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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강원 Apr 29. 2023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오페라로 옮기면 어떤 모습일까?

셰익스피어와 베르디의 공수래공수거. 결국 우리도 한낱 인간일 뿐이다. 

국내에서 쉽게 실황 공연을 접하기 어려운 베르디의 대작 오페라 '맥베스'가 이달(4.27.- 30.)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다. 국립오페라단은 이번에도 출연 성악가들의 면모가 화려하다. 맥베스 역에는 바리톤 양준모와 이승왕이 캐스팅됐다. 레이디 맥베스 역은 소프라노 임세경과 유럽에서 주목받는 신예 소프라노 에리카 그리말디가 맡는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탄탄한 원작에 베르디의 치밀한 음악 구성이 더해진 걸작으로 꼽힌다. 그러나 무대 전환이 여러 번 이뤄지는 데다, 고난도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음악, 오페라 소재로는 예외적으로 사랑 이야기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무대 공연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국립오페라단은 2007년 초연 이후 16년 만에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맥베스'를 선보인다. 이번 공연은 오페라계 '젊은 거장'으로 불리는 연출가와 지휘자가 함께 한다. 지난해 국립오페라단이 올린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를 연출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탈리아 연출가 파비오 체레사가 다시 한국을 찾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밀라노 라 스칼라 등 세계 주요 오페라 무대에서 지휘봉을 잡은 이브 아벨이 지휘를 맡는다.

국립오페라단은 이번 공연에서 무대 전환에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하나의 세트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상징적으로 무대를 꾸민다. 대표적으로 이성과 욕망의 균형을 잡지 못하는 인간의 상태를 꼽아볼 수 있겠다. 이런 형태의 무대 세트는 공간적으로 상황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목적이다. 무대미술, 조명, 의상 등 다양한 요소를 유기적으로 이어 맥베스의 내면을 드러내는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페라 맥베스 포스터 / 국립오페라단 제공

제작자의 의도와 상상력을 파헤쳐 보자

국립오페라단은 본격적인 공연에 앞서 작품을 소개하는 ‘오페라 프리뷰’라는 자리를 마련했다. 국립오페라단의 신임 예술감독 겸 단장인 최상호의 진행 아래 지휘자 이브 아벨과 연출가 파비오 체레사가 작품을 소개하는 방식이었는데, 제작진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무대를 꾸며나가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자.


최상호 단장 오페라 프리뷰는 정기공연 2주 전에 출연진과 제작진들과 함께 작품에 대해서 서로 소통하는 자리입니다. 해외에서는 매 프로덕션마다 공연 1-2주 전에 마티네 콘서트로 진행하게 되는데요. 저희는 여러 가지 여건상 이른 오후(2PM)에 진행하게 됐습니다. 공연을 앞둔 이 시점에는 오페라 가수들을 비롯해 모든 제작진들이 예민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건강관리와 스케줄 조정 등에 대해서 각별히 관리하는 시기이기도 하죠.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이 자리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최 단장 파비오 체레사 연출가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벌써 세 번째 한국에서 작업을 하고 계시는데요.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요?
파비오 체레사 이런 형태의 질문은 함께 작업하는 오페라 하우스마다 매번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대답하기가 훨씬 편하네요. 왜냐하면 이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거든요.(웃음) 제가 서울에 와서 국립오페라단과 함께 오페라를 올린 것이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그전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기쁘게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고, 동료들의 열정에 항상 감탄을 하곤 합니다. 저는 오페라를 올릴 때마다 제 머릿속에서만 존재했던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무대에서 형상화하는 것에 굉장히 큰 기쁨을 느끼고 있어요. 지금 객석 뒤쪽에 협력 연출을 맡고 계신 조은미 연출가님께서 계시는데요. 이 자리를 빌려 조은미 연출님과 연출부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공연을 올리기 위해 무대를 형상화하고 힘들게 연습하고 있지만, 연출부에서 굉장히 애써주신 덕분에 저희가 수월하게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최 단장 이번에 무대 연출을 통해서 특별하게 어떤 메시지를 집중적으로 전달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파비오 체레사 프로덕션마다 연출을 통해 개인적인 경험이나 신념을 작품에 심어 넣는 편입니다. 저는 긍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굉장히 비극적인 드라마 속에서도 항상 좋은 메시지를 집어넣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무언가와 항상 부딪히고 맞서 싸워가고 있지만, 끝내 평온함이 찾아오잖아요?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이런 투쟁의 끝에 따라오는 평안함, 안도감과 같은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비록 내 손이 피로 물들었다고 해도 언제든 용서를 구하고, 평화로움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최 단장 이번 연습 기간 동안 한국 성악가들과의 만남은 어떠셨나요?

