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계일주 뺨치는, 다채로운 나의 인도 결혼식 이야기
16. 멘디(Mehndi)와 산기트(Sangeet)
힌두교 결혼식에서는 결혼 전날 신랑신부가 멘디(Mehndi)라고 불리는 헤나를 받는다. 멘디 자체가 결혼식의 중요한 과정 중 일부이며, 결혼의 상징이다. 또한 이를 받는 사람의 건강과 번영을 비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멘디는 신랑신부에게 매우 중요한 치장 중 한 가지이며, 특히 결혼식날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신부를 아름답게 꾸며주는 목적이다. 신랑 역시 멘디를 받지만 보통 간단하게 손바닥 안쪽에만 받는 등 신부에 비하면 매우 심플한 디자인으로 한다. 반면 신부는 손톱 끝부터 손목 전체 주변을 모두 감싸는 화려한 디자인의 멘디를 받는 것뿐만 아니라, 발끝과 발등, 발가락에도 멘디를 받는다.
짧은 기간 동안만 지속되는 헤나와 비슷하게, 멘디는 오로지 결혼식 기간에 해당하는 며칠 혹은 일주일 정도만 지속되고 점차 그 색이 옅어지며 없어진다. 멘디의 재료가 되는 것은 식물의 잎이며, 잎들을 가루 내어 그 가루를 물이나 아로마 오일 등과 섞어 만든다. 마치 곱고 부드러운 질감의 황토 가루를 물에 잘 개어 치약이나 로션과 비슷한 정도의 점도로 만든 느낌. 일종의 머드팩과 비슷한 생김새와 질감이랄까. 멘디의 재료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최근에는 피부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유기농 재료로 만들어진 재료가 인기가 있다고 한다. 내가 받았던 것도 유칼립투스 오일을 더한 유기농 재료로 된 멘디였다.
할디 세리모니를 끝낸 이후 저녁. 멘디 아티스트가 내 방으로 찾아왔다. 검은색 히잡을 두른 무슬림 옷차림을 한 두 명의 젊은 여성들이었는데, 이처럼 멘디는 힌두교 만의 문화는 아니다. 무슬림, 더 나아가서 아프리카 쪽 일부 사람들도 멘디를 하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멘디 아티스트들에게 내가 원하는 디자인의 멘디 사진들을 보여주곤, 본격적인 작업 전 소량의 페이스트를 발라 피부에 직접 테스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멘디의 모양이 망가지지 않고 잘 받으려면 장시간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기에, 멘디 아티스트는 나를 편안한 소파에 앉으라고 안내해 주고는 작업을 시작했다.
작은 튜브에 든 멘디 페이스트를 조금씩, 마치 쌀알 정도 크기로 피부 위에 짜서는 마치 펜촉과 같이 뾰족한 튜브 끝으로 페이스트를 살살 풀어가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거창한 도구도 필요 없는 것이, 오로지 멘디 페이스트가 든 튜브 하나가 다였다. 빠르게 내 손목과 손바닥 위로 정교한 그림들을 그려나가는데 오로지 멘디 아티스트의 솜씨가 그 퀄리티를 좌우한다. 또한 멘디의 패턴은 각각 미묘한 발색과 명암의 차이를 보여주는데, 이는 멘디를 그릴 때 페이스트의 양을 미세하게 조절하여 다른 효과를 내는 듯했다. 가까이에서 보고 있자니 아티스트의 속도와 정확성에 그저 놀랄 따름이었다. 작은 내 손바닥에 온 신경을 집중하여 깨알같이 작은 그림을 그리는 모습에 혹시 거북목이 오지는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도 들었다.
오르한 파묵의 책《내 이름은 빨강 》에서 읽었던 이슬람 화가들의 세밀화가 저절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좁은 캔버스에 사물을 축소해 화려하게 표현하는, 화려한 디테일을 자랑하는 세밀화를 연상케 하는 멘디의 디테일.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직접 사진으로 보자. 혹시 인도를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멘디는 한 번쯤 받아보는 것을 권한다. 재미있는 체험 혹은 그 어떤 물건들보다 인상 깊은 기념품으로 남을 것이다. 천연 재료로 만든 헤나라 인체에도 무해하다. 물론 내가 받은 것처럼 화려하게 받을 필요는 없다.
애초에 내가 받은 멘디는 '신부 전용'이라 굉장히 화려한 편인데, 신부 전용 멘디를 받으려면 최소한 3~4시간 정도는 잡아야 한다. (사실 더 화려한 멘디가 있는데, 그건 7시간 넘게 걸린다고 하길래 정중히 사양했다.) 사실 이보다 간소한 디자인의 멘디가 훨씬 많다. 신부 멘디의 작업을 끝낸 아티스트들은 함께 있던 엄마와 이모에게도 간단한 멘디를 해 주었는데,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짧으면 3시간, 길면 7시간 이상 신부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서 멘디 페이스트가 마르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페이스트는 갓 발렸을 때는 굉장히 촉촉한 상태이기 때문에, 행여나 잘못 스치기라도 하면 애써 그려놓은 아름다운 패턴이 망가지기 십상이다. 나 역시 손가락 끝까지 발린 페이스트를 망가지지 않게 하고 말리느라 옴짝달싹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멘디를 받는 동안 주변에서 신랑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물을 먹여주거나 저녁 식사를 입으로 먹여주는 등 내 시중을 들어주었다. 사실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내 성격에 꽤나 고역이었다.
그래서인 걸까? 이 길고 지루하고, 또 고된(?) 시간을 버텨야 하는 신부를 위해 결혼식에 참석한 모든 가까운 여자 친척들이 멘디를 받는 동안 신부의 방을 찾는다. 멘디를 받기 전부터 내 방에는 십여 개의 의자들이 나를 마주 보는 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멘디가 진행될수록 이모님들과 신랑의 사촌 여동생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방에 마련된 의자를 꽉 채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방 안에 모인 우리는 모두 함께 담소를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특히 신랑의 이모님 세 분은 이렇게 제대로 가까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처음이었는데, 힌디어를 할 줄 몰라서 주변의 통역을 필요로 했지만 그저 함께 있는 시간 만으로도 포근한 느낌을 주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멘디 아티스트가 한 사람 한 사람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양손에 멘디를 해주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곁들여진 것은 바로 음악과 춤. 이모님들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종종 노래를 흥얼거리셨고, 사촌 여동생과 누나들은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며 즐겼다. 이것이 바로 산기트(Sangeet) 그 자체다.
산기트(Sangeet)란 신랑신부와 가까운 친척과 가족들이 모여, 이렇게 노래와 춤을 즐기고 또한 그 동시에 멘디를 받는 결혼식의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이다. 이 행사는 대개 결혼식 전날 밤에 이루어지며, 주로 참석하는 대상은 여자 친척과 가족들이다. 이렇게 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같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시간을 보내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친목을 도모하게 된다. 추측컨대 집안에 새로운 구성원이 된 신부를 위해, 결혼식 전 여자 구성원들끼리 서로 친해지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전통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3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고 나의 멘디는 모두 완성되어 있었다. 페이스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말라 붙으면서 겉의 표면은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이 떨어져 나가고, 남은 자리에는 진하게 그려진 멘디만이 남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신랑의 사촌 여동생들은 멘디의 색깔이 진하고 예쁠수록 남편에게 더욱더 사랑을 받게 된다는 인도식 미신을 알려주며, 가급적이면 모양을 잘 유지하고 자라는 당부를 건네곤 자리를 떠났다. 덕분에 그날 밤은 멘디를 지워지지 않게 하려고 침대에 똑바로 누워서, 배에만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는 등 온갖 노력을 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