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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김민섭 Jul 09. 2022

수용하는 마음이란


수용은 무엇이든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이 순간을 바꾸기 위한 그 어떠한 시도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관조하고 있는 그대로 놔두는 것이다. 수용을 한다고 해서 현실이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니며 불쾌한 것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 친절하고 긍정적으로 변하지도 않으며 하루 아침에 세상이 개벽하지도 않을 것이다. 심리적 고통은 그대로 남아 있으며 날이 갈 수록 더더욱 나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심리적  고통(pain)과 심리적 괴로움(suffering)은 다르다. 심리적 고통을 수용하게 되면 그 고통은 여전히 고통이지만, 심리적 고통을 수용하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 하게 된다면 그 현실을 견딜 수 없어 점차 더 괴로워진다. 고통을 수용하면 괴로움은 적지만, 고통을 수용하지 않으면 괴로움은 배가 된다.



수용은 지금 여기에서의 현실이 지금 여기에서의 현실이었어야 한다는 당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 현실을 선호하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니며 그렇게 된 것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여 현실에서의 고통과 그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고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대체로 수용과 변화는 동시에 일어난다. 수용없는 변화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현실을 수용한 상태에서만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한 행동을 할 수가 있다. 현실을 존재 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적절한 인식이 생기고 괴로움에 시달리지 않은 채 변화를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변화시킬 수 없는 상황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수용한다고 하여 어떤 문제의 더 나은 해결책을 찾기가 어려울 때가 있으니 말이다. 이럴 때는 마음챙김과 반대행동을 통해서 감정의 반응 정도를 조절하려는 시도를 해볼 수 있다. 마음챙김은 자신의 마음을 관조하며 멀찍이 떨어뜨려 놓는 연습이며 반대행동은 조절하기 어려운 자신의 감정과 의도적으로 반대되는 행동을 하며 (실제의 자신도 그렇게 되길 바라며) 감정을 조절하는 연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마저도 어렵다면 그 어려운 상황을 좀 더 낫게 느낄 수 있도록 고통을 감내하는 방법을 연습할 수도 있다. 고통을 감내하는 방법을 연습한다면 고통 자체는 불변하지만 그로 인한 심적인 괴로움은 둔화될 수 있다. 즉, 수용한 그 현실의 변화 가능성이 없다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른 각도에서 현실에 대해 바라보거나, 마음 챙김, 반대행동, 고통 감내 등을 해보는 것이다. 



그다지 좋지 않은 선택은 고통스럽기 때문에 비참하게 지내고 괴로워지는 것이다. 수용할 수 없는 현실에 분노감이 느껴지니 그 현실과 그에 따른 감정들을 회피하기 위하여 화를 내고, 욕설을 하고, 폭음을 하고, 자해를 하는 사례는 일상에서 매우 흔하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이러한 반응들 자체가 추가적인 고통과 그로 인한 또다른 괴로움을 야기하기도 한다. 변화할 수 없는 현실에 마주했다 수용없이 변화나 해결을 시도하다 오히려 더 큰 절망감을 느끼고 충동적으로 상황을 더 악화시키게 되는 사례는 생각보다 흔하다.



수용은 현실을 받아들여서, 변화시키거나, 다양한 각도로 재고하거나, 관조하거나, 그마저도 어렵다면 감내하도록 돕는다. 불수용은 현실과 싸우게 만들고 스스로를 절망으로 밀어넣고 효과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앗아간다. 사실 삶은 심리적 고통의 연속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다양한 고난을 겪을 수 밖에 없고 심리적 고통을 어떤 식으로든 겪게 된다. 대신 그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적절히 수용한다면 그 고통은 고통으로만 남을 것이다. 결국 정신과에서의 치료라는 것은 이러한 수용, 변화의 패러다임 위에서 다양한 측면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변화시킬 수 있도록 혹은 감내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것이다. 









https://blog.naver.com/minseobkim_md/222803393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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