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시선

by 자향자

2019년 3월. 이사한 지 어느덧 2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성수는 퇴근 후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설 때면 습관적으로 107동이라 적힌 아파트의 동번호를 보곤 했다.



2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그 숫자를 볼 때마다 멈칫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리 대단한 감정은 아니었다. 그저 이 집에서 자신이 살고 있다는 게 조금 신기했을 뿐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에서 내렸다. 삑삑삑.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렀다. 집안에서는 찌개 냄새가 진동했다. 지영이 먼저 집에 돌아와 부엌에서 저녁상을 차리고 있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국자로 찌개를 휘휘 저으면서 유튜브 하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성수가 들어서자 지영이 뒤를 돌아봤다.


"왔어?"

"응."

"손 씻고 와. 얼른 밥 먹자."


성수는 손을 씻으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마흔둘. 공무원 9년 차. 그간 대출은 9천에서 6천으로 줄었다. 3년 동안 매달 갚아도 6천이나 남았다. 꽤 지겨웠지만 어쨌든 줄어드는 숫자를 보는 맛도 이제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왔네.'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늘 복순 씨가 그러더라." 저녁을 먹으며 지영이 그에게 말을 건넸다.


이복순. 청사 청소부 출신 공무직. 지영과 같은 건물을 쓰다 보니 안면이 한두 번 있기도 했다.


"뭐라고?"

"우리 아파트 요즘 많이 올랐다고 말해주더라? 부동산에서 봤대."


그 말을 들은 성수는 조용히 숟가락을 내려놨다.


"얼마나 올랐대?"

"모르겠어. 많이 올랐다고만 하던데?"


성수는 이내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2년 전 당시 아파트를 샀을 때의 가격은 매매가 1억 9천이었다. 얼마나 올랐을까. 그 자리에서 바로 확인하고 싶었다만, 일부러 찾아보진 않았다.



사실 크게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성수는 이제껏 굳이 시세를 찾아보진 않았다. 정확히는 관심이 없었다기보다, 혹시나 찾아봤다 가격이 안 올라있으면 기분이 그저 그럴까 봐 확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그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늦은 밤 11시. 지영이 잠든 모습을 확인하고 성수는 조용히 일어나 식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포털사이트에 아파트 단지명을 검색했다. '얼마나 올랐을까?'



성수는 화면을 빤히 들여다봤다. 조금은 믿기지 않는 풍경을 보며 그는 화면을 재차 확인했다. 2억 7천.

샀을 때보다 무려 8천이나 올랐다. 같은 동 같은 평형대 최근 실거래가는 2억 6천5백 그리고 2억 7천을 포함해 두 건이나 있었다.



8천이라. 성수는 계산기를 꺼내 들었다. 대출 이자로 은행에 지금까지 낸 돈 3년 치 원금 상환액을 빼고도 순수하게 오른 게 6천만 원이었다.



곧장 월급 모아 6천을 모으려면 몇 년이 걸리나. 계산하다가 그는 멈췄다. 씁쓸한 계산임이 뻔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얘가 나보다 일 훨씬 잘하네." 안도감을 갖고 그대로 성수는 다시 지영의 옆에 누웠다.


다음 날 점심. 성수는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다 옆자리에 있는 김 주임을 만났다. 작년에 수원 쪽에 아파트를 한 채 더 샀다고 했던 그였다.


"김 주사님, 수원 아파트. 요즘 어때요?"

"왜, 관심 생겼어?"

"그냥요."

"많이 올랐지. 살 때보다 1억은 올랐을 거야."


흠칫 놀란 성수는 대수롭지 않은 척하며 그에게 물었다.


"그거 살 때 어떻게 결정했어요?"

"그냥 오를 것 같아서 샀어"

"그게 다예요?"

"박주임. 부동산이 별거야? 오를 것 같은 데 사는 거지 뭐."

"오를 느낌을 어떻게 알아요?"

"공부해야지. 임장 다니고, 호가도 보고, 전세가율도 보고 말이야."


성수에겐 익숙지 않은 단어들이었다.


"전세가율이 뭐예요?" 김 주사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그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성수는 그의 말을 처음엔 흘려들었다. 그런데 어느새 듣다 보니 하나씩 귀에 박히기 시작했다. 조금 더 공부가 필요하겠다만, 다행히 미적분에 나오는 아주 낯선 수학 공식처럼 들리진 않았다.



전세가가 높으면 매매가를 받치고 공급이 부족한 곳은 수요가 가격을 민다는 것 그리고 인구가 모이는 곳을 따라가라는 것이 부동산이라는 그의 말이었다. 마지막 한술을 뜰 때쯤 김 주사가 물었다.


"박 씨 집 지금 얼마야? 물어봐도 되나?"

"네, 2억 7천 정도요."

