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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지아 Aug 28. 2023

성별이 다른 아이를 혼자 키운다는 것

함께할 수 없는 나이


일본의 대형 마트에서 혼자 남자화장실에 보낸 5살  남자아이를 배낭에 넣어 납치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아이가 담긴 배낭을 멘 납치범은 남자 화장실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던 엄마를 스쳐 지나갔을게다.

엄마는 상상이나 했을까, 그녀 앞을 스쳐 지나간 남자가  가방 에 내 아이가 있을 줄을.

그 사건을 접한 이후부터 나는 5살인 내 아이를 홀로 남자 화장실에 보내는 게 두려워졌다.

많이 컸지만 아직은 어린 5살.

많이 커서 혼자 화장실에도 갈 수 있는 나이지만 어른의 가방 안에 넣을 수도 있는, 아직은 작은 아이.






법적 나이로 5살이 되면, 남자아이들은 이제 여탕에 들어오지 못한다. (이제는 만 나이로 바뀌었겠지만)

초등학교 때 동네 목욕탕에서 반 남자친구들을 만나서 함께 냉탕에서 수영하던 나 때와 비교하면 참 많이 달라졌다.

나도 그건 옳은 규정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나 또한 싱글이었을 땐, 3살 이상의 남자아이가 여탕에 들어오는 것도 불쾌해했다. 

다만 그때는 이 규정이 내게도 적용될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아들이 5살이었을 때, 아들을 데리고 수영장을 갔다.

생각 없이 결제하고 여자 탈의실에 함께 들어가려던 찰나 발견한 문구.


<5살 미만의 남자어린이만 여자 탈의실 출입 가능합니다>


순간 너무 당황했다.

나는 이혼 전에도 바쁜 전남편 때문에 아이 갓난아이 시절부터 항상 내가 홀로 아이를 목마 태우고 여기저기 다녔기에, 내가 고생만 하면 아빠역할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웬걸, 5살 미만만 입장가능이라니.

이건 내가 몸으로 힘을 쓴다고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닌데.

아이를 데리고 수영장을 오며 이걸 예상하지 못했다니..


고민하다 방법이 없어서 일단 여자 공중화장실에 가서 같이 옷을 갈아입고 야외 락커에 짐을 넣은 후 수영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그날 우리는 아주 신나게 놀았다.

집에 갈 무렵,

아이에게 사정을 다시 설명하고 날씨가 따뜻하니 엄마랑 같이 차에 가서 옷을 갈아입자고 얘기를 했다.

뽀송하게 씻고 남자 탈의실에서 나오는 다른 집의 아빠들과 아들들을 보며, 우리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영복을 입고 차까지 걸어갔다.


휴, 그때 왜 그리도 주차장은 멀었었던가.

젖은 수영복 차림으로 수영장에서 차까지 걸어갈 때의 처량함이란.

탈의실 규정을 생각하지도 못한 나 자신의 멍청함에도 화가 났다.

왜 미리 알아보지 않았을까. 미리 알았으면 지금 상황보다는 나았을 텐데.

수영하느라 지친 아들을 업고 양손에는 잔뜩 짐을 든 채, 수영복 차림으로 오르던 그 오르막길은 아직도 생생하다.


괜히 서러워서 울고 싶었는데, 울면 안 된다고 다잡았다.

나는 엄마니까. 강해져야 한다고, 되뇌었다.

옆으로 지나가는 다른 단란한 가족들을 보며 부러워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세뇌했다.

우리도 행복하니까, 우리도 오늘 즐겁게 잘 놀았으니까.



나는 아이의 양육자가 아닌데도 이러는데,

성별이 다른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들은 얼마나 고충이 클지 감히 가늠할 수가 없다.

물론 동성의 아이를 키우는 것도 힘들지만, 아이가 크니 이성의 아이는 예상치 못하는 상황들을 다양하게 맞닥뜨리게 되는  것 같다.


어디선가 본 적 있다. 여자아이를 키우는 싱글파파들은 여자아이들 옷 입히는 것, 머리 묶어주는 것 등에서 당황해한다고.

그런 작은 것에서 오는 성별의 문화적 차이는 나 같은 엄마에게 참 당황감을 주는 것 같다.

특히나 앞으로는 점점 성별이 다른 엄마가 아들에게 해주는 것에는 많은 한계가 오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도 그런 시간은 급작스럽게 찾아왔다.

5살.

남자아이가 여자 탈의실에 들어오면 안 되는 나이.

엄마가 함부로 아들의 신체를 만지며 씻겨주면 안 되는 나이.

엄마도 아이 앞에서 최소 속옷은 입어야 한다는 나이.

하지만 아직은 아이 혼자서는 잘 못 씻는 나이.

하지만 내 눈에는 너무 어리고 잘 모르는 나이.

하지만 혼자 탈의실에 보낼 수는 없는 나이.


단 둘이서 초라한 우리의 모습이 처량하게 보이지 않도록 나도 더 강한 척, 더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노력했던 시기였다.

싱글맘들이, 싱글파파들이 왜 억세지고 강해지는지를  실감했다.

다들 본인자식 지키려고 그러는 거구나.

내 자식 주눅 들지 않게 키우려고 다들 세상과 싸워내고 있는 것이었다.

다들 세상 속의 다양한 전쟁을 하느라 참 힘들 텐데,

나보다도 대단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것 같다.



현재 나는 이런 부분에서 아이가 큰 게 다행이다. 이제는 배낭 속에 숨겨지는 크기의 아이가 아니니 혼자 남자화장실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는 아이도 점점 더 커질 테니,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는 나이가 될 테니까.



시간의 흐름은 많은 것을 치유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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