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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근네모 Feb 05. 2024

처음으로 화분을 들였다

언제나 자취하는 기분으로 살았는데

 최근에 이사를 했다. 캘린더에는 주말마다 집들이 일정이 잡혀있다. 손님맞이 음식을 준비하고 치우고 하는 노동은 제법 번거롭긴 하지만 막상 친한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 집 구경도 시키고 맛난 것 먹으며 살림에 대한 수다를 떨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겁다. 하나씩 들고 오는 선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디퓨저만 빼고 알아서 사 오라고 하니 누구는 음식물처리기를, 누구는 휴지를, 누구는 그릇세트를 사 왔다. 아직까지는 모두 마음에 쏙 들었다.


 가장 최근 집들이는 내 직장동료들이었는데 집들이 선물로 화분을 들고 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콕 집어 화분이 갖고 싶다고 하여 집 앞 마트에 가서 같이 골라왔다. 아마 이 글도 보게 될 텐데 함께 낑낑 대며 들고 와주어 감사하다. 내가 고른 식물은 몬스테라와 올리브 나무로 생긴 것도 예쁜 데다 초보자도 키우기 쉽다고 했다. 예전부터 식물을 키우고 싶었는데 드디어 소원을 이룬 셈이다.


 성인이 되고부터 계속 자취를 해서 지금 사는 곳이 네 번째 집이다. 원룸, 원룸, 투룸을 거쳐 지금은 투룸 오피스텔이다. 작은 집이었지만 혼자 살았으니 그동안 언제든 원하면 화분을 들일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마트 같은 델 가면 가드닝 코너에 발이 묶여 못 지나가면서도 그냥 나중에 키워야지 생각만 했다. 왜 그랬는고 하니, 돌봐야 할 존재를 들이는 건 사치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했던 것 같다. 나 하나도 건사하기 버거운데 화분은 무슨 화분. 이사 힘든데 짐 늘이지 말자. 그렇게.


 그런데 이번 이사를 하고 나니 마치 계시가 내려온 것처럼 이제 화분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일까. 딱히 내 집 마련을 한 것도 아니고 번듯한 아파트에 들어온 것도 아닌데. 이제 '자취방'이 아니라 비로소 '집'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남자친구와는 이전 집부터 함께 동거를 했다. 동거를 하려고 한 건 아니고 내 자취방이 남자친구 회사와 가깝다 보니 점점 자고 가는 날이 많아지다가 아주 눌러앉게 되었다. 물론 '거의 매일 자고 가는 것'과 '아예 함께 사는 것' 사이에는 엄청나게 큰 간극이 있어서 부모님 허락이나 주변 커밍아웃(?) 등등 여러 문제들이 있었지만 어떻게 잘 해결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결혼 날짜를 잡기도 했고, 이 집으로 이사오기 전에 혼인신고도 해서 이제는 동거도 아니게 되었다. 거기에서 안정감이 오는 걸까.


 부모님과 지금은 얼추 잘 지내지만 사이가 대체로 아주 좋지는 않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걸 알면 서운해하실 텐데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부모님을 생각하면 막 마음에 안정감이 들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다. 돈도 없으면서 자취를 고집해온 것도 그래서이다. 자취한 뒤로 본가에서 잠을 잔 적은 손에 꼽는다. 근 3년 간은 한 번도 없다. 그러니 늘 가족이 있는 본가보다는 자취방 쪽을 '내 집'으로 여겨왔는데, 다른 사람들은 항상 내 집을 집이 아니라 '자취방'쯤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인간이란 사회적 동물이라 남들의 판단에서 아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자취방에 살았다. 자취하는 기분으로. 물론, 나이가 그렇게 어리진 않으니 이제 남들은 자취생이라고 생각 안 하는데 나만 계속 그렇게 느낀 걸 수도 있다.


 꼭 결혼을 해야만 온전한 가정으로 인정해주는 것 같은 사회의 시선에 불만이 있었다. 1인 가구를 좀 더 온전한 것으로 여기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물론 지금도 같은 생각이고 1인 가구로 사는 것도 썩 좋았다. 법적으로 나의 식구가 생기고 나니 왠지 모를 안정감이 들었을 뿐이다. 내가 직접 내 가족을 꾸렸다는 것에서 (내 경우에는) 큰 안정감이 오는 것 같다. 이제 정말 자취방 같은 게 아니라 내 집이라는 생각이 스스로 든다. 비록 전셋집이고 몇 년 뒤엔 또 이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똑같지만 그런 것과는 다른 문제다.


 집들이가 끝나고 바로 남자친구와 화분 두 개를 들고 집 앞 꽃집에 가서 예쁜 토분을 구입하고 분갈이까지 맡겼다. 다음날 정갈한 토분에 담긴 나의 몬스테라와 올리브나무를 가져와 창가에 놓으니 마음이 뿌듯하다. 진짜 내 가족, 내 집이다. 너희 둘 정도는 내가 건사할 수 있지. 잘 키워야겠다. 나도 덩달아 긴 분갈이를 마친 기분이다. 잘 뿌리내려야지.


우리 집에 온 첫 식물 식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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