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부부의 고성식 취미생활
결혼식을 올리기 몇 달 전, 친정 엄마가 나와 남편의 신혼집에 다녀와서는 남편 몰래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네 남편 될 사람… 장난 아닌 것 같다.”
“응? 왜?”
“너네 집에… 나 그거 봤어… 그게 어디 보통 사람이 하는 일이니?”
“아 그거… 나도 그냥 그러려니 해.”
“얘…그걸 보고 있는 너도 보통 아니다...”
그날 친정 부모님이 본 것은, 일반 가정집에 있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심지어 신혼집에선 더 그렇고. 친정 엄마를 기가 차게 만든 그것은 바로, 남편의 당시 최고의 심혈을 기울인 작품, 수경재배 파이프라인이었다. 아마 쉽게 상상이 되지 않을 분들을 위해, 당시 친정 엄마가 본 것을 첨부한다.
왜 이 사단이 났을까. 때는 이년 전으로 돌아간다. 식욕과 호기심이 가장 활발할 나이 30대, 남편의 최대 고민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삼겹살을 집에서 먹을 때 상추, 깻잎이 꼭 먹다가 부족한 게 아쉬워.”
저녁식사로 삼겹살을 사와 집에서 구워 먹은 날이었다. 그날 하필 쌈 채소를 평소보다 적게 사 왔나 보다. 입가심으로 맥주를 마시던 남편이 내가 손이 너무 작다며 툴툴거렸다. 그렇다면 나도 할 말이 있었다. 쌈 채소는 거의 나만 먹지 않는가.
“그렇긴 하지… 그런데 오빠는 쌈 잘 안 싸 먹잖아.”
“아니.. 여보가 채소가 떨어지면 고기를 잘 안 먹더라고.”
이런, 내가 먹는 양까지 살피는 이 달콤한 툴툴거림이라니. 살짝 감동한 나는 방심해버렸다. 그래서 그저 웃으며 애초에 많이 사 오겠다고 답해버렸다. 하지만 그 답은 전혀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좋은 해답’이 아니었다. 남편은 이미 ‘쌈 채소 부족 사태’를 '어떻게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한참의 침묵 후 남편은 말했다.
"식물을 직접 키워보고 싶어. 시간을 좀 줘.”
나는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이렇게 수경재배의 서막이 올랐다.
*안 읽어도 되는 수경재배에 대한 설명
보통 수경재배는 넓은 부지의 전용 비닐하우스 안에서 물을 사용해 농사를 짓는 방법이다. 엄청나게 긴 파이프 윗부분에 구멍을 몇 센티 미티 간격으로 뚫는다. 그 구멍마다 화분 대용의 플라스틱 통을 꽂고, 그 통 안엔 흙 대신 물을 흠뻑 흡수할 스펀지를 끼워 놓는다. 그다음 씨가 발아된 식물을 심고, 뿌리가 내려온 파이프 하단 부분에 물이 차게끔 만든다. 그 후 공업용 모터를 돌려 물을 순환시켜 물이끼가 끼지 않게끔 해준다. 이후 물에 식물 영양제인 배양액을 섞어 돌린다. 흙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 물로만 식물을 키워내는 ‘전용 비닐하우스’에서 사용하는 경작 방식이다.
다음날 곧장, 남편은 철물점으로 달려가 4m짜리 파이프를 샀다. 그러곤 바로 그곳에서 톱을 빌려 1m씩 자르기 시작했다. 바로 앞에 차를 세워둔 탓에 조수석에서 나는 그것을 직관할 수밖에 없었다. 20분 후, 1m짜리 파이프 네 개를 안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차로 걸어오는 모습에 나는 조금 걱정했다. 이 사람.. 제 정신은 맞겠지..?
이후 남편은 더욱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플라스틱과 스펀지, 호스, 모터 등 필요한 부품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그러곤 각종 부품이 도착하기 일주일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파이프를 들고 아파트 공터로 나가 파이프에 구멍을 뚫고는 돌아왔다.
조잡하게 구멍 뚫린 파이프와 도착한 각종 부품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준비물은 물을 저장할 알맞은 사이즈의 아이스박스였다. 남편은 마음에 드는 아이스박스를 찾기 위해 며칠 연속 분리수거장에 나갔다. 재활용품 수거차가 오기 전에 가지고 와야 했으니, 새벽에 눈을 뜨면 부리나케 분리수거장으로 뛰쳐나갔다. 그러길 며칠, 남편은 드디어 찾았다며 아이스박스를 소중히 안고 아주 신난 얼굴로 뛰어 들어왔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나도 응원해 주고 싶어졌다.
