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을 꿈꾸기 전에 꼭 알아야 하는 특허 실무
평소에 사업하고 싶어 하는 영희라는 여성이 있었다. 어느 날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냈고, 사업 추진을 결정했다. 경쟁자 진입을 막기 위해 특허 출원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이런 아이디어도 특허 출원이 가능한지 조마조마하다. 포털 사이트에서 변리사를 검색한다. 사진으로 인상 좋아 보이는 변리사를 찾아, 이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설명한다.
변리사는 아이디어가 좋다고 칭찬을 한다. 그 자리에서 특허 출원 의뢰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영희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인정받은 것 같아서, 들뜬 마음으로 사업 준비에 속도를 낸다. 특허를 출원했고, 뿌듯하니 주변에 자랑한다. 자신의 사업을 설명하면서 늘 잊지 않고 말한다.
특허도 출원했어.
결론부터 말하면, 아이디어나 기술에 대해서 특허 출원하지 마라. 그런데, 어떤 기술에 대해서는 반드시 특허 출원하라. 이상해 보이는 이 말이 가장 올바른 선택이다.
특허 출원하지 마라 vs 반드시 특허 출원하라
특허를 출원하지 말라는 의미는 영업비밀로 간직하라는 단순한 말이 아니다. 영업비밀은 귀한 가치가 있지만, 지금 말하는 특허에는 손실만 있다. 특허가 시간, 노동력, 에너지, 비용만 낭비하는 쓸데없는 행위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편, 어떤 기술은 반드시 출원해야 한다.
특허는 기술을 공개하는 대신, 모조품을 방지하고 독점적으로 이익을 취할 수 있게 한다. 비싼 가격의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할 수도 있다. 이렇게 좋은 기술은 특허를 출원해야 한다.
즉, 어떤 것은 특허 출원해야 하고, 어떤 것은 특허 출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또, 그 경계선에 있는 것은 경영 전략에 따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 문제는 무엇을 출원해야 하고, 무엇을 출원하지 말아야 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허를 출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 목적은 경쟁자의 진입을 방어하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등록을 받아야 하고, 다른 하나는 등록된 특허가 원하는 권리 범위를 확보한 상태여야 한다.
대략 둘 중 하나의 특허는 등록이 거절된다. 등록되는 특허의 권리 범위는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훨씬 많다. 애석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영희와 같은 상황의 특허는 등록되더라도 매우 좁은 권리 범위만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경쟁자 진입을 방어하기 위한 용도로 쓸모가 없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영희는 특허를 출원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출원 당시, 영희의 의사결정 과정은 이렇다.
특허를 출원하려면 돈이 든다.
특허로 출원해야 경쟁자 진입을 막을 수 있다.
경쟁자 진입을 막기 위해 돈을 들여 출원하자.
경쟁자 방어 가치를 돈의 가치보다 높게 본 것이다. 그런데, 영희가 몰랐던 변리사의 상황이 있다.
변리사는 과거에, 자신의 발명에 대해 자부심이 강한 고객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자부심에 맞장구치지 않으면 매우 불쾌해하였다. 이런 고객은 칭찬하면 좋아한다. 발명을 인정해줄수록 고객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경험을 반복한다. 고객 대부분은 지적보다는 칭찬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오늘도 영희에게 적나라한 지적보다 칭찬을 선택한다.
한편, 특허 사무소를 운영하는데, 운영비가 많이 든다. 사무소 직원들에게 월급도 주어야 한다. 수입의 대부분은 고객의 특허 출원 대행 수수료이다. 발명을 들어보니, 등록이 어려워 보인다. 등록되더라도 원하는 권리 범위가 아닐 것 같다. 그래도 일단 고객이 제 발로 왔고 상담 시간도 들였으니 수수료를 받아야겠다. 그리고, 혹시 모르지 않는가.
이 특허가 가치가 있을지.
변리사의 의사 결정 과정은 이렇다.
이 특허가 가치가 있을지 불확실하다.
특허로 출원해야만, 돈을 벌 수 있다.
특허 가치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일단은 출원한다.
돈의 가치를 더 높게 본 것이다. 출원 전에는 특허 가치가 불확실하니까. 영희와 변리사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보는지 그 차이가 극명하게 느껴진다. 변리사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라는 사고를 갖게 되었다. 그 결과는 특허 출원 대행 수수료와 관납료를 지불하는 고객의 피해로 돌아간다.
정보의 비대칭이 있다. 변리사는 짧은 대화로도 고객의 의사 결정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 영희가 무엇을 고민하는지, 어떤 목적으로 출원하려는지 알고 있다.
반대로, 영희는 변리사의 의사결정 과정을 짐작하기 어렵다. 고객이 변리사에게 지불하는 수수료 비용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어느 정도 비슷하다. 특허청에 납부하는 관납료도 정액으로 정해져 있다. 달라지는 변수는 특허의 가치이다. 영희는 비용보다 특허의 가치를 높게 기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쓴 것이다.
변리사는 경험을 통해 특허의 가치를 더 현실적으로 짐작하고 있다. 선행 문헌을 굳이 검색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적어도 영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변리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고객에게 예상되는 특허의 가치를 정확하게 말해주거나,
이대로 출원을 진행하거나.
현실을 말해주려면 장황하게 설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고객의 감정이 상할 수 있다. 시간이 많이 소모된다. 출원 의뢰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 고객이 다른 사무소로 찾아가면, 그곳에서는 양심을 선택하지 않고 출원을 할지 모른다. 이렇게 고객을 빼앗기는 것은 싫다.
반대로, 이대로 출원을 진행하면 깔끔하다. 돈도 벌고, 고객도 기분 좋다. 시간도 아끼면서 실적도 올린다. 고객을 우리 사무소에 묶어 둘 수 있다. 다음에 다른 출원을 더 하게 될 수 있다.
이렇게 영희 뿐 아니라, 영철, 철수, 길동, 신혜, 많은 고객을 상대한다. 같은 의사 결정을 한다. 업무 초기에는 딜레마에 빠져 괴로웠지만, 이제 둔해졌다. 하나의 잘못된 해답으로 반복해서 체크한다.
앞선 가상의 이야기처럼, 모든 변리사가 이런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양심과 실력을 두루 갖춘 변리사는 많이 있다.
누군지 우리가 모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