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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영 Apr 02. 2024

배려가 배려가 아니었다니

"선생님이 신경 써줘서 고맙지만, 이런 건 저에게 좋은 해결방안이 아니에요."


나의 연인 민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보다 조금 굳은 눈빛과 어두운 안색이 누가 봐도 방금 싸운 커플 같았다. 

난 민의 얘기를 듣고 조금 당황했다. 평소 정리정돈을 잘 못하는 나와 달리, 깔끔하고 너저분한 것을 싫어하는 민은 어지럽혀져 있는 공간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정리를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옷장과 옷걸이를 사고, 청소기도 구입했다. 작은 집에 워낙 물건이 많은 탓에 조금은 정돈된 듯했지만 너저분한 건 여전했다. 그래도 나는 그가 내가 한 노력을 알아주길 바랐다. 나도 나름의 '노력'이라는 것을 한건 맞으니깐. 


그런데 공간 문제로 다투다 나온 그의 말은 그동안의 내가 쓴 시간과 비용을 허무하게 만들었다. 배려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오히려 그 배려를 배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니. 


'나는 그래도 당신을 위해 알아보고 생각해서 사 온 건데!' 


억울한 마음이 들다, 민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곱씹어 봤다. 그의 근본적인 공간에 대한 스트레스는 정리정돈 안된 잡동사니들과 넘쳐나는 물건들이었다. 하지만 1차원적으로 '청결'에만 초점을 뒀던 나는 그에게 정리할 수 있는 물품과 청소용품을 사주고 어느 정도 내 기준에 눈에 안 띄게만 치워두면 만족할 것이라 혼자 결론지었다. 다시 말해, 내가 상대를 위해 배려를 하고 있다는 마음을 얻기 위해 의미 없는 배려를 한 것일 뿐이었다. 그 사실을 알자마자 마음속의 서운함 보다 부끄러움과 당황스러운 감정들이 몰아쳤다. 


내가 생각하는 다정히 누군가에겐 이기적인 감정이었다는 사실과 상대방과 나의 차이가 생각보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격차가 크다는 것에 놀랐다. 난 민에게 어수룩한 내 감정과 깨달음을 이야기했다. 민 또한 내 노력에 대한 인정과 함께 본인이 원하는걸 현재 상황에서 해결해 줄 수 없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아직은 각자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상대방에 대한 경험이 적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는 더 많이 싸우고, 또 다른 차이를 알아가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나는 민과 현명하게 풀어가고 싶다. 우리 사이의 연대와 사랑이 그 차이를 좁히고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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