파비오 체레사 제가 생각하기에 전세계 오페라 싱어의 절반은 한국 출신인 것 같아요. 오늘날 전 세계에서 들어볼 수 있는 훌륭하고 멋진 목소리를 가진 분들이 한국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에서 한국인 성악가를 소개받는 경우라고 해도 별로 놀랍지도 않아요.

이번 공연에서 맥베스 역을 맡은 이승왕 선생님은 2007년에 외국에서 처음 만났고, 또 작품을 같이 한 적이 있어요. 임세경 선생님의 경우 이번 작품에서 레이디 맥베스 역할을 맡아주셨는데요. 임세경 선생님과는 ‘라 보엠’, ‘아이다’, ‘수녀 안젤리카’라는 작품을 같이 했었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수녀 안젤리카’라는 작품에서 뵈었을 때예요. 작중 안젤리카 수녀에게는 작은 아들이 있는데,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수술을 하게 됩니다. 당시 프로덕션에서는 누군가가 그 아들을 오케스트라 피트 밑으로 들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도록 안내를 해주셔야 할 분이 있어야 했어요. 이걸 당시 조연출이었던 제가 하게 된 겁니다. 수염이 나있는 상태에서 수녀 복장을 하게 된 거죠.(웃음) 당시 임세경 선생님께서 수녀 역할을 맡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첫 만남은 둘 다 수녀 복장을 한 채로 만나게 되었던 것이죠.


▲ (왼쪽부터) 소프라노 임세경, 바리톤 이승왕 / 국립오페라단 제공

최 단장 만약 내년 혹은 그 이후에 한국에 모셔오게 되었을 때, 특별히 하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

파비오 체레사 하고 싶은 작품은 굉장히 많지만, 개인적으로 합창이 많이 들어간 작품을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준비가 잘 되어 있고, 열정이 넘치는 합창단은 흔치가 않아서 이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자 기쁨이에요. 그래서 어쩌면 ‘아이다’도 괜찮을 것 같아요. 물론 쉬운 오페라는 아니지만, 저는 도전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최 단장 이번엔 이브 아벨 지휘자 선생님께 여쭤보겠습니다. 한국에서 오페라 지휘가 처음이신데, 외국에서 경험하신 것과 비교했을 때 다른 점은 어떤 것이 있나요?

이브 아벨 한국은 세 번째 방문입니다. 몇 년 전에 서울시향과 콘서트를 두 번 한 적이 있고, 맥베스에 참여하기 일주일 전에는 서울시향을 비롯하여 성악진들과 함께 갈라 콘서트 공연을 올린 바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저는 이 나라를 굉장히 사랑합니다. 이 나라의 문화도 좋고, 한국 사람들이 서양문화를 아끼는 것도 너무 좋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동서양의 문화가 잘 어우러져 있는 그런 나라라고 생각을 해요.



� 이브 아벨의 한국 지휘 아카이브 

서울시향 정기공연: 이브 아벨의 프렌치 콜렉션(2014.07.04.)
서울시향 정기공연: 카르미나 부리나(2017.07.05.-06.)
세아이운영문화재단 음악회(2023.03.15.)(故 이운형 회장의 뜻을 기리는 갈라 콘서트)

∴ 한국 무대에서 오페라 지휘는 처음이 맞다.



최 단장 파비오 체레사가 독특한 연출을 하고 계시죠. 이런 연출로 인해서 음악을 입혀 나가시는데, 불편하거나 문제점은 없으세요?

파비오 체레사 (마이크가 파비오 체레사에게 돌아갔다.) 이번에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작품을 준비할 때, 웬만하면 마음을 비우고 시작하는 편인데다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연습을 시작하는 편입니다. 제가 이브 아벨 지휘자 선생님과 함께 작업을 한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어요. 지휘자님께서 오페라를 저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오셨더라고요.(웃음) 리브레토의 각 페이즈마다 하나씩 하나씩 철저하게 준비를 해오시는 바람에, 제대로 계획하고 연출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웃음)


최 단장 그렇기 때문에 사실 제가 지휘자 선생님께 여쭤본 건데요.(웃음) 지휘자 선생님, 한 말씀해 주시죠.

