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적 거리던 부부를 건져올린 건, 다름 아닌 작디 작은 우리 딸아이였다
아내가 회사에서 그토록 힘들어하고 있을 즈음, 우리 부부에게 새 생명이 찾아왔다. 아내가 임신하게 된 것. 임신 초기, 임산부는 굉장한 긴장감에 휩싸인다. 혹시 모를 유산에 대한 가능성으로 안정을 취하는 것이 그 시기 엄마에게는 가장 중요한 과업이 되겠다.
그 당시 아내는 과연 어떤 상태였을까? 옆에서 아내를 지켜본 바, 아내는 정신적으로 꽤 많이 위축돼 보였다. 그녀는 내가 알던 예전의 아내가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 가스라이팅하는 것처럼, 그 감정과 분위기에 스스로 조금씩 침전해 갔다.
불안했을 것이다. 힘들게 품은 아이를 지켜내야 한다는 엄마로서의 책임감과 동시에 아무렇지 않은 척, 이 악물고 회사를 다녀야 하는 직장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게 쉽지 만은 않았을 것이다. 늘 안쓰러웠다. 입덧을 하며 출근하는 날이라던지, 회사일로 스트레스받은 이야기를 할 때면 나 또한 늘 미안하고 답답했다.
"그냥 조금 일찍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안 되나?"
"흠. 중간에 들어가면 업무 공백 생겨서 좀 민폐인 거 같아. 하는 데까지는 해볼게."
"돈 안 벌어도 되니까, 힘들면 그냥 휴직해."
"알았어."
처음엔 융통성 있게 행동하라고 아내에게 조언을 한 적도 있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남편으로써 정말 최악의 말을 뱉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렇게 심리적으로 지쳐있는 아내의 편이 되어주지는 못할 망정, 회사의 편에 섰으니 아내로서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싶다.
사실 그깟 회사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뱃속의 아이가 무사하고 건강하게 지내는 게 모든 남편이자 아빠들의 목표가 아니겠는가? 나의 이런 만류에도 아내는 출근을 계속 이어나갔다. 아내의 스트레스는 그렇게 더욱 쌓여갔다. 그렇게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며, 임신 20주 차에 다다를 무렵, 부부에게 일생일대의 사건 하나가 벌어진다.
산부인과를 방문해 정기검진을 받던 그날, 우리는 의사로부터 아이에게 이상 소견이 있음을 전해 듣는다. 구순구개열 증상이 보인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입술이 제대로 붙어있지 않은 상태로 아기가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의사의 말에 부부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아내가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나에게 이야기를 꺼냈을 무렵, 그때 나는 아내에게 더욱 강하게 휴직에 들어오라고 말해줘야 했던 걸까? 위로보다 아내와 아기의 건강을 위해 강제적으로라도 밀어 붙어야 했을까? 이 사실을 알게 된 얼마 이후, 아내는 하반기 인사 발령을 한 달 앞둔 시점에 회사에 휴직계를 제출한다.
아내는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누구보다 맡음 소임에 최선을 다했고, 등 뒤에 숨어 이간질을 한 사람도 아니었으며, 무리를 지어 누군가를 괴롭힌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아내가 정의롭게 했던 말 한마디에 아내는 그 시간 내 굉장한 고통의 시간을 겪어야만 했다.
회사는 굉장히 잔인한 곳이다. 무리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으면, 특별한 사람으로 취급받게 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불합리한 대우를 받게 된다. 이런 상황에 나의 의견을 개진한다? 글쎼, 회사를 오래 다니고 싶다면, 그냥 조용히 묻어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그런 연유로 나는 더 이상 회사에 의견을 개진하지 않는다. 회사의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도 아내는 그때 그 시절이 가끔 꿈속에 나타난다고 말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더욱 당당해지자는 주문을 그녀의 머릿속에 계속 집어넣어 주는 일뿐이다. 회사에서 꽤 많은 상처를 입은 후에야 아내는 집으로 돌아왔다.
짐을 하나둘씩 정리하고. 마지막 짐을 싣고 집으로 오던 날이 생생히 그려진다. 주차장에서 폴짝폴짝 뛰면서 걸어가던 그녀의 뒷모습. 안도감과 동시에 밀려드는 미안함이 당시 내가 가진 감정의 전부였다. 지금 그녀의 상황은 어떨까? 적어도 내가 보기엔 훨씬 더 단단해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알던 해맑게 웃어대는 예전 그녀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아 보인다.
어쩌면, 딸아이가 우리의 구원자였는지도 모른다. 딸아이가 없었더라면, 아내는 조금 더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고, 스스로 무너졌을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순간부터 아내 그리고 나의 삶은 180도 판이하게 달라졌고, 그녀 덕분에 우리는 다시 생기를 찾을 수 있었다. 이것이 부부가 딸아이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끼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