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서 자주 보는 풍경이 있다. 한 손에 작은 아이스크림 컵을 들고 가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난히 작은 투명한 플라스틱 컵 안에 든 아이스크림은 부드러워 보인다.
“요즘 편의점에서 팔고 있는 신상품인가?”
그렇게 비싸 보이지는 않지만, 주위 어디서 파는지 알 수 없어, 물어보려다 다른 바쁜 일로 잊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아 확인도 안 한 것이다. 그러다 같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옆집 아줌마가 먹고 있는 것을 또 목격했다. 얼마 전 이사 온 이웃으로 베이커리나 케이크를 만드는 일을 하는 것 같았다. 전에는 한 손에 케이크 가게에나 있을법한 둥그런 뚜껑 달린 케이크 접시를, 다른 손에는 돌돌 말은 앞치마와 빵을 담은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그런 이웃까지 좋아하는 디저트가 동네에 있다는 것인데, 어디일까? 편의점이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냐면 요즘 같은 시대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마스크를 벗고 걸어 다니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디저트일 것이다.
40대가 되기 전, 그러니까 20대에는, 40대를 색다르게 생각했었다. 그것은 어떤 영화에서 본 중년 여배우의 연기에서 그렇다. 카페에서 차가운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뜨거운 커피를 시켜, 아이스크림에 커피를 부어 맛있게 떠먹는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쁜 일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 순간 오로지 자신만의 행복한 지금을 발견한다. 아이스크림이 줄어들수록 마법은 점점 깨지지만 그래도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곤 다시 조금 힘을 얻어 현실을 맞이했다.
40대가 된 지금, 영화 속 여배우처럼 삶이 그렇게 힘들거나 슬픈 날만 있는 것이 아님을 감사한다. 그건 영화의 한 장면이었을 테고, 한 달 후나 일 년 후에는 또 다른 삶이 있을 것이다. 삶은 보고 받아들이는 것에 따라 행복일 수도, 불행일 수도 있다. 나이가 많거나 고생을 많이 했다고 성숙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일상을 소중히 여긴 사람만이 지금의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은 이런 단맛과 쓴맛, 뜨거움과 차가움 앞에서 초연해질 수 있고, 그렇기에 그런 모습이 20대 나의 눈에 비쳐 멋있게 보였나 보다.
이웃이 먹던 디저트는 아인슈페너 Einspänner 였다. 이 음료는 뜨거운 커피에 아이스크림을 부어 마시는 아포 가도 Affogato와는 다르지만, 비슷한 이미지가 있어 좋아졌다. 아인슈페너는 오스트리아의 마부들이 추위를 이기고자 설탕과 크림을 커피에 얹어 마신 것에서 유래했다는데, 둘 다 쌉쌀한 맛과 달콤함으로 현재의 불편함을 잠시 잊게 해 준다. 문득,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성인이 돼 가는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먹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것은 사람들이 각자의 취향에 따라 어른이 돼도 마법을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동화처럼 바뀌진 않더라도 현실을 단 1초라도 떠나, 디저트를 즐긴다. 1초는 기억에 오래 남아 그날 하루를 차지하기도 하기도 한다. 이것이 어른들이 즐기는, 무의식의 행복한 디저트 타임이 아닐까. 이런 기쁨의 기억은 어딘가에 숨겨졌다, 이 순간 잠깐 나타나 또다시 쌓여 갈 것이다.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아인슈페너를 알게 된 것은 전에 산책하다 지나쳤던 카페가 떠올라서이다. 유명한 삼계탕집에서 순서를 기다리다, 옆에 있는 카페에 사람들이 모이나 싶었다. 항상 카페 안과 밖에 사람들이 붐볐다. 여행용 가방을 들고 온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멀리서도 오는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삼계탕 손님과 일반 손님이 섞여 있을 수도 있겠지만. 30분이나 기다려야 했지만 젊은 친구들 사이에 끼어 내 이름을 불러 줄 때까지 기다렸다.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고 기다리고, 걸어 다니며 먹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됐지만, 반대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시식해 보기로 했다.
전에 친구 Y가 숙대에 있는 프로그램에서 ‘르 꼬르동 블루’라는 제과 제빵 기능사 자격증을 따서 디저트 가게를 하게 됐다며 초대해 주었는데, 유럽에서 배워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가게에도 버젓이 자격증이 걸려 있어서 기억한다. 마침 여기서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가면 숙대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May님! 주문하신 아인슈페너입니다.”
라며 점원이 컵을 들고 나왔다. 햇살이 비추어 더 맛있게 보인다. 나무 스푼으로 아이스크림 같은 달콤한 생크림을 떠먹고, 남아 있는 쓴맛이 있는 커피를 마셨다. 그러나 입안에 아직 달콤함이 남아 있기에 커피는 적당한 맛이 되었다. 인생을 닮은 맛이라면 마무리가 좋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이웃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스크도 안 쓰고 있었던 이유는 이런 것이었나 보다. 생크림이라 녹지 않기에 그렇게 빨리 먹을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그래도 그녀 덕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가는 것이라 조금 위험하긴 했지만, 우아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아인슈페너의 오후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