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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지아 Aug 16. 2023

심리학 공부를 시작했다

나의 문제


사실 몸에서 겪는 건강상의 힘듦보다 정신적 문제가 훨씬 더 심각했다.


나는 결혼 2-3년 후부터 기억력이 정말 심각한 수준이었다.

을 가다가도 나의 목적지를 잊어버리고 집에 돌아오기도 했고,

집 주소를 잊어버리기도 했으며,

집에 도착해서도 주변 경관이 어색해서 집에 못 들어가고 배회하기도 했다.

지인들과의 대화내용을 까먹는 건 일상이었다. 그런 내 모습에 서운함을 느끼고 연을 끊은 친구도 있었다.


프레젠테이션을 많이 하는 내 직업에도 문제가 생겼다.

돌발 상황과 돌발 질문에도 여유롭게 대처하고 대답을 해야 하는데, 프레젠테이션 중간에도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를 까먹고 그 자리에서 내려오기도 했으니 말이다.

아무리 노트를 열심히 하고 기억하려 노력해도 한계가 있었다.

점차 일에도 자신이 없어졌다.

일에서의 내 명성은 물론,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피해를 줄 것 같아 겁이 났다.

그래서 일에서의 일선에서는 물러났고, 주목을 받지 않는 일을 하는 업무로 바꾸었다.


정밀검사를 했다.

젊은 나이에 집을 못 찾아가다니.

치매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치매가 아니라, 심각한 우울증 때문이었다.

극한의 스트레스로 인해 뇌가 내가 버틸 수 있게 스스로 기억을 삭제해 버리는 상태라고 했다.


집을 못 찾는데도 치매가 아니라니 ㅎ

그것 또한 충격이었다.

젊은 나이에 치매증상과 다 똑같은 게 무서워서 검사도 못 받았었는데.


그런 나빠진 기억력 탓에

전남편과 싸울 때 더 불리했던 것도 있다.

하나하나 디테일도 다 기억하고 싸워야 하는데,

모든 걸 다 기억하는 변호사를 상대로

나는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사과하기만 해야 했다.

기억을 못 해서 싸우지 못하는 게 분했고 억울했었던  과거의 기억이다.






신기하게도 이혼 후 가장 좋아진 게 기억력이다.

기억력은 현재도 완벽히 회복되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집을 잊어버리거나 목적지를 잊고 돌아오는 일은 없는 게 감사하다.


조금씩 일선으로의 복귀를 해보려 노력하지만 아직은 자신이 없다.

뇌는 회복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ㅎ






심리학 공부를 시작했다.


이혼을 한 것에는, 결혼을 실패한 것에는 내 문제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나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개선해야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실패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 앞으로도 내가 잘 살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아이를 위해서도 정신적으로 바로 서야 했다.

내가 불안정한 사람이라면, 불안정한 사랑을 내 아이에게 줄 것이고 그것이 대물림될 테니까. 

그런 일은 없어야 했다.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엄마였다.

엄마 향한 잘못된 믿음과 엄마를 향한 죄책감이었다.

엄마가 나를 가장 사랑하고 생각해 주는 존재이길 바랐던 나의 믿음. 

당시 나는 내가 믿고 의지하는 대상에 대한 객관적 판단과 시각이 없었다.

나를 낳아준 친정엄마가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란 현실은 믿을 수가 없었고 믿고싶지 않았다. (이 부분은 지금까지도  아프다)

그런 부모로부터 제대로 독립되지 않은 나의 마음도 문제였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엄마가 만나라고 하는 남자와

엄마가 결혼하기 좋은 조건이라고 얘기한 것들만을  내 인생을 걸어버린 내 미숙함이 문제였다.


가장 큰 문제의 기반은 엄마에게 향한 스스로의 죄책감이었다.

