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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니 Aug 24. 2021

배달되는 업소가 없소.

심플한 고성식 식생활.


고성생활 초기의 일이다. 하루는 붓카케 우동이 너무 먹고 싶었다. 쯔유를 머금은 탱탱한 우동면을 계란 노른자에 톡 찍어 먹는 그 간단한 음식. 하지만 고성엔 이를 하는 음식점이 없을 게 당연지사. 익숙한 동작으로 포털 검색창에 ‘속초 붓카케우동’을 검색한다. 아, 다행히 한곳이 나온다. 설레는 마음으로 리뷰를 검색하는데, ‘가게 내부 사정으로 두 달 정도 쉬어 갑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나온다. 아, 나가리.


그깟 거 안 먹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몇 날 며칠을 머릿속에 붓카케 우동이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방법도 없으니 식당에서 약속한 기일을 꼬박 기다릴 수밖에. 그렇게 ‘붓카케 우동 먹고 싶다~’를 입에 달고 산지 두 달하고 한 달 뒤, 속초의 유일한 붓카케 우동집이 드디어 재오픈했다. 지역 커뮤니티에서 소식을 보자마자 바로 부랴부랴 달려갔다. 인고의 시간 끝에 비로소 우동면을 한 입 풍만하게 넣었을 때의 감동은 그 자체의 맛 때문보다는 아마 성취감이었을 테다. 


강원도 고성에서의 식생활은 매 끼니가 소중하다. 도시에서는 당연시되는 외식과 배달의 범위가 이곳에서는 굉장히 좁기 때문이다. 고성군 내의 ‘읍’ 단위인 간성과 거진은 그나마 식당의 선택폭이 다양한 편이지만, 그 외의 곳들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배달의민족 앱 화면을 첨부한다. 이사 첫날, 생전 처음으로 보는 이 화면을 접한 나의 심정은, 그야말로 어이가 텅. 텅. 텅.


'그야말로 어이가 텅. 텅. 텅.'


‘고성 음식’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단연 막국수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고성 음식’은 분류가 다르다. 원할 때 바로 외식 혹은 배달이 가능한 것이 나에겐 ‘고성 음식’이며, 그렇지 못한 것은 ‘싸제 음식’이다. 떡볶이, 돈가스, 족발, 프랜차이즈 치킨 등은 고성 생활에서는 ‘싸제 음식’이다. 도시에선 평범하기 그지없는 메뉴이지만 나의 고성 하우스에서는 20km 거리의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먼 그대들이다. 그럼 ‘고성 음식’은 대체 뭐냐고? 뭐긴 뭐야, 관광객들 사이에 끼여서 숙취 해소 차 먹는 ‘찐 현지인 메뉴’ 도치알탕, 섭국, 물곰탕 같은 것들이지.


아, 낚시꾼들 많이 오는 동네라고 중국집과 치킨집은 하나씩 있다. 다행히도.


고성 생활 초반에는 ‘싸제 음식’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에선 즉흥적으로 떠오른 어떤 메뉴라도 쉽게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성에서는 다르다. 그렇다고 집에서 그 모든 메뉴를 만들어 먹거나 매번 밀키트를 구비해 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시물이 덜 빠졌던 초기의 나는 거의 매일같이 속초에 나가 음식을 포장해왔다. 하지만 식탁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30분의 시간은 제아무리 불에서 바로 나온 음식이라도 그 온기를 잃을 만큼 긴 것이었다. 다 식어가는 족발, 치킨을 먹는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시골에서 도시와 같은 생활을 따라 하던 나의 꼴같잖은 허영도 희미해져갔다.


배달, 포장 음식을 포기하면서, 속초 대신 집 근처의 마트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침 8시에 일어나서 천천히 걸어가면, 마트가 오픈하는 시간과 얼추 맞았다. 매 끼니가 중요하기 때문에, 매일 잠들기 전마다 먹고 싶은 음식을 선정해 그것의 재료들을 메모장에 썼다. 군것질거리도 미리 사놓아야 했다. 마트는 오후 7시면 닫기 때문에 밤에 야식이 생각나 편의점으로 뛰쳐나가 즉흥적인 소비를 하지 않게끔 말이다. 초반엔 마트에서 간식(?)으로 떡볶이나 파스타 같은 가공식품들을 집어 들곤 했는데, 요즘엔 항상 떡 코너 앞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절편을 살까, 바람떡을 살까, 세상 제일 어려운 선택이다.


전국이 大 배달 시대인 오늘날, 고성에서의 나는 그를 역행해서 살고 있다. 마트 오픈 시간이면 전날 팔고 남은 육류를 할인가로 득템할 수 있는데, 그날은 점심 삼겹살 파티인 날이다. 예전엔 무시했을 지나가는 오징어 트럭도 놓치지 않는다. 만 원에 10마리, 철에 싸게 산 생물 오징어를 손질해 냉동실에 넣으면 마음이 든든하다. 비 오는 날 꺼내 숭숭 썰어 넣으면 막걸리와 잘 어울리는 오징어 듬뿍 김치전 완성이다. 올해 여름엔 코로나도 있고 해서 복날에 생닭을 사와 압력밥솥으로 삼계탕을 도전했는데 꽤나 성공적이었다.


한창 야식이 생각날 시간 밤 10시, 도시에선 굉음을 내는 배달 오토바이들의 레이싱이 펼쳐지고 있을 테다. 반면 개 짖는 소리만 울려 퍼지는 고성의 고요한 밤, 허기진 나는 냉동실에서 기정떡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는다. 화려하지도 풍족하지도 않은 식생활이지만 괜찮다.


어느 날 갑자기 붓카케 우동이 또 먹고 싶어질지라도, 유일하게 파는 식당이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 없으면 안 먹으면 되는 거고. 그래도 먹고 싶으면 내일 만들어 먹으면 되는 거고. 이것이 바로 배달 없는 고성에서의 심플한 식생활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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