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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브리나Sabrina Oct 21. 2023

결혼하다, 인도에서 - 10

태계일주 뺨치는, 다채로운 나의 인도 결혼식 이야기

21. 결혼식의 성대한 마무리, 갈라 디너(Gala Dinner)


 마침내 결혼식의 마지막 순서, 웨딩 푸자가 끝났다. 이제 모든 복잡한 절차와 의식은 끝이다! 지금부터는 먹고 즐기는 시간이다. 가족들을 비롯한 모든 하객들은 결혼식장 한편에 마련된 뷔페로 향해, 결혼식 당일의 갈라 디너(Gala Dinner)를 즐겼다. 왼쪽 하단에 보이는 것은 인도의 대표적인 파티 메뉴 중 하나인 치킨 티카 마살라(Chicken Tikka Masala)이다. 


 치킨 티카 마살라 외에도 몇십 가지의 다양한 메뉴들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사실 이때 나와 신랑은 따로 마련된 대기실로 이동해 휴식을 취했기에 음식 사진들을 찍지 못했다. 그래도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하객들 모두 뷔페 음식에 관해선 단 한마디의 불만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결혼식 전 내가 걱정했던 바와는 달리, 인도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부모님도 굉장히 맛있게 드셨을 정도로 음식의 퀄리티가 매우 좋았다.


 실제로 하객들의 대부분은 지금까지 다녀봤던 결혼식 중 가장 맛있는 뷔페 음식이었다며, 케이터링 업체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메뉴 및 케이터링 업체 선정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 신랑이 꽤나 뿌듯해했다. 역시 국적을 불문하고, 결혼식 음식은 맛있어야 한다는 것은 만국 공통의 진리이다. 사실 케이터링 업체는 결혼식이 열렸던 리조트의 갑작스러운, 그리고 일방적인 통보로 인해 2주 전 급하게 바뀌었는데, 덕분에 신랑이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보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하객들이 식사를 즐기는 동안, 나와 신랑은 다른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곧이어 이어질 리셉션 준비를 했다. 리셉션이라고 하니 꽤나 거창한 듯 하지만, 그냥 평범한 기념사진 촬영이다. 보통 인도의 결혼식은 이 사진 촬영 이후 밤늦게까지 술과 음악, 춤을 즐기며 늦게까지 파티를 즐기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결혼식 하객들의 대부분은 연세가 지긋하신 어른들이라 파티는 생략하기로 하였다. 




 사진 촬영을 위해 다시 스테이지로 향했는데, 아까 전까지 웨딩 푸자가 진행되었던 만답 스테이지는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리셉션 스테이지가 설치되어 있었다. 사진 촬영의 절차는 한국의 그것과 다소 비슷했다. 신랑 신부의 개인 촬영 및 합동 촬영이 짧게 마무리되고는, 곧 하객들과의 사진 촬영이 시작되었다. 



 모든 하객들이 한데 모여 사진을 찍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인도 결혼식에서는 함께 결혼식에 참석한 그룹 단위로 사람들을 네다섯 명부터 열 명 정도까지 모아 사진을 촬영한다. 누구네 가족, 직장 동료, 학교 동창, 이런 식이다. 이렇게 사람들을 모아서 그룹을 짓는 이유는 신랑신부에게 결혼식 선물을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개인별로 축의금을 건네는 우리나라의 결혼식 문화와는 또 다른 점이다. 


 앞 포스팅에서 (결혼하다, 인도에서-3편) 간단하게 설명했는데, 인도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은 신부에게 보석을 선물하는 것이 관례이다. 화려한 보석들, 그중에서도 순금을 좋아하는 인도 사람들 답게 이러한 결혼 선물들은 모두 순금으로 된 귀걸이, 반지, 목걸이 등이다. 이러한 보석은 개인이 선물하기에는 값어치가 꽤나 있으므로, 함께 결혼식에 참석하는 사람들과 돈을 모아 선물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친구들과, 혹은 가족들과 함께 마련한 결혼 선물을 사진 촬영 때 신부에게 건네준 후, 신부가 그것을 들고 다 함께 기념 촬영을 한다. 이렇게 신부에게 금을 선물하는 문화는 인도에서는 꽤나 오래된 전통이다.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거나, 결혼 생활이 원만하지 않을 경우 결혼식 때 받았던 보석들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라는 의미가 담긴, 인도 여성들의 일종의 보험금인 셈이다. 


 한 가지 웃픈 사실은, 신랑은 아무것도 못 받는다는 점이다. 고로, 결혼식 때 받은 모든 보석들은 전부 다 내 것이 되었다. 사실 나는 남편에게 소위말해 '반띵'을 제안했으나, 그는 한사코 사양했다. 





 이로서 결혼식에 참석해 준 고마운 모든 하객들과의 사진 촬영이 끝났고, 마침내 우리는 지난 이틀 간의 기나긴 결혼식의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틀 동안 걸쳐 쉼 없이 이어진 각종 행사와 의식, 푸자들을 준비하고 나와 신랑에 대한 서포트를 아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하객들에 대한 교통편 제공 및 식사 조달까지 물심양면으로 지난 몇 개월간 바쁘게 노력해 준 웨딩 플래너 업체 'Panigrahana' 직원들과도 감사의 인사를 나누었다. 


