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들에 대해서 왜곡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믿음들로는 감정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다거나, 다른 사람들이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걸 눈치챈다면 비난하고 평가 절하할 거라거나, 내가 정신적으로 나약하기 때문에 이따위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거나, 내가 지금 느끼는 우울,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은 생겨나는 즉시 없애버려야 한다거나 하는 것들입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이러한 사소해보이는 왜곡된 믿음 탓에 상상 이상의 막대한 괴로움을 겪습니다. 그 어떤 부정적인(나쁜) 감정들도 받아들일 수가 없고, 그 감정이 생겨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현재나 미래의 상황에 매우 나쁜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때문에 그것들을 최대한 억누르거나 없애버리려고 애씁니다. 내가 이런 감정을 겪다니, 난 역시 이상하고 유별나게 예민한 사람이고 결함이 있는 사람이야, 라는 식인 것이죠.
이러한 인식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과오에 대해서 돌이켜 보게 만들고, 더욱 더 염려하고 걱정하게 만들며, 그 어떤 부정적인 느낌의 기미라도 있는 일들과는 일절 엮이지 않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부정적 감정을 일으킬 수 있는 여지라도 있는 일들을 모조리 회피하게 합니다. 부정적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 자체에 죄책감이 들기 떄문에, 자기 자신에게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는 부정적 자기상이 강화되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부정적인 감정들을 겪고 있는 자기 자신을 욕하고, 감정 자체를 마비시키기 위해서 폭음, 자해, 폭식, 인위적인 구토 등을 하는 행동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역설적이지만 이것이 단 시간에 마음의 평안을 얻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대처 방법들은 궁극적으로 감정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수가 없고 오히려 그 감정들을 자기 혐오 혹은 부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매개로 하여 더욱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이는 곧 자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나 자기혐오가 우울, 불안, 신체적 각성도의 증가, 공황,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유발하게 해서 이 부정적인 감정들과 샅바 싸움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합니다.
이것은 실제의 삶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속에서 과거의 자신과 싸우며 삶을 보내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정서에 대한 무력감을 만들어냅니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고 잘못되었거나 결함이 있는 인간인지에 대한 확증적 증거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지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음 속의 사건들이 거듭될 수록 사람들은 우울과 불안의 늪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됩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느낀다는 사실 때문에 자기 자신이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 그를 잊거나 피하려고 자해, 폭식, 구토, 폭음, 과 같은 문제 행동을 하고, 그러다 보니 자기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점차로 강화되고 그러다 보니 부정적 감정이 더 많이 느껴지는, 연쇄적 악순환의 고리가 돌아가기 시작한 상태가 우울장애가 불안장애의 심리적 발생 기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스티븐 헤이즈는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제가 길게 적어놓은 이 글의 내용을 가장 간결하게 표현하는 좋은 문장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부정적 감정들을 굳이 없애든지 약하게 하려든지 하는 등의 "내 마음과의 샅바 싸움"은 놓아두고 실제의 삶 속에서 지금, 현재의 물리적 환경과 심리 상태에 집중하라는 의미니까 말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두가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돌아가도록 응원하겠습니다.
태평로에서.
정신과 전문의 김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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