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을 못 마신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안 마신다.
대한민국에서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은 여러모로 불리하다. 술자리는 인간성의 보고이자 사회성의 꽃이다. 쉽게 말해 나처럼 술을 한 방울도 안 마시는 사람은 기분도 맞출 줄 모르는 사회부적응자에 같이 어울리기도 힘든 노잼이라는 뜻이다.
코로나 방역 수준이 하향되면서 나는 매주 회식을 한다. 이번주에도 회식이 잡혀있다. 공무원이 된 지 3년이 다 돼 가지만 회식 때마다 듣는 질문은 동일하다.
- 왜 술을 안 먹느냐
- 진짜 한잔도 못 하느냐
- 먹으려고 노력해 본 적은 있냐
그러고 나서 어디 과 누구도 원래 술을 못 마셨지만 이제는 잘 마신다. 먹다 보면 는다. 술을 안 먹으면 사람들과 친해지질 못한다. 공무원 사회는 인맥인데 나중에 승진도 힘들다. 노력해서 한잔이라도 먹어야지 과장님 국장님 기분 맞춰드릴 수 있다. 기타 등등.
예전보다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잔 돌리기나 파도타기, 무리한 강권은 없지만 이 사회는 여전히 지나치게 개인을 무시하며 술을 권한다.
너무 냉정하고 잔정이 없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지만 하루에 9시간씩 붙어지내는 회사사람들과 굳이 퇴근해서도 만나야 하는지 그것이 첫 번째 의문이요 술을 먹어야만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다는 그 얄팍한 인간관계가 두 번째 의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참 많은 '틀'이 있다. 좋은 인생은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고, 성공하려면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따라야 하고, 잘 나가는 공무원은 술 잘 마시고 접대골프 잘 치는 공무원이다.
인생을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보는 방법은 배워본 적도 없고 배울 필요도 없었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이 방법이 옳으니 이대로만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강요하고 심지어는 타인을 억압한다.
술 안 먹는 공무원으로 버티는 공직의 삶은 버겁다. 하지만 논알코올로도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성공적인 공무원으로 살 방법이 어딘가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