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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근네모 Jan 29. 2024

오래된 일기를 읽으면 우울해진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군

 다이어리는 나의 오랜 취미다. 7-8년 정도 되었을까. 일기도 열심히 쓰고, 스티커나 마테가 잔뜩 든 '다꾸상자'를 앞에 놓고 하루에 몇 시간씩 집착하며 꾸미기도 했다. 물론 등락은 있어서 매일 빠짐없이 썼던 해도 있고 한 달에 서너 개를 겨우 채운 해도 있다. 이러나 저러나 연말이면 한 해 동안 쓸 다이어리를 고르고 골라 구입해서 목숨 걸고 꾸민다.


 그러다 보니 집에는 다이어리가 제법 쌓였다. 조그만 3단 책장에서 두 줄 남짓 차지하고 있다. 집에 놀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줄지어 꽂힌 다이어리들을 신기해 하며 한 마디씩 하는데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이런 거 나중에 읽으면 재밌겠다'다. 하지만 나는 지난 다이어리는 잘 열어보지 않는다. 스티커와 마테, 메모지로 덕지덕지 열심히도 꾸며놓았지만 그 안의 내용은 거의 쓰레기통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다이어리에 쓰는 것이 모두 다 진심은 아니다. 그 순간의 기분일 뿐이다.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일도 그날에는 뭔가 삔또가 상해서 너무 싫다고 적어놓았을 수도 있고, 별 생각 없던 지인을 괜히 좋게 혹은 나쁘게 적어놨을 수도 있다. 그래서 가끔 내가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죽게 되면 누군가 내 다이어리를 보고는 얘가 나를 이렇게 생각했구나, 하고 상처받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해보기도 한다. 죽은 뒤엔 진심이 아니라고 해명할 수도 없을 텐데. 아니 사실 살아서 해명해봤자 일기 쪽이 왠지 진심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다. 죽기 전에, 들키기 전에 미리 해명하자면, 일기에 적어놨다고 해서 꼭 숨겨왔던 진심인 것은 아니고 그냥 그 순간 내키는대로 적어놓은 감정의 쓰레기일 수 있다.


 물론 진심인 내용들도 많다. 다이어리에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나의 깊고도 어두운 고민들이 잔뜩 있다. 내가 지난 다이어리를 다시 열어보지 않는 건 사실 이 때문이다. 오래전 써놓은 나의 어두운 마음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적잖이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단지 우울한 내용이어서가 아니라, 지금 하는 고민들과 달라진 게 없어서다. 읽다 보면 거의 어제 쓴 것 같은 일기도 있다. 한 사람이 발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오늘의 고민과 7년 고민이 같은 것을 보면 현타가 오지 않을 수 없다. 자식, 이때도 이걸로 고민했었단 말이야? 그리고 지금도 별로 변한 게 없군...?


 어두운 내용들은 대부분 가족들에 관한 얘기가 많다. 그러니까 사실 달라지기는 쉽지 않은 문제다. 그렇지만 똑같은 일로 이토록 한결같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나도 참 어지간하다. 길고도 지난한 이야기들을 줄줄이 감정에 받쳐 써놓은 글씨들을 보고 있자면 나 자신한테 좀 질린다.


 마음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같은 상황에서도 분명 덜 힘들어 하고 금방 잊는 사람도 있을 텐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스티커 따위에 몇 만원씩 쏟아가며 예쁘게 꾸며놓은 다이어리는 그래서 페이지마다 우울과 분노의 냄새가 배어 있다. 약간 쩐내에 가까운, 익숙하고 묵은 냄새다. 그 변함없음이 지겨워서 옛날 다이어리들을 잘 열어보지 않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다. 낱장마다 내 손을 잔뜩 탄, 밉지만 사랑스러운 나의 마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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