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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김민섭 Jul 10. 2022

그랬어야만 했던 건 없다.


사람들은 자연에서 갖가지 아름다운 현상들을 목도한다. 그리고 그 현상이 언제인가부터 그랬어야만 하는 것들로 둔갑하는 지점이 생겨난다. 예컨대 남성과 여성의 정신적, 육체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은 자연적 사실이다. 남성이 여성보다 키가 더 크고 체중이 더 나간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관찰된다고 하여서 남성이 여성 보다 키가 더 커야 한다거나 체중이 더 나가야 한다거나 하다는 당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남성이 당연히 공감 능력은 더 떨어져야 하지도 않으며 어떤 현상을 체계화시키려는 경향이 여성보다 더 강해야 하지도 않은 것은 물론이다.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사실들을 조합하여 여자는 사회생활을 하면 안 된다는 식의 주장이 합리화될 이유도 없다. 당위 비약하고 그 근거 없는 당위를 중첩한 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떤 현상이 존재한다 하여 반드시 그게 되어야 한다는 것 당연 게 아니다. 이러한 현상의 당위로의 비약자연주의의 오류라고 한다. 그랬다고 해서 그랬어야 할 이유는 없다.


DNA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했던 크릭은 신생의 유전적 자질을 검사해서 열등한 경우 인간으로서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크릭의 생전 발언들을 고려하면 자질이라는 단어아마도 지능을 의도하고 쓰인 것 다. 지능이 유전되는 것인가에 대한 과학적 논쟁은 제쳐두고 (그 명제가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생각해보자면, 이 역시 전형적인 자연주의의 오류가 내포된 말이다. 지능은 유전되는 경향이 있더라는 현상과 좀 더 생존에 적합한 종이 살아남아 진화해가더라는 다윈의 발견한 적자 생존이라는 현상이 결합되어, 우수하지 않은 자질을 보이는 인간은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아야 한 죽어야 한다는 당위, 그래서 적자생존이라는 현상이 인위적으로 촉진되어야 한다는 당위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다. 전형적으로 현상을 당위로 착각하는 오류다. 이러한 논리의 흐름에 기반한 오류의 범벅을 우리는 우생학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도덕주의의 오류라는 개념도 있다. 이는 거꾸로 당위를 사실로 비약하는 경향에 대한 기술이다. 남녀가 평등해야 한다는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사회의 윤리 기준에 대해서 그 누구도 쉽게 반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남녀가 평등하기에 남성과 여성의 평균적인 키와 체중은 동일해야 하며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도 비슷해야 할 것이며 남성이나 여성이 특별히 더 뛰어난 분야없이 모든 분야의 인지 능력이 동일해야 한다는 것은 틀린 것이다. 인종은 평등해야 하기에 모든 인종의 평균적 체력과 신체 조건은 동일하게 측정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은 데이터는 오류라고 한다면 아마도 비웃음을 살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고전적인 논리적 오류들이 학계에서나 언론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정신과 진료실에서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사실과 당위를 혼동하는 경향을 타고나는 것 같다. 인간의 뇌는 자연주의의 오류나 도덕주의의 오류를 범하려는 자연적 경향을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어떠한 가치판단도 불가능하기에 별다른 당위가 성립하기 어려운 "자연 현상들의 단순한 중첩"이라고 볼 수 있는 상태에서 인간은 사회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적 현상들이 관찰되고 별다른 무리가 없는 한 원래 그랬어야 하는 양, 어느 새 그 사회적 현상이 당위로 변하여 받아들여져왔다. 예를 들자면 사회적 이타성을 갖고 있는 인간들은 그 속성 상 자연스레 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끼고 그에 따라 대체로 국가에 충성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어려운 이를 궁휼히 여기는 속성을 갖고 있고 별다른 예외가 없는 한 이러한 경향이 사회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렇게 광범위하게 관찰되는 행동들은 어느 샌가 당위성을 띤 명제로 변경되기 일수다. 국가에 충성해야만 하고 가족을 사랑해야만 하고 어려운 이는 궁휼히 여겨야만 하도록 변한다. 우리도 인지하지 못 한 채 어느 샌가 현상을 당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실 그 누구도 반박할 이유도 없고 당위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딱히 문제가 될 소지가 없는 명제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신과 진료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이들에게 당위적 명제들일상적 상황에서 심리적 괴로움을 가중시키는 덫이자 폭력으로 작용하는 순간들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충분히 공감적 양육을 받지 못 한 정도가 아니라 외려 감정적인 학대를 당하거나 감정적으로 트라우마를 가중시키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성장한 이들은 자신의 부모에 대해서 미움이나 분노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거나 표현할 매우 충분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차별 대우를 당한 것 같은 막연한 경험 부터 폭력적인 양육 환경에 놓였거나 성적인 착취를 당했거나 혹은 버림받았거나 하는 극단적인 경우까지 모두 그러기에는 충분히 타당하다. 누군가가 나를 적절하게 대우하지 않으면 싫은 마음이 올라오는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부모기 때문에 애틋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고 말이다. 미운 마음과 애틋한 마음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 이 두 마음이 공존하는 현상은 배격당할 이유 없다. 이는 아주 오래 전 부터 발견되어 왔고 양가감정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자연스럽기 그지 없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들에서 자연주의의 오류에서 비롯된 잘못된 당위가 사람들을 괴롭게 한다. 게다가 이 잘못된 당위가 도덕주의의 오류로 인해 잘못된 현상을 강요하며 나 자신을 나답다고 여기지를 못 하게까지 만든다. 자기가 어떤 인간인지에 대한 느낌까지 희미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나라는 인간은 (자연주의의 오류에 기반한)"당위를 어긴" 까닭에 죄책감을 겪게 되고, (도덕주의의 오류에 기반한 잘못된 현상의 강요로 인해) "내가 도대체 어떤 인간인지도 모르겠는" 느낌을 받게 되어서, 내 자신에 심각한 결점들이 있고 심지어 자기가 어떤 인간인지 잘 모르겠단 생각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부모를 전적으로 사랑해야 마땅한데 나는 그렇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으니 큰 하자가 있다. 이걸 없애야 한다." 그리고 "가족들을 서로 사랑해야 마땅하기 때문에 나는 (나를 학대한) 부모에게 사운한 마음은 전혀 없이 전적으로 사랑하고 있다."와 같은 실제 현상과 다른 현상에 대한 인식이 생긴다. 이는 자신을 덮쳐오는 정서적인 덫이다.


