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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브리나Sabrina Oct 17. 2023

결혼하다, 인도에서 - 8

태계일주 뺨치는, 다채로운 나의 인도 결혼식 이야기

17. 드디어 본식 당일 아침


 결혼식 일주일 전 걸렸던 감기의 여파와, 이유 모를 스트레스와 부담, 그리고 긴장 탓에 밤을 거의 꼴딱 새우다시피 하고 일어났다. 덕분에 본식 당일 아침 컨디션은 최악을 달렸다. 살면서 왜 신부들이 결혼식 날 스트레스를 그렇게 받는지 몰랐는데, 그 기분을 십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 가지 다짐했다. 앞으로 결혼을 앞둔 신부들을 본다면 아주 친절하게 대해줘야지, 하고 말이다. 이날 아침 역시 케이터링 업체에서 준비된 조식 뷔페가 마련되어 있었지만 입맛이 없어서 가볍게 패스. 엄마가 인도 여행 비상식량으로 챙겨 온 누룽지를 여행용 쿠커(cooker)에 끓여 하루 종일 그것만 간신히 먹었던 것 같다. 


 푸자(Puja)의 나라 인도답게, 본식 당일 아침에도 또 다른 푸자가 하나 있었다. 마트리 푸자(Matri Puja)라고 부르는 이름의 푸자인데, 이는 신랑과 그 어머니가 결혼식 아침 당일에 지내는 것이라고 한다. 돌아가신 조상들에게 축복을 비는 푸자의 한 종류로서, 이름답게 (Matri는 힌디어로 어머니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 푸자의 주인공은 바로 어머니이다. 신랑은 몇 년 전에 어머니를 여의었기에, 이모님들 중 한 분이 대신 이 푸자를 지내주셨다고 한다. 나는 참여하지 않았던 푸자이기에, 짧은 설명과 함께 첨부한 사진으로 그날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추측해 본다. 



 그렇게 오전에 한 개의 푸자가 행해지고, 남은 시간은 오롯이 저녁에 있을 결혼식 본식에 대한 준비였다. 그런데 이쯤 되니 안 그래도 컨디션이 안 좋았던 나를 포함한 우리 네 명의 한국인들은 슬슬 인도의 한없이 느긋하기만 한 행사 진행 방식에 조금씩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특히 이모와 엄마는 만약 한국이었다면 이 모든 푸자들은 하루, 아니 반나절만에 딱딱 시간에 맞춰서 끝났을 거라며 한국의 빠른 일처리 방식을 그리워했다. 


 우리 사이에는 새로 유행어가 하나 생겼다. 그 이름은 바로, 푸자를 조금 비튼 "푸닥거리". (다른 나라의 말을 이렇게 비튼 것은, 물론 매우 실례지만) 주로 "이 많은 푸닥거리들, 대체 언제 끝나냐." 이런 식이었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사실상 시간표에 적힌 시간에 제대로 맞추어 시작했던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가령 9시에 어떤 푸자를 시작한다고 하면 느긋한 준비 시간 탓에 한 시간 정도 지연되는 것은 일쑤였으며, 무엇보다도 중요한 식사 시간 역시 예정된 시간표 보다 한 시간 이상 늦어지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빨리빨리의 민족, 칼 같은 시간 준수, 정확성과 그 동시에 신속성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절대로 적응할 수 없는 일과이다. 특히나 우리 가족들은 유난히 식사 시간을 칼 같이 지키는 편인데, (항상 아침은 7시, 점심은 12시, 저녁은 6시라는 시간표가 어긋난 적이 거의 없다) 인도의 이러한 flexible 한, 유동적인 시간표는 우리 가족들에게 적응하기 힘들었던 점 중 하나였다. 오기 전 부모님에게 비상식량을 단단히 챙겨 오시라고 미리 일러두었던 나 자신의 선견지명에 탄복했다. 엄마가 바리바리 싸 온 각종 캠핑식량, 누룽지, 반찬, 김자반 등은 인도여행 내내 아주 든든한 식사가 되었다. 




 사실 인도 사람들이 결혼식을 즐기는 방식은 아주 여유로웠다. 느긋하게 일어나, 준비된 식사를 하고, 오랜만에 모인 가족 그리고 친척들과 담소를 나누며 차를 한 잔 한다. 모처럼 결혼식을 위해 마련된 리조트에 놀러 왔으니 리조트에 있는 수영장을 비롯한 각종 시설들도 하나 둘 이용해 본다. 그러다 피곤하면 낮잠도 한 번 자게 마련이다. 그렇게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고 있다 보면 곧 어딘가에서 푸자를 진행할 예정이니 참석하라고 한다. 그러면 또 준비된 푸자에 참석하여 시간을 보내고, 한가하게 쉬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저녁 식사를 한다. 애초에 결혼식 자체가 긴 기간 동안 이루어지기 때문에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고, 시간표대로 정확히 행사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러려니 한다.


