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중 여섯 번째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는 것이다. 살인의 범주에 대한 정의는 입맛대로여서, 성스러운 전쟁에서 저지르는 살육은 예외 처리되지만, 스스로를 죽이는 자살은 금지된다. 반면 죽을 정도의 위험이 명확함에도 달려들어 맞이한 죽음은 굉장히 긍정적으로 본다. 신약성경의 핵심 인물들은 모두 순교한다. 주인공인 예수도 그렇지만, 베드로나 바울 등도 마찬가지이다. 나아가 구약 성경의 삼손과 같은 인물은 건물을 무너뜨리며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죽는다.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 의도를 문제시하는 것이다.
즉 절망 속에서 고통을 끊고 싶어 자살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아마 예수는 그보다 더한 고통도 겪으면서 다음에 올 더 심한 고통을 기다렸기 때문이겠지만, 애초에 태생이 타고난 이의 경험만 따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서 사람의 선택으로 미래가 갈리는 상황들을 통해 스스로 얻는 구원을 말한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쇼생크 탈출>(1994), <그린 마일>(1999), <미스트>(2007) 세 작품에서 주인공은 고통받는 자신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결정을 내린다. 결정의 방향은 모두 달랐지만, 셋 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회피하기 위한 극단적 선택의 무익함을 이야기한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쇼생크 탈출> - 감옥으로 들어오는 앤디
인물은 좁은 공간에 갇힌다. <쇼생크 탈출>의 앤디와 <그린 마일>의 커피는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살인의 가해자로 붙잡혀 감옥에 갇힌다. 앤디는 불륜을 저지르던 아내와 그 내연남을 죽이려 가던 길에 참고 돌아갔으나, 다음 날 그들이 죽은 상태로 발견되어 경찰에 체포된다. 커피는 참혹하게 죽은 두 소녀를 붙잡고 있는 상태 그대로 발견되어 체포된다. 둘은 모두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지만, 이윽고 감옥에 갇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나름 적응되어가는 감옥 내에서의 생활 속에서도, 주변 죄수들이 억울하고 잔혹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선택의 순간에 부딪힌다.
<미스트> - 식료품점 내부에서 바라본 안개
<미스트>에서는 조금 더 넓은 공간이 주어지지만, 결과를 알 수 없기에 또 다른 종류의 공포에 빠진다. 마을에 순식간에 번진 안개는 알 수 없는 생명체들과 피를 동반하고, 이를 피해 식료품점으로 숨어든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재난을 받아들인다. 아들과 함께 식료품점에 갇힌 주인공 데이빗은 혼란에 빠진 주변 사람들과 다르게 이성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닥치는 문제를 조금씩 처리해나간다. 사람들의 힘을 모아 괴물이 들어올 수 있는 입구들을 철저하게 막고, 부상자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밖으로 나가 약을 가져온다. 하지만 사람들을 제물로 바치려는 사이비 종교 세력이 점차 힘을 가지며, 그에게도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
<그린 마일> - 선량한 이방인의 처형
존 커피는 죽음을 선택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으로 그들의 과거를 보고, 그들이 가진 어떤 병이든 치유할 수 있으며, 죄지은 자를 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함께 발견된 아이들 역시 조금만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살려낼 수 있었다. 하지만 참혹한 현장 분위기에서 울다가 발견된 그는 큰 덩치, 어눌한 말투, 검은 피부라는 특징으로 인해 공포의 대상이자 위험한 짐승으로 대우받고, 사형이 쉽게 확정된다. 함께 지내며 만들어낸 기적들로 주변 죄수들과 교도관들은 그의 진실을 믿지만, 직접 목격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가 행하는 기적을 믿지 못한다. 무엇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목격한 것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기에, 사형수의 길, 그린 마일을 걷기로 결정한다.
