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쏘 Oct 17. 2024

짐작하지 않고 물어보는 사람

알몸인 채로 껴안는 사람

요즘 이 주제에 관해 계속 생각하고 있다. 최근에 깨달은 건, 나는 "짐작하지 않고 물어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짐작하지 않고 물어보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그 위에 애정이 성립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나는. 그래서 나를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나랑 아무리 친밀감을 느낀다고 해도, 상대가 나에 대한 짐작을 내가 발화하는 언어보다 더 신뢰하고 확신하여 내 말을 믿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면, 나는 그 관계에서의 나의 애정과 친밀감이 연기처럼 허공으로 흩어져 버림을 느낀다. 정말 슬픈 일이지만 그렇다. 


이해는 한다. 짐작을 많이 하는 사람의 마음을. 그런 건 상처받기 싫은 마음과 비슷한 걸 거다. 상처받기 싫은 마음이 의심하는 마음을, 의심하는 마음이 짐작하는 마음을, 짐작하는 마음은 짐작을 확신하는 마음을 불러온다. 그런 마음은 갑옷과도 같다. 


그러나 나는 상처받고 싶지 않다고 무겁고 두꺼운 갑옷을 입고 벽을 세울 순 없는 사람이다. 너무나도 취약하지만 알몸인 채로 체온을 나누고자 껴안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껴안는 사람이 갑옷을 입고 있으면 알몸인 나는 갑옷에 긁혀 살갗이 찢어지고 피가 날 수밖에 없다. 상대의 갑옷이 무시무시할수록, 몸부림을 칠수록 나는 더 상처투성이가 된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통을 잘 견디고, 내가 어떤 일이 있어도 껴안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갑옷 너머로 체온이 전해지길 바라면서 아무리 만신창이가 되어도 껴안을 결심을 하기도 한다. 내가 전해주는 체온을 마다하지만 않는다면. 


어찌 되었든, '알몸인 채로 내가 사랑하는 존재를 껴안는 사람'은 내가 인지하는 나 자신의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다. 그리고 그것의 기본은 '의문이 들면 짐작하지 않고 물어보는 태도'다. 나는 앞으로도 짐작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확신하지 않고, 그래서 상대가 주지 않은 상처를 혼자 받지 않고, 물어보고 싶다. 내 맞은편에 있는 사람도 나에게 그래준다면, 물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거다. 


P.S. 같은 맥락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행동이나 말의 의도를 물어보는 것은, 따지고 싶거나 몰아세우고 싶은 게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을 내 안에서 잘못 해석하지 않고, 온전히 느끼고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짐작하지 않고 물어보는 태도"는 내가 누군가에게 존중과 애정, 사랑을 보이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인데, 나는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고 애정을 갖게 되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느끼고 받아들이고 싶다. 그래서 짐작하지 않고 물어본다. 


또한 내가 그렇게 물어본다면, 그 사람도 나에게 진실과 진심을 말한다고 기본적으로는 전제한다. (나는 진실된 사람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기 때문에). 그리고 혹여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이 진실이 아닐지라도, 그러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의지를 가지고 믿는다. 


어쨌거나, 인지하지도 못하는 것을 사랑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묻는다. 상대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 받아들이기 위해, 그리하여 온전히 인지하기 위해, 그래서 결국에는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위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