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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브리나Sabrina Oct 12. 2023

결혼하다, 인도에서 - 6

태계일주 뺨치는, 다채로운 나의 인도 결혼식 이야기


14. 이것을 빼놓고는 인도 결혼식을 논할 수 없다, 그것은 바로 댄스!



 오전에 이어진 두 개의 연속된 푸자가 끝나고, 탈수 증세를 호소한 나는 점심을 대충 거르고 일단 방으로 돌아와 누웠다. 뭔가를 먹고 싶어도 속이 메스꺼워서 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넘어가지 않았다. 급하게 구글에 '탈수 증세 처방'을 검색해 보니 소금물을 마시라고 한다. 이에 따라 긴급 처방으로 생수에 소금을 약간 타서 마셨더니 현기증과 메스꺼움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잠시 누워있으니 내 상태를 보러 온 신랑은 거듭 나의 컨디션을 체크하더니, 어느 정도 괜찮아 보이는 나를 향해 춤출 수 있겠냐고 물었다.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지만 짜인 일정이 많아 무작정 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인도 결혼식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 춤. 


 인도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 못지않게 흥이 많다. 그들 역시 춤과 음악을 사랑하는 민족들이다. 결혼식과 같은 이러한 잔칫날에, 춤이란 절대로 빠질 수 없다. 왜,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2>에서 기안 84가 초대된 인도식 결혼식에서도 수십 명의 인도 사람들이 음악에 맞추어 몇십 분을 흔들어 재껴대지 않던가. 인도 사람들의 흥에 장단을 맞추느라 기안 84 역시 땀을 흥건히 흘리며 결혼식의 댄스 스테이지를 장악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남편에게 인도 사람들이 춤을 사랑하는 이유를 물으니, 딱히 거창한 이유는 없단다. "우리는 노래는 잘 모르겠지만, 춤은 무조건 춰야 해!"라는 것이 그의 답변이다. 


  곧이어 사람들이 멀리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귀를 때리는 듯한  엄청나게 시끄러운 북소리가 들려왔다. 위에 첨부한 사진들 중 상단에 있는, 돌리(Dholi)가 바로 그 정체였다. 마치 우리나라의 장구와 흡사한 생김새를 가진 돌리들. 북의 왼쪽과 오른쪽 양 쪽을 번갈아가며 나무채로, 빠른 리듬으로 때려대는데 연주하는 모습마저 마치 장구와 비슷하다. 다만 그 소리는 마치 꽹과리와 비슷할 정도의 데시벨이랄까. 이쯤에서 소리가 궁금할 분들을 위해 짧은 동영상을 첨부한다.





 돌리 소리가 들리는 곳을 따라가 보니, 우리의 앞에는 두 명의 악사들을 포함한 가족과 친척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악사들은 길목의 중간 즈음에서 우리를 막아서곤, 힌디어로 무어라고 말을 건넸다. 곁눈질하는 내게 신랑은 '이 길을 통과하려면 춤을 잘 춰야 한다' 라며 본인이 먼저 앞장서서 댄스를 리드하기 시작했다. 그가 춤을 추는 것을 본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본인의 결혼식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150% 정도는 더욱 신나 보이는 몸짓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의 춤에 만족했는지 악사들은 다음 타깃으로 넘어갔다. 신랑과 신부의 춤을 봤다면, 이제 다음은 가족들의 차례. 


 악사들은 뒤이어 대기하고 있던 우리 부모님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다소 쭈뼛거렸던 나와는 다르게 신나게 춤을 추는 어머니와 점잖게 춤을 추는 아버지, 그리고 이모를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나왔다. 통과를 요구했으나 이번에는 아버지에게 지나가려면 돈을 내시라며, 현금 몇 푼을 요구하는 악사들. 이 장면에는 마치 우리나라의 함 문화가 연상되는 순간이었다. 인도 루피 몇 장을 그들의 주머니에 찔러주자 그들은 이번에는 신랑 가족들로 향했다. 시아버님과 남편의 형님은 멋진 인도 남자들 답게, 이것의 인도의 흥이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방갈로르의 인싸(!) 답게 형님은 꽤나 춤을 잘 추셨고, 한 가지 놀라웠던 것은 평소에 꽤나 무뚝뚝하던 시아버님의 흥이었다. 