<그린 마일>은 한 시간마다 전기의자 처형 장면이 하나씩 등장하는데, 처음 죽음만 해도 죄수는 처형되어야 마땅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길게 이어진 두 번째 죽음에서 사형수가 겪는 고통을 발견하고, 세 번째 존 커피의 죽음에서 사형 제도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게 된다. 그의 죽음은 부당함을 알리는 메시지로 기능한다. 선량한 교도관들은 사형을 더 이상 집행할 수 없어 다른 일을 택하고, 관객들도 마지막 기회를 꺾는 사형 제도에 대해, 외관으로 인해 발생하는 무의식적 차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미스트> - 선택 뒤에 발견한 안갯속
데이빗은 도전을 선택한다. 자신을 따르는 세 명의 사람들과 소중한 아들까지 데리고 식료품점을 떠나 조금씩 나아간다. 이제 자원도 떨어져 가고 데이빗과 대척점에 선 사이비 교주가 그들을 협박하는 시점에서, 차로 최대한 멀리 나아가 보는 것은 이성적인 선택이었다. 가는 길에 죽은 아내를 발견하는 등 식료품점 밖의 암울한 세상을 보면서도, 묵묵히 직진하는 것이 그들의 길이었다.그리고 마침내 연료가 다 떨어졌을 때, 죽음을 선택하는 것 또한 그들에게는 이성적인 선택이었다. 식료품점에서도, 거리에서도, 너무 많은 끔찍한 죽음을 봐왔기에 같은 꼴을 당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이 절대 괴물에 당해 죽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 또한 죽음을 선택하는 데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선택은 그를 배반한다. 아들을 포함해 다른 네 사람을 죽이고 안개에 다시 들어섰을 때, 그제야 안개가 걷히고 구원의 손길이 찾아온다. 포기를 위해 선택한 죽음은 그에게 더 큰 절망만 남기고, 데이빗은 죽음과 도전 어느 쪽도 제대로 선택하지 못한 채 결말에 도달한다.
<쇼생크 탈출> - 앤디의 희망이 되어주는 토미
앤디도 도전을 선택한다. 오랜 시간 억울함을 삼킨 끝에, 앤디에게 자신의 무죄를 밝힐 기회가 찾아온다. 여러 감옥을 돌아다녔던 젊은 잡범 토니가 해당 범행을 자백하는 흉악범의 말을 들었다고 증언한다. 토니의 공부를 도우며 둘 모두 사회로 돌아가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자금 세탁 용도로 유용하게 활용하던 앤디의 출소를 막으려는 교도관들은 토니를죽여 도전은 실패로 돌아간다. 앤디가 깃 밧줄을 챙긴 다음 날 아침, 앤디의 친구들과 관객 모두는 그가 죽음을 선택했다고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자유에 대한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토니의 등장으로 자유의 길이 보이기 전부터, 앤디는 바깥세상으로 나아가는 구멍을 정말 조금씩 파내고 있었다. 19년 동안 매일 밤 파내려 간 구멍은 끝이 보였고, 정상적으로 밖으로 나가는 마지막 길이 사라진 순간 그는 다른 도전을 강행하고, 결실을 얻는다.
<쇼생크 탈출> - 자유를 만끽하는 앤디
<미스트>와 <쇼생크 탈출>의 결과를 가른 것은 첫 선택 이후 두 번째 순간의 선택이었다. 선택 이후에 다른 일들로선택의 상황이 바꿀 수 있다. 앤디처럼 자신의 의도와 노력이 원인일 수도 있고, 데이빗처럼 외부의 변화로 인해 달라지기도 한다. 정말 끝까지 기다린다면 조금이나마 다른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
도피성 자살은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 반전시킬 수 없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 회피하려는 의도로 행해진다. 하지만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은 자신의 영화 속에서 언제든지 주어지는 다음 순간으로 상황이 달라질지 모른다는 위로를 전한다. 회피가 아닌 도전 속에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그런 생각으로 있다 보면, 첫 선택의 순간보다는 나아진 결말에 도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