이브 아벨 정말 고마워요. 연출가님이 거짓말을 참 잘하시죠?(웃음) 파비오 연출님은 이 작품을 마치 손바닥 안에 놓고 있는 것처럼 모든 부분에 이해도가 높습니다. 작품 속 텍스트와 합창 그리고 솔로곡까지 모든 것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계세요. 저도 연출가님도 맥베스는 처음 올려봅니다. 또한 작품 속에서 복잡한 인물이 다양하게 많이 나오기도 해요. 하지만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연출가님의 깊은 지식과 많은 경험은 제게 큰 행운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파비오 연출가님과 함께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큰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최 단장 이 작품을 감상할 때, 관객들이 기대해야 할 음악적인 색채감이나 요소가 무엇이 있나요?

이브 아벨 오페라 맥베스는 밑바닥부터 맨 꼭대기까지 모두를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가장 깊은 어두운 색감부터 굉장히 밝은 빛,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빛깔까지 모두 담고 있어요. 어둠에 갇혀 있는 다른 많은 오페라와는 달리 베르디의 음악은 아름답습니다. 그 이유는 어둠을 뚫고 들어오는 빛과 희망을 음악 속에 모두 담아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서곡에 등장하게 될 무대 연출 / 국립오페라단 제공



최 단장 언젠가 파비오 체레사 연출가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많은 베르디 작품 중에 유일하게 이 작품만 남녀 간의 사랑이 관계가 없는 작품이라고요

파비오 체레사 네, ‘맥베스’는 다른 오페라와는 달리 사랑이라는 소재를 특별히 강조한 작품은 아닙니다. 작중에서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가 부부 사이이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사이임에는 부정할 수 없지만, 이들 사이에 있는 사랑이란 감정이 오페라의 주된 주제가 되거나, 사랑이 진화를 하고 발전을 하는 형태를 띠진 않아요. 이는 굉장히 특이한 일입니다. 오페라에 있어서 ‘아모레(사랑)’는 굉장히 자주, 흔히 나오는 단어니까요. 그래서 다른 작품에 비해 독특한 작품이죠.

독특하다는 관점에서 또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극을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이 서로 대결을 하거나 싸우지 않고, 한 편이 되어 공통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함께 싸우는 모습을 보이고요. 합창단(코러스)이 세 번째 주인공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면서 굉장히 특이한 밸런스 구조를 가집니다. ‘맥베스’는 이런 특이한 밸런스로 인해 독특한 에너지가 발생되는 작품입니다.



최 단장 네, 말씀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이 자리에 오신 관객분들께 질문을 받아볼까 하는데요.

관객 1 파비오 체레사 연출가님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외국 사람이랑 작업하게 되면 언어적인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요. 이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점이나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간극이 있지는 않았나요?

파비오 체레사 사실 연습을 할 때는 지금처럼 통역가와 함께 소통하고 있습니다.(웃음) 그렇지만 굉장히 중요한 질문을 하셨어요. 언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형상화해서 표현하고 전달할 때 사용되는 거잖아요? 이 부분에 개인적인 경험을 좀 풀어내보고 싶은데요. 제가 밀라노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올 때, 승무원분들께서 같은 질문을 한국어와 영어로 두 번 질문하셨어요. 이때 가만히 지켜보면, 서로 다른 언어에 따라 목소리의 톤과 보디랭귀지, 심지어 목소리의 멜로디까지 아주 급격하게 바뀌더라고요. 거의 두 사람인 것처럼 말이죠.(웃음)

저는 이런 개인적인 경험들을 연습할 때도 잊지 않고 항상 생각하며 작업을 합니다. 그래서 배우들에게 동선 안내를 하는 경우에는 이때 가져가야 할 감정과 유지해야 할 분위기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죠. 뭐 사실 이런 세부적인 디렉팅이 소통에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동일한 언어를 하지 않더라도 서로가 통할 수 있는 ‘음악’이 함께 하기 때문에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서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브 아벨 저도 여기에 덧붙여서 이야기를 드리고 싶은데요. 파비오가 말씀 주신 것처럼 음악은 인간을 공동체로 만들어주는 우리 모두의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베르디의 음악은 굉장히 감동적이죠. 잘 살펴보면 어떤 나라의 어떤 문화에서 살아왔든 상관없이 베르디의 음악을 듣고 똑같은 감동을 느낄 수가 있어요. 또한 국가와 인종에 상관없이 베르디의 음악을 즐기고 노래를 하죠. 특히 같은 문화권이 아닌 다른 언어로 말을 하는 나라에서 작업하더라도, 음악을 불렀을 때 그 프레이징이 비슷한 것을 보면 음악 속에 담긴 감정이 비슷하게 전달된다고 생각을 해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감정을 느끼고, 노래를 부르지 않는 나라는 없죠. 음악은 언어와는 상관없이 모두 동일한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분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작업을 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 (왼쪽부터) 연출가 파비오 체레사, 지휘자 이브 아벨


관객 2 파비오 연출가님, 조금 전에 이야기 주셨던 승무원 경험담에서 한국어로 말씀하셨을 때와 영어로 말씀하셨을 때 어떠셨나요?

