다는 건 나도 알고 주인아저씨도 알았다. 하지만 민원인은 막무가내였다. 주인아저씨가 뒤늦게 환불을 해준다고 했지만 민원인은 장시간의 실랑이로 감정이 상했는지 환불을 받고도 가게 앞에 쭈그려 앉아있었다. 장사하는 집 앞에 앉아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가게 험담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았다. 돈이야 벌면 그만이지만 동네 장사는 소문이 더 무섭다. 어르고 달래서 민원인을 귀가시켰다.


민원인이 떠나고 나선 주인아저씨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환불원정대도 아니고 돈 대신 받아주러 출장을 나가는 공무원이라 참으로 죄송했다. 환불받은 고깃값은 9900원이었다.






6월에는 국민신문고에 민원이 접수됐다. 민간에서 닭을 불법 도축해서 판매하고 있다는 신고였다. 실제로 나가본 현장은 신고 내용과는 조금 달랐다. 노부부가 시골 작은집에서 닭 10마리 정도를 키우고 있었다. 도축장이 아닌 곳에서 가축을 도축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면이나 읍의 경우 자기가 먹기 위해서 닭을 키우고 잡는 것이 허용되는 예외 지역이 있다. 신고가 들어온 곳이 바로 이 예외에 속했다.


출장을 마치고 민원인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나를 직무유기 및 업무태만으로 고소하겠다고 협박을 했다. 아직까지 고소를 당하지는 않았다.






7월에는 무허가 도축장에서 닭 불법 도축과 판매가 이루어진다는 신고를 받고 출장을 나갔다. 이번 건은 6월의 현장과 달랐다. 누가 봐도 판매를 위해 도축을 하는 곳이었다. 불법 도축은 과태료나 행정처분 대상이 아니라 고발 사안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은 위반 사실을 확인하고 경찰에 수사의뢰를 해야 한다.


현장 점검을 모두 마치고 위반한 법령과 경찰 수사 의뢰 절차 등을 설명하자 피신고인의 태도가 급변했다. 갑자기 자신이 전과자라 소위 빵(?)에도 들어가 봤다는 맥락 없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뒤로 몇 분 간 차마 입에 담기도 무서운 갖은 공갈과 협박이 이어졌다. 살해 협박을 받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길은, 참담했다. 세상에 좌절감이나 절망감을 압도하는 표현이 있다면 딱 그런 심정이었다.





나는 민원업무가 주가 아니기 때문에 민원인들의 폭력에 노출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러나 보통의 공무원들, 특히 민원대 업무를 보는 공무원들에게 가해지는 협박과 위협, 물리적 폭행은 일반의 생각보다 비일비재하다.

사람의 불행에 점수를 매길 수 없듯이 인간의 노동에도 순위를 매길 수 없다. 공무원은 과연 다른 직업군보다 쉬운 업무를 하고 있을까? 국민의 편익을 위해서라면 공무원은 어떤 일을 당해도 당연한 걸까?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공산당선언이 아니다. 어떤 직업이든 그 쓸모가 있고 그 역할이 있으므로 돈이나 명예, 지위와 같은 외피로 직업을 재단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공무원이라는 직업 역시 마찬가지다. 귀할 것도 천할 것도 없는, 그저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직업일 뿐이다. 거대한 소명, 지나친 사명감, 과대해석, 의미확장. 나는 그런 게 싫다......


타인은 지옥이다.
- 장 폴 사르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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