나를 키우는 시간 동안 엄마는 내내 나에게 본인의 인생이 나 때문에 망가졌고 나 때문에 아빠와 이혼도 못한다며 원망을 퍼부었고, 엄마 본인이 행복해질 때까지 나는 절대 행복해져서도 안된다고 항상 세뇌시켰다.

그런 세뇌는  스스로 나의 존재로 인해 엄마의 인생을 망가뜨렸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리 잡혔다. 나는 그렇기에 결혼부터는 엄마가 원하는 상대와 엄마가 원하는 모습으로 엄마에게 보상해주고 싶었다.

엄마에 대한 내 부채의식과 죄책감을 나의 결혼으로 갚아주고 싶었.

엄마가 바라던 자랑할만한 사위였으니까.

엄마가 바라던 자랑할만한 집안이었으니까.



또 다른 이유는 나의 애정결핍이었다.

친정엄마의 이기적인 사랑에 비해

시모가 전남편에게 하는 사랑은 너무나 헌신적이었다.

연애시절부터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항상 그가 너무 부러웠다. 나도 그런 시모 같은 엄마가 갖고 싶었다.

그 집에 들어가서, 최선을 다해 노력해서,

딸 같은 며느리가 된다면,

나도 그렇게 사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하지만 당연히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었고,

특히나 그 집에서 나는 영원한 타인이었다.

그런 나의 상실감은 무력감과 분노를 유발했다.

이것은 나의 문제였다.

전 시모의 사랑을 받고 싶었기에

한계점을 넘어서까지 노력했고 나 스스로를 갈아 넣었다.


내가 그녀의 사랑을 그 정도로 원하지 않았다면,

그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참지 않았을 것이고, 그 정도로 노력하진 않았을 것이다.

부당한 대우에 화가 나서 6개월 만에 집을 나가버린 전 동서처럼, 나 스스로를 지켰을 것이다.

나를 지키고,

나의 임계점을 지켜야 했었다.

나는 나를 소중하게 대하지 않았다.






이혼의 원인은 전남편뿐 아니라 나의 문제도 분명 있었다.

나는 내 소속감은 스스로 찾아야 했었고,

내 애정결핍은 스스로 해결했어야 했다.

원가정에서 얻지 못한 사랑을 그렇게 기대하고 갈구하지 않았어야 했다.

부모조차도 나를 우선적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이 아니니, 나 스스로라도 나 자신을 가장 사랑해 주고 아껴줘야 했다.

내가 얼마나 존귀한 가치를 가진 사람인지 스스로 느껴야 했다.

 가정과 결혼은 엄마를 위한 보상으로 선택하지 않아야 했으며, 내 인생이니 내 스스로 선택해야 했다.

내가 평생 엄마의 인생을 망가뜨렸다는 죄책감은 사실이 아니며, 그것은 엄마의 정신적 문제에서 기인된 가스라이팅이라는 현실을 자각해야 했다.

엄마로부터 평생 가스라이팅을 지금껏 갖고 있는 엄마를 향한 죄책감을 떨쳐내야 했다.


내가 나를 가장 사랑해야지만,

그만큼 사랑을 받으며 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나를 가장 소중하게 사랑하고 난 후
결혼을 했다면, 실패하지 않았을까?



타인에게 사랑을 갈구하지 말자.

이 세상 누구보다도 나를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어야 한다.

나의 존재로 내 엄마의 인생이 망가진 게 아니다.

그것은 엄마의 인생이고, 자식인 내게 그런 식의 죄책감을 심어주는 건 엄마가 정말 잘못한 행동이다.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어떨 때 행복한지를 알아보자.

그리고 그 길을 바라보고 찾아가며 살자.

나를 위해 살자.

내가 행복해지고 건강해져야

옳은 사랑을 아이에게 줄 수 있다.

아이는 얼마나 내게 소중한 존재인지,

엄마와 달리 내게는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알려줄 수 있는 어른이어야 한다.

나는 엄마니까, 항상 노력해야 한다.

공부하자. 노력하자. 행복해지자.

나도 행복해질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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