파비오 체레사 한국어로 단적인 톤으로 쭉 가기보다는 한국어로 들었을 때 플루트처럼 고음이 많이 났었던 것 같고, 굉장히 매혹적인 느낌이 났었어요. 근데 의외로 영어로 이야기했을 때는 저음이 많이 났던 기억이 나네요.
최 단장 사실 이번 작품을 할 때, 출연진들 대부분이 이탈리아어에 능통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 소통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사실 무대를 만들어가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한국어가 아닌 다른 나라의 언어로 풀어내는 작품을 관객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와 같은 것들 말이죠. 그래서 출연진들은 연기와 연출에 대해서 더 깊은 고민을 이어가게 됩니다. 음악이 밑받침이 되어 베르디의 깊은 감동을 잘 이끌어낼 수 있도록 국립오페라단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관객 3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으로 유명한데, 오페라로 만들어진 작품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맥베스의 가장 크게 와닿았던 부분, 가장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도 알려주세요.

파비오 체레사 셰익스피어의 연극 맥베스와 베르디의 오페라 맥베스의 차이점은 굉장히 많습니다. 제가 또 마이크를 잡았으니, 여러분들은 앞으로 20분간 저의 이야기를 꼼짝없이 들으셔야겠네요.(웃음) 1848년도에 베르디가 맥베스를 작곡했을 당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가 이탈리아어로 번역된 번역본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경우에는 인터넷에 검색을 해봐도 직역본, 의역본, 각색한 버전 등 각기 다른 번역본이 나오죠.

하지만 당시에 베르디는 영국에서 건너 온 영어로 된 오리지널 버전을 가지고 작업을 하셨어요. 당시에 쓰였던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언어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말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사용됐던 고어로 되어 있어 이해하기 힘든 단어들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래서 작업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을 거예요. 당시에 쓰인 셰익스피어의 언어들은 시적이고, 비유와 상징적인 것도 많았으며, 그 나라와 그 시대에 살았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조크 같은 것들도 많이 쓰여 있거든요.

‘리골레토’와 ‘라 트라비아타’를 쓰셨던 프란체스 피아베 작가님께서 ‘맥베스’를 굉장히 힘들게 번역하셨는데, 베르디는 이 번역본이 만족스럽지 못했다고 해요. 그래서 주위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과 안드레아 마페이를 비롯한 여러 지식인들에게 일일이 물어보면서 도움을 받기도 했어요. 근데 오히려 번역이 더 엉망이 되었다고 합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었죠. 베르디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굉장히 사랑했기 때문에 맥베스 외의 다른 작품들도 다 오페라로 옮기고 싶어 했거든요. 결국 맥베스 이후 40년을 기다린 후에야 ‘아리고 보이토’라는 작사가를 만나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원작과 오페라의 가장 큰 차이는 ‘코러스’ 부분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작중 세 명의 마녀를 오페라에서는 합창단이 소화합니다. 이 세 명의 마녀를 상징하기 위해 섹션도 세 가지로 나눴어요. 연극과의 차이점에서 보면 형식적인 부분도 꼽아볼 수 있습니다. 19세기 중반에 쓰인 오페라는 아리아, 콘체르타토, 론도, 듀엣과 같은 형식을 지켜야 했지요.


마녀들의 합창 콘셉트 / 국립오페라단 제공

파비오 체레사 참고로 여러분들이 보시게 될 오페라 버전은 오리지널 버전은 아닙니다. 파리에서 공연되기 위해 만들어진 1865년도 버전이에요. 당시 프랑스 관객들을 위해 수정했는데, 아리아와 듀엣을 빼고, 발레를 추가했어요.(이번 프로덕션에서는 발레가 빠진다.) 이외에도 프랑스 관객들을 위해 마지막 부분에 드라마틱한 아리아가 삭제되고, 코러스가 추가되었지요.

한편 연극과 동일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앞서 지휘님께서 말씀하셨던 색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무게감이 있는 어두운 분위기 그리고 웅장함과 같은 것들은 ‘맥베스’ 작품 속에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들이죠.


관객 4(필자) 지난해에 올렸던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에서 흰색과 오렌지색을 강조함으로써 일종의 컬러 코딩을 보여주셨는데, 혹시 이번에 올리게 되는 맥베스의 경우에도 연출가님만의 특징점을 갖고 있는 연출을 볼 수 있을까요?

