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y Feb 18. 2022

차 마시는 시간 Afternoon Tea

 “이번에는 같이 가자!”

 

 교회에서 아들이 다른 아저씨 집사님을 아빠로 여기고 따라다녔다. 그 집에는 아들과 동갑인 딸이 있었는데, 어느 날 아들은 양반다리로 앉아있는 집사님 다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아빠한테 하던 행동인데, 아저씨 집사님도 잘 받아주셔서 다행이고 아줌마 집사님과 딸도 싫어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전에 교회에서 아들이 계단에서 떨어졌을 때, 그 집사님이 구덩이에서 구해주셨던 것 같다. 6살인데도 창피한 것은 알았는지 아프다는 말도 안 하고 먼지만 털었고, 그때부터 아들은 집사님을 따랐다. 이런 이유로 남편은 출장 갈 때, 아들과 나를 가끔 데리고 다니게 되었다. 아들이 다른 사람을 아빠로 여기는 것과 동료를 심장마비로 떠나보내고 난 후의 일이다.

 

 남편은 한국 회사에 있다가 외국회사로 갔기에, 주로 아시아 담당이다.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 인도, 캄보디아, 파키스탄, 중국, 대만, 태국, 필리핀 등에 주로 다녔다. 그중 계약이 거의 성사된 나라로 함께 갔던 홍콩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2주 정도의 계획으로 주말만 같이 다니고, 나머지는 따로 다녀야 했다. 출장을 따라가는 것이라, 주위에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며 다녀야 하기에 횟수는 많지 않다. 남편이 힘들게 일하는 동안 즐겁게 놀러 다니는 것도 미안하고, 일이면 일, 여행이면 여행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아이라 오래 걷지 못해, 신경 쓰다 보니 여행답지 않은 여행이 된 것이다. 

 홍콩에 도착하여 이틀째 되는 날 문득,

 

 “홍콩에 뭐가 있지?”


라 생각하게 되었다. 디즈니랜드가 있다는 것 외에 미리 알아보지 않았다. 그래도 엄마이기에, 아이가 좋아할 만한 곳만 찾아봤던 것 같다. 그 외에는 주말에 남편이 알아서 한다기에, 그 말만 믿고 있었다. 그런데 기왕 이런 곳에 와서 숙소 안과 주변만 다니면 안 될 것 같던 터에, 로비에 있는 관광 안내서를 보게 되었다.

 

 애프터눈 티

 

 ‘아이를 위해서는 디즈니랜드, 나를 위해서는 애프터눈 티 Afternoon Tea를 가면 되겠다.’

 

 택시를 타고 페닌슐라 호텔로 갔다. 이 호텔에서 애프터눈 티가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고 했기에 기대를 하며 도착해 보니, 역시 영화에나 있을 장소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홍콩에 있는 홍차 입장에서 보면 홍차는 원래 중국에서 시작했지만, 돌고 돌아 애프터눈 티로 영국의 문화가 되었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은 지금 중국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이니 제자리로 온 셈이다. 그러니 홍콩에서 마시는 홍차는 뭔가 역사의 한 부분 같다. 6살 아들도 여기저기를 보며 입이 벌어진다. 그런데 미리 알아보지 않고 왔기에, 하마터면 못 들어갈 뻔했다. 시간도 정해져 있고, 정장을 입어야 한단다. 반바지에 샌들 차림은 입장 불가일 것이겠지만, 이럴 땐 그냥 뻔뻔해지기로 했다. 그랬더니 지배인이 윙크하며 들여보내 준다. 옷을 잘 차려입어야 서비스가 좋을 것 같지만, 대충 입은 우리한테도 친절하게 대해준 것이 놀라웠고, 오케스트라 생음악이 있어서 분위기가 좋다. 여행이란 미리 계획해서 오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저녁에 남편이,

 

 “오늘은 어땠어?”


라고 피곤한 표정으로 물어보는데, 아들이,


 “사과 주스 정말 맛있었어요.”라 하기에 다행이다 싶었다. 왜냐면 오늘 간 곳은 안 온 것으로 하고 다음에 또 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마음에 드는 차 마시는 시간이었다. (*)


작가의 이전글 따뜻한 기억은 힘이 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