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계일주 뺨치는, 다채로운 나의 인도 결혼식 이야기
<들어가기 전에>
푸자(Puja)란? 영어로 번역하면 'Act of Worship'. 힌두교에서 의미하는 일종의 의식 그 자체 혹은 의례와 같은 개념이다. 푸자라는 행위의 의미는 신을 제단으로 초청하여 모신다는 의미이니, 우리나라의 경우로 비유를 하자면 제사를 지낼 때의 의례, 즉 제례와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힌두교인의 일상은 푸자의 연속이다. 아이가 태어난 날에는 탄생을 축하하는 푸자, 각자의 생일마다 돌아오는 생일 푸자, 결혼 푸자, 장례식 푸자 등 개인의 삶에 관련된 여러 번의 푸자가 있다.
뿐만 아니라 거의 한 달마다 한 번씩은 꼭 있는, 각종 축제와 의식으로 가득한 힌두교의 모든 '빨간 날'들을 기념하려면 이에 따른 푸자 역시 필수이다. 또한 푸자의 횟수는 해당 기념일의 중요도에 따라 하루에 한 번이 될 수도 있지만, 결혼식과 같은 커다란 경사의 날에는 총 결혼식 기간에 걸쳐서 여러 차례의 푸자를 지낸다. 이때 힌두교에서 믿는 다양한 신의 이미지, 그 형상이 필요한데 이를 다양한 꽃과 과일로 대신하여 제단을 장식한다. 사용되는 과일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하며, 꽃의 종류 역시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많이 사용되는 꽃은 금잔화로 불리는 Marigold이다.
13. 드디어 시작된 결혼식, 그 첫째 날.
결혼식 첫째 날 아침, 가족들과 함께 도착한 리조트는 이미 웨딩 플래너 회사 직원들을 비롯해 케이터링 업체 직원들, 가까운 가족들, 그리고 행사 진행을 도와줄 리조트 직원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결혼식이 이틀 내내 야외에서 진행될 터라, 날씨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었는데 다행히 방갈로르의 하늘은 맑고 청명했다. 날씨가 좋다 못해 한낮에는 무려 온도가 섭씨 30도에 육박할 정도로 더웠다. 리조트에 도착하고 짐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포토그래퍼들의 열정적인 기념 촬영이 시작되으며, 방갈로르의 강렬한 햇살 아래 기념 촬영이 끝나자마자 바로 결혼식의 첫 번째 푸자가 시작되었다.
Satyanarayan Puja와 Mandap Puja라는 두 가지 푸자가 바로 결혼식의 첫 번째 푸자들인데, 이 둘은 결혼식을 시작을 알리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본식 전 신랑과 신부의 마음을 정화하는 의식이라 한다. 우선 Satyanarayan Puja는 힌두교의 신 중 비슈누(Vishnu) 신에게 바치는 의식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전생에서 자신이 저지른 업보 때문에 현생에서 각종 역경과 고난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이를 극복하는데 개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신에 대한 믿음들 중, 진실의 신인 비슈누를 숭배하는 믿음을 위시하여 나아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Mandap이라 함은 힌두교 결혼식에서 사용되는 네모 모양의 제단을 말한다. 보통 무대 한가운데 신랑신부가 앉도록 마련된 두 개의 의자를 중심으로 각종 장식들로 꾸며지며, 결혼식의 가장 중요한 본식인 Wedding Puja가 이루어지는 성스러운 장소이다. 이러한 신성한 장소가 될 만답을 결혼식 시작 전에 정화하는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Mandap Puja이다.
이런 종류의 힌두교 푸자를 처음 겪어보는 나는 다소 쭈뼛거리며 신랑의 옆에 착석했다. 눈앞에는 사과, 코코넛, 바나나를 비롯한 각종 과일들, 수많은 바나나 잎을 비롯한 각종 열대 식물의 푸른 잎들, 마치 인도 국기의 색을 연상케 하는 색깔들로 염색된 수많은 쌀알들, 그리고 그 쌀알들로 그려진 정체 모를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외에도 각종 향신료, 인도에서 신성한 것으로 취급되는 기(Ghee), 그리고 불을 지피기 위한 도구들이 보였다. 푸자를 위해 마련된 화려한 색감들의 제단을 보는 순간 "아,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차려진 각종 물건들을 바라보며, 그래도 무언가 상징하는 바가 있을 것 같아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각종 의미들 혹은 상관관계라도 유추해 보려 노력했지만 힌두교를 믿지 않는 나로선 역시나 무리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와중에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냥 무언가 마음을 경건하게 먹어야만 할 것 같다는 느낌.
곧이어 우리의 양 옆으로는 결혼식을 총괄할 두 명의 펀딧(Pundit)들이 등장했다. 우리나라로 본다면 결혼식의 주례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힌두교 결혼식에서의 펀딧들은 단순히 주례 그 이상의 일을 한다. 우리나라의 주례들은 결혼식장에서 짧으면 10분 길면 30분 남짓 결혼을 주관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인도의 펀딧들은 결혼식이 진행되는 기간 내내, 2일이면 2일, 일주일이면 일주일 내내 신랑신부와 함께한다. 이렇게 결혼식 기간 내내 진행되는 여러 개의 모든 푸자(적게는 2~3개, 많게는 열댓 개도 가능하다)들을 그들의 책임과 관리 하에 주관한다. 푸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 중 하나인, 고급어휘 중 하나인 산스크리트어로 진행되며 이들 펀딧은 이 산스크리트어에 통달한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 느낀 바는 주례라기보다는 사제 느낌에 조금 더 가까웠는데, 주로 펀딧들의 출신은 힌두 사회의 최상위 카스트인 브라만(Brahmin)이라고 한다.
펀딧들은 제단의 양 끝에 앉아 산스크리트어로 (이를 알아들을 수 없었으므로, 나의 추측과 남편의 간단한 설명에 의하면) 신랑신부를 위한 축복과 행운을 빌고, 경전을 낭독하고, 힌두교의 신에게 두 사람이 부부가 되려는 준비를 한다는 선언을 하였다. 첫 번째로 이루어진 이 Satyanarayan Puja와 Mandap Puja는 대략 두 시간 정도 이어졌는데, 섭씨 30도에 육박하는 방갈로르의 한낮의 여름 태양 아래서 두 시간 내내 각종 주문과 선언을 외우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늘막도 설치하지 않았던 터라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두 시간 내도록 목청껏 소리 높여 이야기하고 챈트(Chant)를 읊조리는 건 오죽하겠는가. 신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신앙심 없이는 이 일은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필 푸자가 시작된 시간이 오전 열한 시 반, 이후 두 시간 내내 땡볕 아래 이어진 푸자는 나와 신랑을 꽤나 힘들게 했다. 그늘막을 설치하지 않아 한낮의 강렬한 햇빛을 그대로 받은 우리를 안쓰럽게 여긴 가족들이 중간중간 옆에서 물병을 건네주었다. 게다가 나는 최대한 이 푸자를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그들의 문화를 최대한 존중해주고 싶은 마음에 중간에 딱 한 번만 쉬었는데... 덕분에 이후 약간의 탈수증세와 현기증이 찾아와 점심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바로 방으로 직행해 쉬어야만 했다. 덕분에 결혼식 기간 내내 고통받았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미련한 짓을 했다고 생각한다. (후회막심)
위 시간표는 이틀 동안 이어진 결혼식 타임라인이다. 앞으로의 내용은 위 결혼식 타임라인에 맞추어 2박 3일간 일어난 인도 결혼식의 이모저모를 서술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