파비오 체레사 저는 컬러 코딩을 사용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특정한 색감은 극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20세기에 활동하셨던 아돌프 아피아 연출가님은 오페라에 있어서 현대적 무대미학을 확립했던 분이세요. 아돌프 아피아는 무대 위에서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기차역과 같은 느낌은 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즉 무대 위에서 각기 다른 색과 스타일, 다른 의상을 알록달록하게 입고 있으면 시선이 분산되기 때문에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와 이미지, 아이디어가 모호해진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이번 오페라 ‘맥베스’의 경우에도 통일된 컬러 코딩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극이 처음 시작했을 때는 중립적인 느낌을 주는 베이지색으로 시작해요. 인간은 처음에 태어났을 때 모두 평등하고, 똑같이 태어나니까요. 그런데 극이 진행되면서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의 손에 피로 물들이기 시작합니다. 이 피는 점점 의상에 물들어가기 시작하죠.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되었을 때는 온통 빨간색으로 물들게 됩니다. 극의 종결부, 맥베스는 이승에서 저승으로 걸어가는 여정을 보여줄 텐데요. 마치 정화의식을 치르듯이 의상을 하나씩 벗어서 결국 베이지색 의상으로 돌아갑니다. 인간은 태어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죽음의 순간에는 모두 평등하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의상과 무대에 적용되는 컬러 코딩 / 국립오페라단 제공

최 단장 저희는 지금까지 매력적인 이탈리아 젊은 남성의 목소리에 취해 여기까지 달려오게 됐네요.(웃음) 이번에는 지휘자님께 여쭤보겠습니다.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로 음악을 들려주실 것인지, 또 어떤 점을 특별하게 생각하시는지 알려주세요.

이브 아벨 오페라는 여러 가지 다양한 요소들이 합쳐져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오페라 가수, 연출가, 지휘자가 있어야겠죠. 합창단도 준비가 잘 되어 있어서 우리가 원하는 스타일로 부를 수 있어야 하고요. 외에도 오케스트라, 의상, 조명도 포함되죠. 이런 여러 가지 요소들 중에 하나만 약세를 보여도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집니다.

국립오페라단에 대해서 제가 한 가지 말씀 드리면, 단장님 덕분에 저희가 얼마나 편안하게 공연을 올릴 수 있는지 아마 모르실 겁니다. 레이디 맥베스의 경우 오페라 역사상 가장 어려운 역할 중 하나인데요. 여기 필요한 소프라노를 비롯하여 바리톤, 베이스 등 주역들 모두 더블 캐스팅이 이뤄졌습니다. 이런 요소들만 보더라도 무대를 준비하는 저희로서는 성공적으로 오페라를 올릴 수 있겠다는 자신감부터 생기거든요.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최 단장 말씀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세계적인 연출가와 지휘자 참석해 주셔서 더더욱 빛나는 작품이 될 것이라 봅니다.


▲ (왼쪽부터) 소프라노 에리카 그리말디, 베이스 박종민, 바리톤 이승왕



이후 프리뷰의 말미에는 A 팀의 방코 역을 맡은 베이스 박종민, B 팀의 맥베스 역을 맡은 바리톤 이승왕, 레이디 맥베스 역을 맡은 소프라노 에리카 그리말디가 작품 속 주요 아리아 한 곡씩 선보였다.


Act I: Nel Di Della Vittoria... Vieni! T'Affretta... Or Tutti Sorgete
� 소프라노 에리카 그리말디(레이디 맥베스 역)
Act II: Studia il passo, o mio figlio … Come dal ciel precipita
� 베이스 박종민(방코 역)
Act.IV: 'Perfidi! All'Anglo Contro Me V'Unite! ... Pieta, Rispetto, Amore’
� 바리톤 이승왕(맥베스 역)


올해는 베르디 탄생 21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국립오페라단은 ‘비바 베르디! 비바 오페라!’시리즈를 내걸고 시즌을 진행한다. 향후 베르디의 역작 ‘일 트로바토레’(6.22.-25.), ‘라 트라비아타’(9.21.-24.), ‘나부코’(11.30.-12.3.)가 예정되어 있는데, 이는 국내 오페라 무대에서 종종 올라오는 작품들이기 때문에 기대감이 반감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자주 올려지지 않는 오페라 ‘맥베스’가 더없이 소중한 시간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작품을 통해 피로 물들어가는 우리는 그저 불안정한 감성을 가진 연약한 인간일 뿐이라는 메시지와 욕망에 사로 잡히는 순간, 죽어서야 평화가 찾아온다는 결과물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오페라 맥베스를 통해 삶 속에서 수단이 목적을 집어삼키지 않도록 각자의 방향성을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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