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 이야기. 어렸을 적 누구나 들어봤음 직한 이야기다. 엄마의 말을 따르지 않고 늘 반대로만 행동하던 아들 청개구리는 엄마가 병에 들어 죽기 전 마지막 순간, '냇가에 묻어달라'는 부탁을 처음으로 따른다.
하나, 그 선택은 오히려 평생의 후회와 슬픔을 남긴다. 비 오는 날이면 무덤이 떠내려갈까 걱정하며 개굴개굴 울어대는 청개구리. 그 울음은 단순히 동화 속 한 장면이 아니라, 이따금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은유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우리는 이따금 '청개구리와 같은 행동'을 하는 이들을 만난다. 무엇이든 반대로 하는 사람. 주변에 꽤 있지 않은가? 나 역시 주변에서 간간히 보아왔었고 말이다. 이 이야기는 단순하게 부모에 대한 효를 다룬 이야기만은 아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자는 교훈을 넘어,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회는 늘 조직 속에 우리를 위치시킨다. 학교, 회사 그리고 어딘가에 소속됨에 따라 주어지는 제도와 혜택. 소속이 곧 안정이고, 안정이 곧 삶의 조건이 되는 세상이다.
5년의 백수 생활 끝에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게 됐다. 이는 부모의 눈에도, 타인의 시선에도 꽤 나쁘지 않아 보였다. 소위 말해 그럴싸해 보였다. 하나, 잠시 뿐이었다. 이 생활에 조금씩 젖어들며 내 마음은 조금씩 침전해가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갈 찰나, 전환점 하나를 맞이하게 됐다. 육아휴직이었다. 처음으로 조직의 틀에서 벗어나 나답게 살아본 시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쉬고 싶을 땐 쉴 수 있는 자유. 아이와 함께한 지난날들은 역동 그 자체였다.
그 당시의 나는 청개구리였다. 남성 공무원 중 드물게 육아휴직을 사용한 사람 중 하나이고, 동반 육아휴직을 사용한 몇 안 되는 사례에 뽑히며, 무려 18개월이라는 긴 시간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1년이면 돌아오겠지'라는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6개월을 더해 육아휴직을 했으니 이즈음이면 청개구리가 맞는지 모른다. 돈이라는 물질을 버리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그리고 나의 시간을 선택했다.
단순히 가족만을 위한 결정은 아니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 평생 학교, 회사라는 조직의 틀 안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삶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기회를 준 사건이기도 했다.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삶이 과연 진짜 나의 삶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계기였다고나 할까.
그리고 다가올 2026년, 또 한 번의 막장 드라마 한 편을 준비하게 됐다. 두 번째 육아휴직. 외벌이로 전환되며 수입은 반토막 나게 된다. 또렷한 계획은 아직 없다. 표면적으로 가장의 무책임함이 엿보이는 듯하고 열심히 아이를 부양해야 할 시점에 최악의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자연은 극한의 환경에서 진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이는 인간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쥐가 궁지에 몰렸을 때, 고양이와 맞서 싸우듯, 나도 나만의 해결책을 강구해내지 않을까?
다시 청개구리의 가면을 쓴다. 긴장감은 크지만, 이번에도 나는 즐길 것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순간을, 나의 삶을. 사회가 정해놓은 틀을 잠시 벗어나,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볼 용기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