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왜곡 터널시야
평소에도 바쁘지만 월요일 아침은 더 바쁘다.
10시에 대면 수업이 있어서 9시에는 나가야 되는데, 또 아이 둘을 등원시켜야 한다.
어른도 월요일이 힘든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아이들은 월요일 아침만 되면 엄청난 떼쟁이가 된다. 온갖 이유를 들어가며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표현한다.
정말.. 월요일 수업은 제시간에 맞춰간 적이 거의 없기에 오늘만큼은 시간에 맞춰 가고 싶었다.
나름 빨리 준비를 잘했다고 생각했고, 이제 가기만 하면 되는데... 어제도 그렇게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아니나 다를까 첫째의 생떼가 시작됐다. 티니핑 매니큐어를 사달라고 난리가 났다.
첫째가 우니까 둘째도 울기 시작하며 안아달라고 난리다.
어르고 달래도 안되고 시간은 가고 있고, 식은땀이 나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 또 시작이다.
참다 참다 소리를 꽥하고 질러버렸다. "야!! 신행복!!! 안 나와??? 너 혼자 두고 간다?!!"
크게 야! 하는 소리에 아이는 깜짝 놀랐지만, 아이는 화가 난 듯 나를 빤히 쳐다봤다. 저 모습은 내가 화날 때 남편에게 하던 모습 그대로라서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더 화가 난 나는 더 협박하듯이 아이를 다그쳤다. 꿈쩍도 안 한다.
저놈의 황소고집..............
결국 둘째를 아기띠로 안아 들고, 두 팔로 첫째를 안아 억지로 신발을 신겼다.
정말 온갖 험한 말이 다 나올 것 같은 입을 틀어막느라 엄청나게 노력했다. 한숨은 푹푹 쉬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후다닥 어린이집에 갔고, 가기 싫다는 아이들을 억지로 어린이집에 맡기고 부랴부랴 운전하며 수업에 가는 길.
현타가 제대로 왔다....
이렇게 서둘렀는데 또 늦었다.
잘 챙긴다고 챙겼는데... 키즈노트로 아이 양치세트를 또 챙기지 않았다는 선생님의 메시지를 봤다.
나의 윽박지름에 결국 울음을 터뜨린 첫째의 모습이 계속 생각났다.
도대체 난 뭘 하는 걸까. 차라리 돈을 벌러 일을 나가는 거면 모르겠는데, 공부를 하는 건 진짜 순전히 엄마인 내 욕심 아닌가.
내가 공부만 더 하지 않았더라면, 굳이 듣고 싶은 수업이라고 월요일 아침 대면 수업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아이들이 조금은 더 편했을까. 도대체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뭔데.
온갖 감정이 오고 가는 중에 갑자기 억울해졌다.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왜 나는 늘 모두에게 미안할까. 울컥했다.
내가 굉장히 형편없게 느껴졌다.
욕심은 있는 대로 부리지만 사실 아무것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는 실패한 엄마같이 느껴졌다.
아이들은 잘 클 수 있을지 염려가 밀려왔다.
"하나님 엄마의 자리에서 성장한다는 게 이런 거예요? 너무 구차하고 비참해요"
울먹거리며 운전을 하고 가는데, 터널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터널 시야"라는 인지적 왜곡이 떠올랐다.
인지치료에 의하면 심리적 어려움은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될 때 떠오르는 부정적인 내용의 자동적 사고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특정 내용의 자동적인 사고를 활성화하는 것은 역기능적 인지도식인데, 이는 곧 인지 왜곡이라 불린다. 우리는 어떤 사건이 바로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사이에는 왜곡된 자동적인 사고가 있는 것이다. 사건 그 자체가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자동적인 사고가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말 그대로 (어린 시절부터의 경험으로 축적돼 온) 자동적인 사고이기에 애써 의식하려고 하지 않으면 잘 자각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치료에서는 개인의 삶에서 심리적 문제를 일으키는 자동적 사고를 탐색하며 보다 객관적이고 타당한 방식으로 사고하도록 돕는다.
