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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영 Apr 16. 2022

시력 0.1 안경을 쓰지 않는 이유

내 시력은 오른쪽, 왼쪽 0.1이다.


0.1로 보는 세상은 흐릿하고 불명확하다. 예를 들어 큼지막한 표지판들은 읽히지만 자동차 번호판이나, 인물의 생김새, 지하철 노선도는 매우 흐릿하게 보여 가까이 다가가거나 두 눈을 찡그려 겨우 확인을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학생일 때는 렌즈나 안경이 없으면 칠판의 글씨가 안보이기 일수였고 바깥에서 친구를 찾거나 발견하는 일도 어려워 애를 먹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렇게 0.1로 보는 세상의 풍경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난, 회사를 갈 때를 빼고는 대부분 안경이나 렌즈를 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흐릿한 시선으로 보는 세상의 멋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아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불명확한 것들은 불편함을 주지만 가끔 수줍음이 많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준다.


특히나 보기 싫은 것들을 보지 않을 수 있는 자유. 난 비위가 약해 더러운 것을 잘 보지 못하고, 죽은 동물들의 사체나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거리의 파전을 절대 보고 싶지 않다. 흐릿한 시선은 빠르게 지나가는 순간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단숨에 잔상으로 만드는 단점이자 장점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내가 보기 싫은 것을 보지 않을 때, 그것은 큰 장점이 되고 주로 꼴도 보기 싫은 인간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점이 너무 좋다.


물론, 반대로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명확한 시선을 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건 안경과 렌즈가 언제든지 도움을 주기 때문에 내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사물의 형태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더 멋지고 깔끔해 보인다는 착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밥 먹다가 옷에 묻은 얼룩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얼굴의 뾰루지나 털 같이 지저분하게 생각되는 요소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말끔하다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


생각보다 흐린 눈으로 세상을 보는 건 아름다움을 덜 보이게도 하지만, 더 잘 보이게도 하는 것 같다. 난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안 보여주는 0.1의 도수가 마음에 든다. 세상을 완전하게 보는 건 내게는 아직 부담스러운 것 같다. 선명하지 않기 때문에 흐린 부분을 동화적 상상으로 채우는 것도 좋고, 물감으로 그린 풍경화처럼 색감에 의지해 바라보는 것 또한 낭만적이고 감각적이다.


이렇기에 난 당분간 라식이나 라섹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내게 부족하고 결함이 있는 부분을 완벽하게 채워나가기보다는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와 장점을 찾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0.1의 시력이 1.0의 시력보다 못하 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난 0.1의 시선이 더 마음에 든다. 세상의 나쁜 것들을 흐리게 보여주는 내 두 눈과 오늘 하루도 아름다운 세상을 기억하는 나의 마음에 감사하며. 다음날도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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