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인간의 생각을 나타내는 소중한 선물이다. 상대방을 신뢰할 수 있을지 짧은 시간에 판단해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그의 말에 의해서인 것 같다. 말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나타낼 수 있기에 반대로 이런 말의 중요성을 알아버린 사람 중에는 말만 잘하여 마음을 숨기는 경우도 있다. 나도 이런 것이 있는 줄 몰랐는데 우연히 ‘대화법’이라는 수업을 듣고 알게 되었다. ‘대화법’이란 말로 소통을 잘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문인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말이 갖는 의사소통의 고마움을 갖기도 하지만 오해와 갈등을 겪기도 했는데, ‘대화법’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잘 나타내고 싶어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S가 그동안 나에게 ‘대화법’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전에 고등학교에서 상담을 많이 해 보아서인지 말을 잘 들어주는 친구였다. 그런데 간혹 말은 맞지만 마음의 소통이 잘 안 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나를 좋아해 주는 친구여서 편하기는 했지만, 본인의 생각을 잘 나타내지 않고 나에게만 일방적으로 맞추어 주니 그렇다. 그렇다고 크게 나쁜 기억이 없는 것 보면 그것도 ‘대화법’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대화법’은 이런 경우에 쓰면 좋다고 한다. 잘 되지 않는 일이지만, 자녀와 대화할 때 부모가 자녀에게 즉각적으로 훈계를 하기보다 자녀의 기분을 살피어 상태가 좋을 때 짧게 전달하여 서로의 실수를 최대한 줄여주는 것이다. 혹시나 해서 아들에게 써 보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화가 나서 감정적으로 얘기할 때 보다 아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아서 그런지 문제가 쉽게 해결되었다. 마치 마법 같았다. ‘대화법’에서는 이 부분을 ‘게임’이라고 칭하는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실제로 이런 일들이 많다. 이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상대가 알고 있는 것이 다른 데서 오는 차이다. 예를 들어 식탁에서 남편이 더덕을 먹고 막 화를 낸다고 하자. 이 시점에서 게임이 작용하고 있다. 아내는 더덕을 요리하기 위해서 어렵게 주문했고, 건강을 위해 신경을 써 주었는데 남편이 화를 냈으니 참을 수가 없다. 반면 남편은 더덕에 대한 나쁜 추억이 있었다. 아내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실은 어릴 때 더덕을 캐러 산에 갔다 죽을 뻔했던 기억에 더덕을 아주 싫어하게 된 것이다. 이런 각자의 상황을 모른다면 나쁜 감정만 오고 갈 수 있지만 대화법을 아는 아내라면 그 상황을 그냥 넘기고 나중에 대화로써 풀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게임’은 내가 사는 동안 피할 수 없는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내가 상대를 잘 알고 있고 상대도 나를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은 이런 사람인데 나를 안다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하는 서운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결국 ‘알고 있다’는 차원에서 벗어나 ‘잘 모르는 상태’에 와서야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때 마무리는 대화로 이어주면 된다.
결국 대화가 어려운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하는 고집에서이다. 현대인들은 옛날보다 공부도 많이 하고 전문지식을 손쉽게 다룰 수 있기에 사람 마음조차도 그럴 것이라 착각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화가 난다는 것은 내 입장에서는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어쩌면 상대를 쉽게 판단하거나 잘 모르는 것에 대한 분노 일지 모른다. 그러나 다 알 필요도 없다. 왜냐면 실은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를 때가 있기에 처음으로 돌아가 ‘모르는 상태’에 해당하는 마음만 찾을 수 있다면 모든 문제의 해결점은 보일 것이다. 그렇기에 ‘대화법’은 말이 아닌 마음 조절 공부이고, 말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책임감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로 인해 상처받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말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가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누구든 말을 할 땐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냥 흐르는 강물처럼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대화법’이 따로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자연의 큰 사랑을 알고 있지만 스스로 자신만 옳다고 하는 작은 마음에 휘둘리기 쉽기 때문에 사이좋은 관계 유지를 위하여 ‘대화법’을 쓰는 S라는 친구가 실은 오래가는 좋은 친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은 네 번씩 자신을 탈바꿈하며 성장하지만 한결같다. 나도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강물 같은 마음이 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