 반면에 한국의 결혼식 풍경은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결혼식 문화를 폄하하려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님을 미리 밝혀두며) 개인적인 의견을 말해보자면 한국의 결혼식은 최강의 시간 대비 효율, 가성비를 자랑한다고 생각한다. 한두 시간 남짓에 손님 맞이와 내빈 소개, 예식, 축가 및 사진 촬영까지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 짜여 계획된다. 폐백을 비롯한 스케줄을 정신없이 소화해내고 나면, 바쁜 걸음으로 뷔페홀로 향해 하객들에게 인사를 건네곤 또 부리나케 신혼여행을 떠난다. 물론 우리나라도 요즘은 그 트렌드가 많이 바뀌어 이러한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것들이 매우 빠르게 또 정신없이 진행되는 것은 사실이다. 


 너무 바쁜 한국, 그리고 또 너무 한가한 인도. 두 나라의 속도가 어느 정도 절충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18. 웨딩 푸자(Wedding Puja) 준비


 드디어 마지막 남은 가장 중요한, 대망의 웨딩 푸자 만이 남았다. 이 웨딩 푸자를 위해 신랑신부를 비롯하여 참석한 하객들은 모두 저마다의 준비를 한다. 나의 경우에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직접 출장을 와 몇 시간에 걸쳐 메이크업을 해 주고 렝가(Lehenga) 드레스를 입혀주었다. (결혼하다, 인도에서-2 편에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신랑의 경우에도 간단한 메이크업을 하고 결혼식 예복인 셔르와니(Sherwani)를 갖춰 입는다. 또한 마지막으로 결혼식 때 쓸 사파(Safa)라고 불리는 터번을 써야 하는데, 이 사파는 스스로 쓰는 것이 아니라 집안 친척들 중 남자 어른이 한 명 씌워주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위 사진들은 그때를 기념하여 찍은 것들이다.


 2편에서 자세히 서술하였기에 생략하겠지만, 밖에서 이런저런 준비가 진행되는 동안 나 역시 자그마치 3시간에 걸쳐 메이크업과 예복 입기를 끝냈다. 그렇게 신랑신부가 몸단장을 완료하자 곧이어 웨딩촬영이 이어졌다. 우리가 고용한 총 세 명의 포토그래퍼들이 각기 다른 카메라를 들고, 공식적인 웨딩촬영을 시작했다. 결혼식 전 미리 스튜디오에서 각종 테마에 맞춰 촬영이 진행되는 한국과는 달리, 인도에서는 결혼식 당일 촬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물론 한국처럼 본식 전 사전에 별도 촬영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평소에 사진 촬영을 그렇게 즐기지 않아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꽤나 어색해하는 우리를, 포토그래퍼들은 아주 열정적으로 리드해 주었다. 살면서 절대 해 보지 않을 별의별 포즈를 다 했던 것 같다. 한 바퀴 돌아보라던가, 손은 옆으로 뻗고 시선은 하늘을 보라던가, 신랑의 손을 잡고 수줍은 듯 아래를 쳐다보라던가, 조명 아래서 하고 있는 목걸이를 손으로 천천히 쓸어보라던가 등등. 어느새 서른을 훌쩍 넘은 나이의 나는 이런 어색함을 못 이기고 창피해할수록 각종 역효과가 이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시간 지체라던가, 추가 요금이라던가, 짜증이라던가...) 열심히 포토그래퍼들의 요청에 응하느라 최선을 다했다. 나온 결과물들은 이러하다. 



 한편 이렇게 우리가 이런저런 준비로 바쁠 동안, 웨딩플래너들 역시 야외에서 결혼식 스테이지를 준비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인도의 결혼식 메인 스테이지는 바로 만답(Mandap)이라고 불리는데, 힌디어로는 기둥들로 둘러싸인 구조의 공간을 의미한다. 결혼식에서의 만답은 바로 결혼식이 이루어지는 무대, 일종의 제단을 의미하며 각종 꽃과 장식들로 둘러싸여 화려하게 꾸며진다. 결혼식에서 가장 중요한 웨딩 푸자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굉장히 성스러운 공간으로 여겨지며, 주로 무대 한가운데 크고 화려한 의자 두 개가 놓인다.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와중에 잠시 눈을 돌려 보니, 먼발치에 만답 무대가 완성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몇 달간을 달려온 대장정의 끝이 드디어 보이는 순간이었고, 마침내 결혼식이 시작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약 두 시간에 걸친 웨딩 촬영이 모두 마무리된 후, 하늘의 색깔이 서서히 바뀌더니 곧 결혼식장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간, 힌두교인들이 성스러운 시간이라고 믿는 일몰의 시간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들이, 일생의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인 결혼식을 밤에 하는 이유이다. 신들이 깨어나는 시간, 마침내 신랑과 신부를 축복해 줄 시간. 이 결혼식의 또 다른 주인공인 힌두교의 신들을 이 자리에 초대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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