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한 짓이었을까

by 자향자

2017년 1월, 성수와 지영이 결혼한 지도 어느덧 석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여느 신혼부부와 같이 별반 다를 것 없는 매일을 보내는 그들이었다.



그러던 어느날의 새벽 1시, 성수는 식탁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지영이 혹시나 깰까 염려스러워 소리 나지 않게 조심스레 마우스를 더블 클릭해 엑셀 파일 하나를 열었다. 파일 이름 '가계부.xlsx' .



이 파일을 만든 지는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다. 솔직히 살면서 이런 걸 만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저 월급이 들어오면 쓰고, 남으면 얼마 저축하고, 부족하면 조금 줄이는 식의 패턴이 이제껏 그의 삶이었다. 돈 관리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삶. 딱 그정도였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니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다. 지출 항목이 갑자기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월세, 관리비, 공과금, 식비, 통신비, 경조사비까지. 혼자 살 땐 큰 감흥없던 것들이 한데 합쳐지니 조금 커 보였다. 이제야 숫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성수는 수입 그리고 지출 항목을 하나씩 훑어내려 갔다.


월 실수령액 합쳐서 430만 원

고정 지출 290만 원

남는 돈 140만 원


140만 원. 성수는 그 숫자를 한참이나 쳐다봤다. 많치도 않고 엄청 적지도 않은 금액. 솔직히 적어 보였다. 단돈 140만 원 안에서 지영과 외식, 옷, 여행, 비상금을 쌓아내야 했다. 이리저리 통밥을 굴려보니 실질적으로 저축에 넣을 수 있는 건 한 달에 80만 원 남짓이었다.


80만 원

1년이면 960만 원

10년이면 9,600만 원


성수는 계산기를 연신 두드렸다. 이자를 조금 보수적으로 잡아도 10년 후 모을 수 있는 돈은 1억 남짓이었다. '대체 이걸로 뭘 할 수 있는 거지.'



그들에겐 문제라면 문제랄 게 하나 있었다. 전셋집에 걸려있는 보증금 1억 4천 만원. 여기서 대출 6천만 원을 뺀 8천만 원이 성수와 지영이 인생을 살면서 쌓아온 전 재산이었다. 10년 뒤에 모은 돈을 합쳐본다면 단순 계산으로 남는 돈은 고작 2억 남짓이었다.


'그 때가 되면 과연 서울에 아파트 한 채. 살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 성수는 그 답을 알고 싶지 않았다. 알고 있었지만, 그 결과를 앞당겨오고 싶진 않았다. 슬프게도 아무리 눈을 감아도 숫자는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새벽 2시 즈음, 지영이 물을 마시러 밖으로 나왔다. 부엌에서 노트북 화면이 환하게 켜진 걸 보고 멈춰 섰다.


"안 자?"

"응, 좀 있다가."


지영이 다가와 성수의 노트북 화면을 쳐다봤다. 숫자들이 빼곡한 엑셀 가계부를 보며 지영은 아무 말하지 않았다. 성수가 먼저 말을 꺼냈다.


"10년 모아도 서울에 집 사기 빠듯할 거 같아."

잠이 덜 깬 얼굴을 한 지영이 의자를 끌어당겨 성수 앞에 앉았다.

"나도 알아."

"알고 있어?"

"당연하지."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

성수는 화면을 보며 말했다.


그가 지영 앞에서 돈 이야기를 입 밖에 꺼낸 건 사실 처음이었다.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것들이 점점 실체가 드러나고 있었다.



공무원 월급이 안정적이라는 건 알지만, 안정적인 것과 충분한 것은 다르다는 걸 그 새벽녘에 그들은 다시 한번 인지하게 됐다. 오롯이 안정이란 게 성수의 삶의 목표였는데, 막상 안정을 이루고 보니 그다음이 없었다. 문제였다.


"뭔가 해야겠어?"

지영이 말했다.

"해야겠는데."