그렇다면 지금 내게 떠올랐던 "터널 시야"라는 인지적 왜곡.. 이건 뭐냐면 어떤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였을 때 그 상황의 부정적인 면만을 바라보게 되는 자동적인 인지적 왜곡이다. 우리는 평소에 잘 기능하다가도 우울해지거나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일 때 그 상황의 전체를 바라보지 못하고, 마치 터널 안에 갇힌 듯 부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춰 현상을 바라본다. 지금 내 마음이 딱 이랬다.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건 하나도 없는 것 같고, 다 실수하고 있고 잘 못하고 있는 것만이 눈에 들어왔고, 이러면서 무슨 상담 공부를 하러 가는 것이냐고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 순간에 깨달아지면 된 거다. 자각이 되면 이제 괜찮다.
당장 해결되지 않아도 해결의 실마리는 얻을 수 있기에.
심호흡을 해보며 나의 심리적 시야를 확장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상황을 전체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나의 노력과 애씀의 과정도 함께 봐주기로 했다.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윽박은 질렀지만.. "넌 애가 왜 이러냐, 왜 이렇게 날 힘들게 하냐" 등 아이 인격을 모욕하는 더 심한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참았다.
양치컵을 또 챙기지 못한 실수를 범했지만, 이것이 엄청난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내일은 꼭 챙겨 넣으면 된다.
또 지각했지만... 그래서 너무 미안하고 면목없지만 그래도 오늘 아침에도 난 진짜 진짜 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했던 나는 인정해 주자
아이는 결국 울고 갔지만.. 그래도 다시 만나 우리는 다시 풀 수 있을 것이고 좋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
비록 내 욕심으로 공부를 시작했을지언정, 나는 성장하고 싶은 엄마다. 이것이 결국 나와 우리 가정에 더 좋을 것임을 믿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내가 힘들고 지칠 때는 있을지언정 행복하다. 엄마의 행복은 곧 아이의 행복이니까. 괜찮다. 잘 가고 있다.
마음이 굉장히 뾰죡해져 나 스스로와 주변을 막 찌르는 느낌이었다면.. 시야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마음이 조금은 더 여유롭고 말랑해지는 느낌이었다. 우울함과 후회와 자책에 빠져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의식적으로라도 봐주고 인정해 주니까 이만하면 괜찮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오후 아이와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는 내 염려와는 달리 오늘 나름대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며, 밥도 잘 먹고 잘 있다가 왔다.
나도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했고, 많은 걸 배우고 나눌 수 있었다.
내 하루도 아이의 하루도 염려했던 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내 예상보다 우리 둘은 이만하면 꽤 괜찮은 하루를 보내고 다시 만났다.
엄마의 자리에서 성장한다는 것, 참 멋진 말이지만 이렇게 매일 치열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 치열함은 뭔가 큰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이렇게 등원과 같은 작고 사소한 일상적 사건에서도 부딪히며 일어나는 일이기에, 엄마로서 내 마음과 생각을 돌아보는 시간은 잠깐이라도 꼭 필요한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 부정적인 자동적 사고에 확 휘말려 나뿐 아니라 아이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미안하거나, 염려되거나, 불안해질 뿐 아니라 순간순간 억울하고.. 울컥 화가 나게 만들기도 하니까.
울컥하고, 화가 났다가, 미친 듯이 불안하고, 미안하고, 죄책감 드는.. 엄마도 인간이니까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순간 잘 알아차리고, 부정적 감정에 좁혀져 있던 내 시야를 넓혀서 전체를 볼 수 있는 힘이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실수하고 실패할지언정 상황을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엄마이고 싶다.
아마 내일 하루도 계획대로 흘러가지만은 않겠지만, 그래도 파이팅이다.
아이도 나도 이만하면 잘 자라고 있다.
엄마의 자리에서 성장하고자 부지런히 애쓰는 나 자신을 충분히 위로하고 격려해 주고 싶다.
괜찮다고, 충분히 애쓰고 있는 걸 안다고.
고맙다고.
이 길의 끝도 꽤 괜찮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