자신이 겪고 있는 자연스러운 마음 속 현상에 반대되는 당위의 딱지가 붙을 때 마음의 고통(pain)이 괴로움(suffering)으로 바뀐다. 마음 속에서 상황, 감정, 생각의 당위와 현상을 구분하는 연습을 하는 것은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간 모두에게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가까운 누군가 잃었는데 생각보다 슬프지 않아서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가정해보자. 이럴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은, 가깝게 여기지 않을 이유도 많았는데 사회적으로 가깝게 여겨야 할 것 같아 스스로를 강요했을 가능성(당위에 기반하여 현상을 변조하는 도덕주의의 오류), 가까운 누군가를 잃으면 반드시 자신의 일상 생활이 무너질 정도의 극도의 슬픔이 몰려와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 당황했을 가능성(현상을 당위로 변조하는 자연주의의 오류)이다. 이에 대한 검토는 상황과 생각과 감정으로 인해 마음이 괴로울 때는 물론이거니와 그렇지 않을 때도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


최근 미국과 서유럽의 정신치료에서는 선불교의 전통에 기반한 "수용"의 개념이 강조되고 있다. 상황이나 감정이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비판단적으로 받아들이고 집중하는 태도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개념이 정신과 진료실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까닭 중 일부는, 자연주의나 도덕주의의 오류의 관점에서 잘못된 당위를 스스로 강요하거나 그에 따라서 현상을 반대로 오인하는 오류를 최대한도로 좁히고, 현상을 단지 있는 그대로의 현상으로만 볼 수 있도록 하여,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당위와 실제적 현상을 뚜렷이 구분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데 빚을 지고 있다고 본다. 사실은 수용이라는 서구에서 각광받는 선불교적 개념에 대한 특별한 인지가 없더라도, 경험많은 능숙한 정신과 의사의 진료실에서는 감정을 아교 삼아 이유없이 붙어있는 마음 속의 "당위"와 "현상"의 연결을 정교하게 잘라내고 구분해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는 작업이 이뤄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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