"뭐하게?"

성수는 답을 할 수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건 알겠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 감도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자. 새벽에 가계부 보면 더 우울하잖아."

"응."

"자다 보면 안 좋은 생각만 더 나는 거지 뭐."


지영 말이 맞았다. 새벽에 그 숫자들을 보자니 더 막막할 뿐이었다. 성수는 노트북을 얼른 닫았다. 그날 이후 성수는 달라졌다. 작은 것부터 시작했다.



그가 즐겨마시는 저가커피를 사 먹지 않았다. 싸구려 텀블러를 하나 샀고,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스탬프를 하나씩 적립해나갔다. 편의점 대신 마트에서 장을 보는 건 그즈음부턴 당연한 일이었다. 그날 이후 아무리 바빠도 택시를 타는 일은 없었다.



한 달이 지나자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었다. 지출이 무려 30만 원이나 줄어든 것. 두 달이 지나자 저축액은 110만 원을 가리켰다. '이거다."



성수는 가계부를 업데이트하며 그 숫자를 뚫어져라 들여다봤다. 이번엔 느낌은 매우 달랐다. 늘어나는 금액이 또렷하게 보인 건 그의 삶에 꽤 오랜만인 일이었으니까. 처음으로 돈을 모인다는 감각을 느꼈다.



그 무렵, 직장 선배 김 주사가 점심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 하나를 꺼내 들기도 했었다.


"박주임, 결혼했으면 이제 집 생각 슬슬해야지."

"전세 살고 있어요."

"전세가 답이야? 요즘 전셋값이 얼마인데. 차라리 작은 거 하나 사는 게 낫지."

"그런가요? 요즘 집값이 워낙 비싸서요."


성수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집을 사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대출을 내서 집을 산다는 게 어떤 건지 감조차 오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에게 빚은 무서운 존재였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워왔으니 당연지사였다.



그날 저녁, 성수는 집에 돌아와 인터넷 검색창에 '아파트 매매. 경기도. 2억 대.' 엔터를 누르며 마우스 스크롤을 쉴새없이 내렸다. 촤르르 떠있는 매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성수는 한 시간 넘게 화면을 들여다봤다. 정말로 처음 보는 세계였다.



그해 2018년 봄. 성수 씨 부부는 경기도 외곽의 소형 아파트 하나를 계약했다. 매매가 1억 9천. 대출 9천. 실 투자금 무려 1억. 성수와 지영이 3년 가까이 각자 모아 온 돈과 결혼 후 저축한 돈을 합치니 딱 알맞았다. 단돈 백만 원도 그들에게 남는 건 없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던 날, 성수의 손은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공인중개사가 말했다.


"잘 사셨어요. 이 동네 오를 거예요."


성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그의 말을 믿을 순 없었다. 오를지 안 오를지는 하늘만 알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는 충분히 인지했다. 이제 그들에게 빚이라는 게 생겼다. 무려 9천만 원의 빚.



퇴근길 버스 안에서 성수는 그 숫자를 머릿속에 되뇌었다.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가계부의 숫자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막막함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정말 무겁지만 움직일 거란 희망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영이 저녁을 차리며 말했다.


"그럼 이사는 다음 달에 해야 하나."

"응, 잔금 치르고 바로."

"짐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다."

"응." 지영이 국을 저으며 말했다.

"잘한 거지?" 성수가 잠깐 생각하고 답했다.

"몰라."

"진짜 솔직하다."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니까." 지영이 짧게 웃었다.

"그래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응."

"그럼 됐어."


성수는 식탁에 앉아 지영이 차려주는 저녁을 기다렸다. 창밖은 어두웠다. 봄이라고 했지만 저녁 바람은 아직 겨울의 여운이 남은 듯한 느낌이었다.



9천만 원의 빚. 그리고 처음 가져본 자기 집. 일명 자가. 성수는 숟가락을 들었다. 허기진 그의 배가 밥을 달라며 아우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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