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계일주 뺨치는, 다채로운 나의 인도 결혼식 이야기
19. 웨딩 푸자(Wedding Puja)의 시작은 역시 춤과 음악
결혼식장에 어둠이 드리워지고, 드디어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인도 결혼식답게, 그 시작은 당연히 춤과 음악이다. 사실 나는 이 부분은 함께 즐기질 못했는데, 전통적으로 신부 입장은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라 신부 대기실에서 한참을 대기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곧 바깥에서 엄청나게 큰 소리의 음악과 북소리가 들려왔다. 할디 세리모니 때 음악을 연주했던 예의 그 악사들을 필두로, 사람들은 모두 한 군데 모였다. 모든 몸단장을 끝내고, 결혼식장으로 입장할 준비가 완료된 신랑을 둘러싸고 하객들은 본격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결혼식의 메인 세리머니인 만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들 좋은 옷과 장신구로 치장을 하고, 신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래에 첨부된 사진 몇 장만의 모습으로는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심지어 할디 세리모니 때는 춤추는 모습을 못 뵈었던 나이 많은 어르신들도 모두 신나게 춤을 추었다고 들었는데, 부디 아래 사진들로 현장의 그 흥이 조금이나마 전해지기를 바라는 바이다. 이렇게 하객들은 결혼식장 전체를 한 바퀴 빙 돌면서 그들의 흥과 즐거움을 발산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이 행렬이 동네 한 바퀴를 빙 돌며 몇 시간씩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태계일주에 나왔던 결혼식 행렬 장면이 저절로 연상되는 순간이다.)
아참, 이때 신랑과 함께 입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신랑의 가족 및 하객들이다. 그럼 신부 측 가족 및 하객들은 어디에 있냐고? 그들은 바로 결혼식장 정문에서 신랑 가족들을 환대할 준비를 한다. 신랑 측 가족들에 대한 환영의 의미인 꽃목걸이를 손에 들고, 정문으로 입장할 신랑과 그 가족들을 기다리게 된다. 원래 전통적으로 결혼식이 행해지던 장소가 바로 신부의 집이었기 때문에 이런 절차가 생긴 것으로 짐작한다. 그렇게 한바탕 떠들썩하게 도착한 신랑 측 가족들에게 한 명씩 꽃목걸이를 걸어주곤, 모두들 결혼식의 메인 스테이지인 만답 스테이지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남은 것은 드디어 결혼식의 꽃, 신부 입장이다.
나는 신부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신부 대기실 방문을 나섰다. 그 이유는 바로 2층에 있었던 신부 대기실에서, 약 10센티 정도로 높은 신발과 엄청나게 무거운 렝가 드레스를 입고 계단을 내려가기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절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인도 결혼식 기간 내내 이 신부 도우미의 존재는 굉장히 편리했는데, 신부 바로 옆에서 이것저것 잔심부름과 시중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계속 내 옆을 따라다니며 드레스의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는 일까지 해주었다. 나중에 신랑은 농담조로 "나도 엄청 바빴는데, 난 도우미 하나 없었어!" 라며 투덜거렸다.
천천히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가 보니, 1층에는 나와 함께 신부 입장을 도와줄 신랑의 사촌 여동생들과 누나들이 한데 모여있었다. 한국처럼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에서는 이렇게 신부 들러리가 되어줄 여동생, 언니, 혹은 시누이 등등과 함께 결혼식장에 입장하게 된다. 사실 이때쯤 되니 나도 모르게 조금 긴장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옆에서 함께 해줄 든든한 그들을 보니 퍽 안심이 되었다. 모두들 나에게 칭찬과 미소를 건네며, 인도식 결혼식이 처음일 나를 배려해 주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무거운 드레스에, 높은 굽의 신발에, 그리고 긴장감으로 짓눌려 있었던 어깨 위의 부담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떨쳐내고, 나는 무사히 정문을 통과하여 결혼식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20.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결혼식 의식, 그리고 의식, 또 의식.
나는 신랑과 함께 만답 스테이지 중앙에 마련된 두 개의 의자에 각각 앉았다. 높은 무대의 중앙에 앉아 그 아래를 바라보고 있자니 아까 전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색색의 조명들과 꽃들로 아름답게 장식된 결혼식장 이곳저곳. 우리를 마주 바라보고 있는 화려하게 치장한 하객들. 그 뒤편으로는 한창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케이터링 업체 직원들. 그리고 내가 아까 전 입장했던 정문 너머로 천천히 들어오는 하객들이 보였다. 어쩐지, 오는 길에 가족 및 친척들을 제외하곤 새로운 하객들을 한 명도 못 봤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야 하객들이 한두 팀씩 입장하고 있었다.
인도 결혼식이 8시에 시작한다고 하면, 8시에 정확히 결혼식장에 가는 사람들은 신랑 신부 및 가족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 즉, 모두들 뻔히 아는 것이다. 인도의 결혼식이 얼마나 긴 지, 또 얼마나 늦어질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의식들이 치러지는지... 만약 인도에서 결혼식에 초대받아 간다고 하면 시작 시간보다 한두 시간 정도는 늦게 가는 것을 추천한다. (그 편이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무대에 앉은 우리의 앞에는 푸자를 위해 마련된 형형색색의 장식물들이 놓여 있었다. 왼쪽 상단에 있는, 각종 꽃과 과자와 함께 놓인 쟁반 같은 것은 푸자 탈리, 혹은 아르티 탈리(Puja Thali/Aarti Thali)라고 불리는데, 힌두교의 각종 푸자에서 사용되는 신성한 물건들을 올려놓는 데 쓰인다.