 약간의 딜레이는 있었을지언정 무언가 빠뜨리거나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었고, 까다로운 남편의 요구와 가끔은 예상하지 못했던 각종 상황에 빠르게 대처해 준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또한 그들을 비롯하여 인도에서의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방갈로르의 곳곳을 휘젓고 다니며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 결혼식은 불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장 가까이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은 가족들에게 가장 큰 감사를 전하는 바이다. 


 그리고, 힌디어를 할 줄 모르는 나를 대신해 인도에서의 모든 결혼식 준비를 계획했을뿐더러 웨딩 플래너 업체 직원들을 자신이 직접 짠 5일짜리 타임라인(결혼식 준비와 마무리를 포함해 총 5일의 일정이었으며, 시간대 별로 진행되어야 하는 행사의 카테고리와 동선, 배차 순서와 일정까지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덕분에 지금 이 시간에 무엇이 진행되어야 하는지, 준비되어야 하는지는 그저 타임라인을 보면 되었다. 모든 일을 한층 수월하게 진행케 했다.)으로 진두지휘한 지금의 남편에게 큰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한 가지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인도에서 전통적으로 결혼식 장소 선정을 비롯하여 의상 및 메이크업, 결혼식 당일 행사 진행에 관련된 사항들을 조율하는 일은 모두 신부 측 가족의 역할이라고 한다. 결혼식에 관한 세부사항들을 신랑신부가 직접, 그리고 함께 조율하는 우리나라의 문화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 사실을 결혼식이 다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일부러 한마디 말도 않은 남편에게 꽤나 고마웠다. 





22. 나가는 글


 인도, 그중에서도 특히 힌두교인들의 결혼식에는 "Big Fat Wedding"이라는 재미있는 별명이 있다.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크고, 화려하고, 사치스럽기로 이름난 결혼식이다. 나는 사실 결혼식에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며, 소박한 스몰웨딩을 꿈꾸는, 무척이나 실용주의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MBTI 검사에 따르면, T성향에 심지어 J성향까지 갖춘 사람이라 그런 걸까. 


 결혼식 자체를 "어차피 사람들 앞에서 한 번 하고 마는 행사일 뿐인데, (결혼식의 모든 준비 과정이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그중 많은 것들은 일종의 보여주기식인 허례허식에 가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결혼식 문화 역시 마찬가지로 느껴졌다. 그러나 이런 나의 성향과는 마치 안드로메다 은하만큼, 다른 차원의 존재만큼이나 동 떨어진 결혼식이 바로, 사치스럽기로 소문난 인도식 결혼식. 이게 나의 결혼식이 될 줄이야.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 역시 놀라움과 경악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지도 않을 액세서리는 대체 몇 개나 구입해야 하는 거야? 왜 우리가 하객들의 교통편에 호텔비까지 지원해 줘야 하는거지? 대체 몇 개의 의식을 치러야 하는 거야?" 라며 매일같이 남편에게 불만과 놀라움을 토로하기에 일쑤였다. 단지 금액적인 부분만이 그 문제가 아니라, 차마 이 글에 모두 담기지 못했을 만큼,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세부 사항을 요구했던 몇 달간의 준비에 걸친 결혼식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게다가 나는 생전 겪어 보지 못했던 문화권에서, 무엇 하나 생소한 것 투성이인 절차들과 관습에 맞닥뜨려야 했기에 더더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이 끝나고 난 후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졌다. 


 도식 결혼식은 특별하고, 아름답고, 또 쉽게 잊히지 않는 행사였다. 이 모든 과정들, 의식들, 그리고 푸자(Puja)들은 모두 이 결혼식의 신랑 신부에게 가족과 친척, 친구들이 온갖 형태로 내려주는 든든한 지지와 축복인 셈이다. 자연스럽게 이 결혼식을 통해 나는 한 가족의 일원이 되었음을, 새로운 가족이라는 강한 유대감을 확고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인도라는 거대한 나라 그리고 문화의, 마치 파도와도 같은 흐름에 빨려 들어간 듯, 커다란 물줄기에 새로이 합류하게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인도의 결혼식에는 그런 힘이 있다. 결혼식의 수많은 의식들, 그것들을 거치는 과정에서 신랑과 신부의 정신, 신체, 그리고 (다소 어색한 표현이지만) 영혼마저도 하나로 묶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함께 거쳐가는 두 가족들 간에도 신성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단순히 혼인 계약의 관계가 아닌, 삶의 네 가지 목표인 푸르샤르타(Puruṣārtha), 즉 삶의 정의, 번영, 기쁨 그리고 정신의 해방을 함께 추구해 갈 삶의 동반자를 맞이하는 복잡다단(端)한 과정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결혼"이라면, 이러한 일련의 의식들은 어찌 보면 결혼식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 때문에 이 모든, 결혼식의 수많은 구성 요소들이 지난 몇 천년 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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