"그럼 담보대출 더 받을 수 있겠네. 그걸로 하나 더 사. 지금이 기회야."

"생각해 볼게요."


그날 저녁, 성수는 또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이번엔 단순하게 시세만 들여다본 게 아니었다. 부동산 관련 블로그와 카페를 찾아보며 그들의 투자기와 임장기를 읽어 내려갔다. 전세가율 계산하는 법을 찾아보고, 갭투자라는 단어도 처음 알게 됐다. 어느덧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었다.


"또 안 자?"

"응. 자야지." 지영이 화면을 들여다봤다. 부동산 카페였다.

"뭐 봐?"

"부동산."

"갑자기?"


성수가 지영을 보며 말을 건넸다.


"우리 집 8천 올랐어."

"진짜?"

"응. 실거래가 찍혔어."


지영이 의자를 끌어당겨 앉아 성수 앞에 앉았다.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늘 그렇듯 지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하나 더 살 수 있나?"

"나도 그 생각하고 있었어."


그 주 토요일. 성수는 생전 처음 홀로 임장을 나섰다. 목적지는 경기도 외곽의 한 신도시였다. 김 주사가 넌지시 얘기해 준 지역이었다. 그에 말에 따르면 지하철 연장이라는 개발 호재가 잠재되어 있다고 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허허벌판이 그를 두 팔 벌려 맞이하고 있었다. 벌판이 무색할까, 아파트 단지 몇 개가 띄엄띄엄 서 있을 뿐이었다. 상가에는 빈 점포가 많아 보였고, 상가 내에 부동산 간판만 세 개가 있었다. 성수는 그중 가장 세련되어 보이는 부동산 하나에 문을 두드렸다.



60대로 보이는 부동산 사장님은 성수를 보자마자 인사를 건넸다.


"투자자? 맞으시죠?"

"네, 좀 알아보러요."

"어디서 오셨어요?"

"경기 남부요."


사장님이 믹스 커피 한잔을 내밀고 소파로 성수를 안내했다.


"이 동네 좋아요. 아시겠지만 지하철 들어오면 여긴 천지개벽합니다. 지금 이 가격에 사두면 블라블라"

"네네."

'팔아야 하니까 좋다고 하는 거겠지.'


소장의 말을 반이나 들었을까. 성수는 직접 현장을 보고 싶었다. 단지 주변을 거닐며, 학교까지의 거리. 마트 그리고 버스 노선이 몇 개인지 세어봤다.



생각보단 사람이 있어 보였다. 젊은 사람들이 좀 있고 심지어 유모차를 끄는 사람들도 간간이 보였다. 그날 성수는 내리 두 시간을 걸어 다녔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는 차근히 그 느낌들을 노트에 적어내려 갔다. 느낌. 나쁘지 않았다.



2주 뒤, 성수는 지영과 함께 다시 그 동네를 찾았다. 부동산을 세 곳을 들렀고, 직접 매물 확인까지 마쳤다. 방에 들어가 창문을 열어보며 햇빛이 드는지, 층간 소음은 어떤지 위아래 층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살펴 물었다.



두 번째 부동산을 나오며 지영이 말했다.


"101호 괜찮은 것 같아."

"나도 그 생각."

"전세가율이 75 퍼센트면 나쁘지 않잖아." 성수가 지영을 빤히 쳐다봤다.

"공부했어?"

"블로그에서 봤어."


성수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같은 목표를 향하는 누군가 있다는 게 제 나름 행복했나 보다.



2019년 5월. 그렇게 두 사람은 두 번째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이번에도 공동명의다. 매매가 1억 7천. 전세 1억 3천. 실투자금 4천. 기존 아파트 담보대출을 추가로 받아 마련한 돈이었다.



부동산 소장이 말했다.


"갭이 4천밖에 안 돼요. 금방 갭메웁니다. 잘하셨어요."


성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서를 들고 나오며 지영이 말했다.


"이번엔 손 안 떨렸네."

"응."

"첫 번째 살 때, 엄청 손 떨었잖아. 크크"

"기억해?"

"당연히 기억하지."


성수는 주차장을 걸으며 말했다.


"이번엔 나름 공부하고 산 거니까. 조금 익숙해진 것도 있고."


지영이 앞서 걸으며 말했다.


"익숙해지면 안 되는데."

"왜?"

"익숙해지면 대충 봤다는 거니까."


그녀의 말이 맞았다. 큰 반박은 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지영이 말했다.


"어쨌거나 잘 됐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안 되면 어쩌지?"


성수는 잠깐 생각하고 말을 이었다.


"안 되면 뭐, 버티는 거지."


지영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그렇지. 그거 잘하잖아, 당신."


성수는 핸들을 잡고 앞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길게 뻗은 고속도로 봄날의 하늘은 무척이나 맑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미래가 조금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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