그리고 오른쪽 상단에 있는, 색색깔로 물든 여러 줌의 쌀들은 나오그라(Navagraha)다. 쌀들 위에 올려진 노란색의 조각은 작게 썬 강황(Turmeric)이다. 나오그라는 인도식 점성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홉 개의 신들의 몸, 그리고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행성 및 별들의 존재를 상징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오른쪽 하단에 있는, 코코넛과 작은 항아리가 합쳐져 있는 것은 웨딩 카라쉬(Wedding Kalash)라는 것이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존재를 상징하는 것인데, 여기서 말하는 풍요라 함은 다산, 즉 지구(영미권에서는 종종 지구가 Mother Earth로, 여성 혹은 여신으로 비유된다) 그리고 여자의 자궁을 의미하는 바이다.
이렇듯 다양한 의미를 가진 각종 상징물들과 함께, 신의 축복을 받기 위한 웨딩 푸자가 펀딧의 지휘 아래 시작되었다. 우리는 탈리 쟁반에 놓인 과자를 함께 나누어 먹었고 (신의 축복을 받는 행위라 한다), 펀딧이 시키는 대로 따라 여러 개의 산스크리트어 구절을 외웠으며 (짐작컨대 우리나라의 성혼선언문 비슷한 내용인 듯했다), 서로의 목에 화려하게 장식된 꽃목걸이를 걸어주었는데, 이는 바르말라(Varmala)라고 불린다.
Varmala Ceremony라고도 불리는 이 의식은 힌두교식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 중 하나인데, 서로를 자신의 배우자로 인정한다는 의미이며 앞으로 살아갈 평생 동안 서로를 존경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이렇게 꽃목걸이를 걸어주는 우리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사방팔방에서 꽃잎을 마구 던져 주었는데, 이것 역시 신랑신부의 가족들의 축복이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이틀 내내 가족들로부터 각종 축복이란 축복은 다 받아 봤지만, 이 축복은 뭔가 느낌이 남달랐다. 가족들의 축복이 담긴 환호성을 들으며, 향기로운 꽃목걸이를 서로 교환하며, 흩날리는 노란색의 꽃잎들로 둘러싸이는 그 느낌이란. 행복함이 절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 차례의 의식이 끝나고, 펀딧은 곧 우리 부모님을 무대 중앙으로 부르더니 또 다른 중요한 의식을 시작하였다. 칸야단(Kanyadaan Ritual)이라고 하는 것으로, 산스크리트어로 "신부를 인도하다"라는 뜻이다. 이는 신부 측 부모님과 신랑신부 간의 상징적인 의식으로, 신부의 아버지가 신부의 오른손을 잡고 신랑의 오른손에 놓는다. 이로써 신랑에게 신부를 인도하게 되며, 앞으로 인생의 반려자로서 신부를 돌보아 주는 것을 요청하는 의식이다. 이렇게 서로 맞잡은 네 사람의 손 위로 물을 천천히 부어주는데, 이로써 신부와 신랑의 가족이 서로 하나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해당 의식이 마무리되고, 우리는 만답 스테이지 아래에 마련된 작은 불꽃이 피워져 있는 또 다른 제단으로 향했다. 신랑과 신부는 함께 이 제단 주위를 일곱 바퀴 돌면서, 서로에 대한 일곱 가지의 맹세를 하게 되는데 이는 세븐 페라즈(7 Pheras)로 불린다. 한 바퀴 돌 때마다 각각 다른 내용의 맹세를 하게 되는데, 요지는 다음과 같다. 신랑은 일생의 모든 중요한 일들에 대해서 신부와 함께 의논할 것을 약속하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신부는 신랑과 함께 인생의 역경을 헤쳐나갈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결혼생활 내내 충실할 것을 다짐하며 신실한 배우자가 되겠다는 내용이다.
마침내, 수많은 결혼식 의식들 중 대망의 마지막 의식 하나만이 남았다. 이는 신두르 의식(Sindoor Ceremony)라고 불린다. Sindoor는 붉은색 혹은 주황색의 가루로 된 화장품의 일종인데, 인도에서 기혼 여성들의 상징 중 하나이다. 이러한 상징들은 총 3가지가 있는데, 그중 첫 번째가 신두르(Sindoor), 두 번째가 이마 한가운데의 붉은색 장식인 빈디(Bindi), 세 번째가 팔찌인 뱅글(Bangle)이다. 인도에서 결혼한 여자는 이 3가지를 반드시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한다고 한다.
하단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의식은 집안의 결혼한 여성들로부터 축복을 받는 의식이다. 모든 기혼 여성들이 이 신두르를 새 신부의 이마, 정수리, 혹은 코에도 발라주며 축복을 건넨다. 실제로 신랑의 이모님 중 한 분은 집안의 경사라며, 신이 나셔서는 내 콧등에도 신두르를 훅 바르시길래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신두르는 하단에 있는 예쁜 모양으로 장식된 용기에 담겨있는데, 결혼식이 끝난 후 귀국길에도 '신성한 것'이라며 신줏단지 모시듯 남편이 정성스레 포장해 캐나다까지 챙겨 왔다. 사실 인도에서도 지역마다 신두르, 사리 및 각종 액세서리의 색깔이나 종류가 조금씩 다른데, 알고 보니 이마저도 해당 출신 지역의 전통과 특징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라고 하니 과연 그 의미가 남다를 만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