남편은 좁은 베란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파이프를 실리콘과 테이프로 이어 붙이고, 호스를 넣어 땜질을 하고, 타이머를 맞춰 펌프 모터가 돌아가며 물을 순환시키는 시간을 설정했다. 일단 파이프라인이 구색을 갖췄다. 그다음, 우리 둘은 거실에 마주 앉아 화분과 흙을 대신할 플라스틱과 스펀지를 가위로 열심히 오렸다. 또, 그 안에 심을 각종 모종을 사와 씨를 발아시켰다. 그중 대다수가 초급자의 엉성함에 싹을 틔우지 못했지만, 몇 개의 씨들은 건강하게 자라났다. 우리 집에서 생명이 싹 트는 첫 순간이었다.
시작 한 달 만에야 완성된 파이프라인을 앞에 두고 우리는 첫 전원 버튼을 누른 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작동되는 것을 지켜봤다. 하지만 5분 뒤, 베란다에는 홍수가 일었다. 파이프와 호스를 땜질한 곳 사이사이로 물이 터져 나왔다. 플라스틱 화분 사이로도 물이 넘쳐흘렀다. 우리는 망했다!!!고 소리 지르며 수건을 가져와 정신없이 바닥을 닦았다. 남편에겐 쓰라린 첫 번째 실패였다. 이후 남편은 오랜 시간 동안 파이프라인 보수에 들어갔다. 나 또한 거실을 나올 때마다 상태를 살피며 보초를 섰다.
3개월 뒤, 마침내, 남편은 수경재배 제1호를 완성시켰다. 이제 손을 대지 않아도 상추와 깻잎은 쑥쑥 자라났다. 밭농사 한번 지어보지 못한 남편이었지만, 수경재배로 성공적인 농사 데뷔를 치렀다. 하루하루 커가는 식물들을 보면 마음이 충만해졌다. 왜 어르신들이 소일거리로 농사를 짓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베란다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다가 쌈 채소가 떨어지면, 등을 돌려 곧바로 상추, 깻잎을 따다가 싸 먹었다. 남편이 원했던 ‘쌈 채소 부족 사태의 근본적인 해답’이 여기 있었다. 즐거운 생활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식물들이 너무 빨리 큰다는 점이었다. 깻잎과 상추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가면서, 주 2회 삼겹살을 먹어도 상추와 깻잎이 남아돌았다. 그때부턴 상추겉절이와 깻잎지 등 만들 수 있는 요리란 요리는 다 해 먹었던 것 같다. 바질과 레몬밤도 키웠었는데 그것들을 처리하기 위해 샌드위치도 인생에서 제일 자주 먹은 때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차 수경재배는 이사를 위해 막을 내리고 분해되었다. 식물들의 뿌리를 뽑아내며 남편이 얼마나 안타까워 하던지. 완전히 애완식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1년 뒤, 남편은 다시 파이프를 꺼내 들었다. 이제는 훨씬 안정적이고 빠르게 완성이 되었다. (사실 이번엔 플라스틱과 스펀지는 DIY로 안하고 그냥 샀는데, 노동력 대비 그게 더 싸더라…)
어쨌든! 더 커졌다! 더 길어졌다! 다시 돌아온 수경재배 제 2호를 소개한다!
가정 수경재배에 충격을 받았던 친정엄마도 지금은 2호 사진을 보여주니, 저번보다 튼튼해 보인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쌈 채소를 좋아하는 나를 위한 남편의 달콤한 배려가 식물을 길러내는 아름다운 취미를 가져다주었다. 오늘도 우리 2호의 식물들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중이다.
* 짧은 비하인드스토리
1호를 키우며 문득 생각이 났다. 왜 남편은 흙 재배를 먼저 시작하지 않았을까. 베란다에서 작은 화분으로 키우는 것이 베란다가 물바다가 되는 것보다는 손이 덜 갔을 텐데 말이다. 나는 홍수가 일어난 베란다를 마른 걸레로 닦아내며 왜 흙이 아닌 물로 재배를 시작했냐 물었다. 그리고 남편의 대답에 뒤이어 나는 깨달았다.
“아, 흙은 벌레 생기잖아~ 전부터 수경재배 쌈 채소 먹어보고 싶더라고.”
내가 잠깐 그 달콤함에 속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