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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니 Oct 04. 2021

어머니, 저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생선회 처돌이의 고성에서의 수(水)렵생활.


20대 시절 나의 소원 중 하나는 ‘어부와 결혼하기’였다. 왜냐하면 ‘싱싱한 자연산 회를 실컷 먹을 수 있을 테니까.’라는 꽤나 진지한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그만큼 회를 좋아하고 자주 먹었다. 20대에는 주에 2~3회 정도로 횟집을 갔다. 친구들과 만날 때 약속 장소를 하도 횟집으로만 정하다 보니, 한 친구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아예 옆 가게에서 산 닭강정을 들고 횟집으로 올 정도였다. 가족들이 치킨을 시켜도 나는 오롯이 횟집으로 한 길을 걸었다. 그렇게 자그마치 10년을 양식산 3만원짜리 회를 먹으며 자연산 회를 실컷 먹게 될 미래를 꿈꿨다.


그런데 이 회에 미친 회 처돌이가 동해바다에 왔다. 눈이 돌아가고 말았다. 어디를 가도 다 횟집, 그리고 전부 자연산! 어느 회 센터를 가도 다 자연산 생선들이 살아 헤엄치는데, 어종마저 정말 다양했다. 양식 광어, 우럭만 먹던 나에게 ‘진짜 생선회’ 세상이 열린 것이다. 이제 나는 자연산 생선회를 실컷 먹을 것이다. 하지만 기쁨에 가득 차 회 센터로 달려간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자연산 회 + 관광지 물가의 조합은 엄청난 결괏값을 도출해낸단 사실이다.


자연산 회 小(2인) 10만원


2인이라 쓰여 있지만 두 명이서 한두 점 먹다 보면 느낌이 온다. 회 남은 양을 한번 보니 왠지 느려지는 젓가락 속도, 회는 끝나가는데 밀려드는 허기, 상대방도 그럴 것 같다는 확신… 한두 잔 마시면서도 다음 안주가 걱정돼 밑반찬을 훑는 눈. 그렇게 매운탕 추가를 하게 되는데, 1인분 5천원에 공깃밥 별도. 여기에 상차림비는 또 별도. 매운탕은 라면사리까지 넣어 먹은 후에야 밀려오는 포만감. 횟집에 와서 탄수화물로 배를 채운 것 같은 이 어정쩡한 느낌. 마지막으로 카드와 함께 돌아오는 영수증엔 무려 15만원이 찍히는 엄청난 관광지 물가.


몇 번의 경험 끝에, 나는 도시에선 그렇게 끊지 못하던 횟집을 고성에 와서야 끊게 되었다. 하지만 고양이가 생선을 끊지, 회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생선회 금단현상과 통장 잔고 사이에서 미치도록 고민하던 나의 종착지는 결국 수(水)렵활동이었다.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한 판매자가 쓰던 낚싯대와 릴, 가방 등 온갖 장비를 그대로 샀다. 그러곤 택배가 도착하기까지 열심히 유튜브를 팠다.


낚싯대의 도착과 함께 고성에서의 수(水)렵생활이 시작되었다. 낚싯대는 크게 원투낚시용과 루어낚시용으로 나누어지는데, 원투낚시를 쉽게 설명하자면, 어르신들이 지렁이를 단 낚싯대를 휙 던져 놓으신 다음에 고기 구워 드시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반면에 루어낚시는 가짜 미끼를 달고 쉼 없이 팔을 휘젓는 낚시인데, 나는 이를 택했다. 이유는 간단히 ‘지렁이를 만지고 싶지 않아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게, 지렁이 만지는 것도 무서워하면서 파닥거리는 생선은 어떻게 만질 생각을 했는지 웃길 따름이다. 쨌든 나는 도착한 장비를 들쳐매고 집 앞 해변으로 몇 날 며칠을 연속해서 나갔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생초보의 루어낚시는 모조리 실패했다. 한 달 정도 지나니 약이 올랐다. 장비 다 합쳐서 15만원을 줬는데, 노 스코어(No score)라면 차라리 횟집을 가는 게 나을 뻔했지 않은가. 내가 어떻게든 잡고 만다라는 생각으로, 오픈채팅에 들어가 낚시 조언을 이것저것 구했다. 옾챗방 사람들이 말하길, 초보는 지렁이로 하는 원투낚시가 더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중고거래로 원투 낚싯대를 샀다. 지렁이 중에 고급이라는 ‘혼무시’도 사서 끼웠다. 이쯤 되면 지렁이 만지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혼무시'라는 고급 채비에도 결과는 또 꽝이었다.


나는 옾챗방에 원투낚시의 장렬한 패배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근처 사는 한 남자분이 낚시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조력자를 얻게 되었다.


“지금이 도다리 시즌이거든요. 한 4짜 잡으면 둘이 충분히 먹겠네요.”


그러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도 이른바 ‘장비빨’ 낚시를 하는 사람이었고, 내 중고장비로는 그도 그저 낚린이 수준이었다. 그는 도와주러 왔는데 꽝을 친 창피함+오기를 충전한 채로 다음을 기약하며 퇴장했다. 그리고 그 다음은 그리 멀지 않았다.


며칠 뒤, 그 조력자는 본인의 집에서 잠자고 있던 온갖 고가의 장비들을 가지고 나왔다. 이제는 조력자도 ‘알려주는 것’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었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이 더 중요해 보였다. 그렇게 그와 나는 가끔 입질 상황이나 물으며 서로 1인 낚시에 몰두했고, 또 꽝을 쳤다. 이제는 그도 나도 오기가 서렸다.


그렇게 만나서 전투 낚시를 하던 그 조력자와 나는 아직도 같이 낚시를 다니고 있지만, 둘 다 여전히 노 스코어다.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지금 그 조력자는 나의 남편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부와 결혼하기’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어부 대신, 생선 대신, 지금의 남편을 낚으려고 모든 어복을 다 쓴 걸까. 여전히 입질이 없는 낚싯대를 접고, 남편과 한잔하며 (사)먹는 회가 가장 맛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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