15. 할디, 노란빛으로 가득한 축복


 한바탕 흥겨웠던 댄스가 끝나고, 악사들을 따라가 보니 그 끝에는 할디(Haldi)를 위해 마련된 스테이지가 있었다. 결혼식 본식만큼이나 중요한 또 하나의 세리머니, 할디. 무대 위에는 커다란 원형의, 얕은 높이의 물이 담겨 있는 노란색으로 꾸며진 대야 같은 것이 두 개 놓여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작은 의자가 하나씩 마련되어 있었고, 물 위에는 노란색의 금잔화 꽃잎이 가득 흩뿌려져 있었다. 할디 세리머니답게 채도와 명도가 다른 각종 노란색으로 장식된 스테이지는 꽤나 아기자기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우리는 두 의자에 각각 나란히 앉았고, 우리가 자리에 앉자 펀딧이 할디 세리머니의 시작을 알렸다. 곧 사람들도 우리 주위로 모여들었다.


 할디란, 재차 설명하자면 인도 결혼식에서 본식 전 이루어지는 성스러운 의식이다. 강황 가루와 약간의 기름, 그리고 물을 섞은 것을 신랑 신부의 몸과 얼굴에 발라주는데, 이로써 결혼 전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 자체로 신의 축복이라고 여겨지는 행위이다. 나 역시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온몸에 강황 가루를 발린 채 노랗게 될 마음의 각오는 어느 정도 되어 있었다. 그런데 웨딩 플래너들이 인도 사람들에 비하면 내 피부가 많이 하얀 편이라, 강황 가루가 자국을 남길지 아닐지 테스트를 해 볼 필요가 있다며 손등에 강황 가루와 물 섞은 것을 발랐다. 잠시 후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노란색으로 피부가 물들었고, 덕분에 나는 진짜 강황 가루를 사용하는 대신 똑같은 노란색을 가진 금잔화 꽃잎으로 세리머니를 진행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무대 정중앙에 자리한 우리를 두고, 펀딧이 산스크리트어로 각종 주문과 챈트를 외우며 세리머니를 시작했다. 실토하자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잘 모르겠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의 향연과 지속된 탈수 증세의 결과인 현기증의 콤보는 굉장했다. 한참을 이어지는 펀딧의 목소리에 대충 멍을 때리고(!) 있었던 와중 펀딧이 우리에게 다가와 축복을 내리기 시작했다. 우선 그는 신랑에게 다가가, 강황 가루와 물 섞은 것을 적신 작은 붓을 들고 남편의 정수리에 한 번, 왼쪽 어깨에 한 번, 그리고 오른쪽 어깨를 한 번 붓으로 털었다. 곧 나에게는 금잔화 꽃잎이 가득 담긴 종이컵을 들고 와 꽃잎을 한 꼬집 쥐더니, 똑같이 내 정수리에 한 번, 양 어깨에 각각 한 번씩 꽃잎을 뿌려주었다. 




 그렇게 펀딧의 축복이 끝난 후, 이제 남은 것은 결혼식 하객들의 차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하객들이 한 명씩 우리에게 다가와 축복을 내려주기 시작했다. 단순히 꽃잎을 뿌려주는 행위 자체뿐만이 아니라, 모두들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우리에게 따뜻한 한 마디를 건네주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서른 명 남짓의 가족과 친척들로부터 축하의 의미가 가득 담긴 꽃잎 세례를 받는 그 기분은 참으로 묘했다.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할디 세리머니가 주는 그 신성한 느낌 그 자체가 말 그대로 '축복'으로 느껴졌으며, 나도 모르게 저절로 손을 모아 모두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인사를 하게끔 하는 순간이었다. 


 마침내 모두로부터의 축복이 끝나고, 펀딧은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이모들, 사촌 여동생을 비롯한 집안의 모든 여자 친척들을 한데 모았다. 그리고 이어진 어머니로부터의 축복. 각각의 어머니의 손과 이모들의 사리 끝자락을 정수리에 올리고는 펀딧과 함께 축복의 주문을 외웠다. 예로부터 인도 집안의 각종 종교적인 행사와 의식들을 주관하는 것은 어머니, 그리고 이모를 비롯한 여인들의 담당이라던 말을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단순히 할디 세리머니뿐만 아니라 결혼식의 모든 크고 작은 푸자를 이끌어 가는 사람은 바로 신랑의 이모님들이었다. (신랑은 몇 년 전 어머니를 여의었는데, 그 역할을 대신해 주신 Mamta Mausi를 비롯한 모든 Mausi, 즉 이모님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이로써 결혼식 첫째 날의 가장 중요한 행사인 할디가 마무리되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나는 남은 오후 시간을 방에서 쉬면서 보냈는데, 한참 후 잠깐 얼굴을 보인 신랑을 보니 강황 가루가 얼굴을 비롯한 온몸에 잔뜩 발라져 있었다. 할디 뒤풀이의 일환으로 사촌 형제자매들과 강황 가루를 온몸에 바르며 즐겁게 놀았다고 하는데, 참석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다음으로는 인도 결혼식 전야제에서 빠질 수 없는 멘디(Mehndi)산기트(Sangeet)라는 또 다른 중요한 행사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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