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임장

by 자향자

2018년 6월 어느 토요일 아침 오전 9시. 성수가 집을 나섰다. 지영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내가 혹시나 깰까 소리 나지 않게 현관문을 조용히 닫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의 손에는 작은 노트 하나와 볼펜 뿐이었다. 별도로 가방은 챙기지 않았다. 어느 부동산 카페에서 임장 갈 때 너무 티 내지 말라는 글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큰 가방 들고 다니면 부동산 사장들이 호가를 올린다나 뭐라나.' 솔직히 처음엔 그 글을 읽고 나서 피식 웃었다. 그 정도까지 신경 써야 하나 싶었다만 결국 성수는 가방을 집에 두고 나왔다. 그는 졸보다.



그날의 목적지는 경기도 외곽의 어느 상업지구였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야 하고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그곳. 성수는 지하철 안에서 노트를 펼쳤다. 어젯밤 정리해 놓은 것들을 훑어보기 위함이었다. 그의 노트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적혀있었다.


유동인구. 몇 시에 사람이 많은지.

공실률. 빈 가게 얼마나 되는지.

업종 구성. 어떤 가게들이 모여 있는지.

주변 개발 호재. 새로 생기는 게 있는지.

건물 연식. 오래됐으면 수리비가 나올 수 있음.

임대료 시세. 부동산 두 곳 이상에서 확인.


사실 이것들은 카페에서 본 어느 글의 체크리스트들을 고스란히 옮겨 적은 것이었다.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할 찰나 지하철은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했다. 또 한 번의 낯선 동네.



성수는 지도 앱을 열었다. 상업지구는 역에서 도보 10분 정도 되는 거리였다. 천천히 걸어가며 주변을 훑었다. 오래된 빌라들이 줄지어 있었다. 1층엔 주로 세탁소, 편의점 그리고 부동산 간판들이 그의 눈에 드어왔다.


'그래도 사람은 사는 곳이네.'


잘 모르지만 어쨌든 사람이 살고 있는 동네는 일단 수요가 받쳐준다 뜻이긴 하다. 10분 남짓 걸었을 때 드디어 성수가 찾던 상업지구가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길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상가 건물들. 1층엔 음식점, 카페, 편의점, 학원, 미용실이 주로 배치되어 있고 2층엔 병원, 학원, 사무실이 간간이 보인다. 성수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시간은 오전 10시. 사람은 적어 보였다.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문을 연 가게도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음식점은 대부분 닫혀 있거나 준비 중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성수는 빠르게 이를 노트에 적어내려갔다.


'오전 10시 기준. 유동인구 적음. 음식점 대부분 오픈 안 함.'


따분하게 걷는 게 지겨워진 성수는 공실 개수를 하나둘 세기 시작했다. 임대 현수막이 덕지덕지 붙은 곳. 불이 꺼진 곳. 유리창에 먼지가 낀 곳. 첫 번째 블록에선 세 개가 보였고, 두 번째 블록에선 네 개가 보였다. 공실이 꽤 많아 보였다.



성수는 멈춰서 주변을 빙 둘러봤다. 어젯밤 부동산 카페에서 읽었던 게 기억이 났다. '공실률 10퍼센트 이하가 좋은 상권' 근데 여기는 지금 성수의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그 이상은 족히 돼 보였다. 이를 또다시 노트에 적었다.


'공실 많음. 주의 필요할 듯.'


길가에 있는 부동산 한 곳에 들어갔다. 오늘 방문하는 첫 번째 부동산. 간판에 '△△공인중개사'라고 적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그를 맞이했다. 사무실 한 구석에 60대로 보이는 사장이 신문을 보며 앉아 있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이 근처 상가 매물 좀 알아보러 왔는데요."


사장님이 신문을 접고 성수에게 물었다.


"투자용이에요? 아니면 사용하시려고?"

"투자용이요."

"예산은요?"

"한 2억에서 3억 사이요."


사장님이 성수를 빠르게 위아래로 훑는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이 근처에 괜찮은 매물이 몇 개 있어요. 1층 상가인데, 지금 세입자 있고 월세 150 나오는 거예요."

"매매가는요?"

"2억 5천."


성수는 빠르게 계산했다. 월세 150이면 연 1,800만 원. 매매가 2억 5천이라고 치면 수익률 7.2퍼센트.

꽤 나쁘지 않은 숫자였다.


"공실 위험은요?"

"지금 세입자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지금 세입자가 나갈 수도 있잖아요."

"이 동네 상권이 괜찮아서..." 라며 사장은 말을 흐렸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성수는 방금 걸어오면서 봤던 공실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아까 걸어오면서 보니까 빈 가게 좀 있던데요."


사장님 표정이 약간 굳었다.


"거기는 위치가 안 좋은 자리들이에요. 이 매물은 달라요."

"어떻게 다른데요?"


사장님이 지도를 꺼내 들었다. 청산유수같이 흐르는 그의 설명을 들으며 성수는 이를 노트에 적어내려 갔다. 사장님 말이 맞는지 틀린 지는 솔직히 모른다. 그래도 일단 들어둬야 하는 이유는 두 번째 부동산에서 같은 질문을 하면 어설프게 비교란 걸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연이어 찾은 두 번째 부동산. 40대 여자 사장님. 첫 번째 부동산 사장보다 말이 훨씬 빨랐다.


"어디서 오셨어요?"

"경기 남부요."

"여기까지 오셨어요? 관심이 있으신가 보네."

"알아보는 중이에요."

"예산은요?"

"한 2~3억이요."


사장님이 핸드폰을 들어 보유 중인 상가들의 내부 사진을 하나씩 보여줬다.


"이게 요즘 나온 건데, 1층이고 지금 카페가 들어와 있어요. 월세 130에 보증금 3천이에요."

"매매가는요?"

"2억 2천."


수익률 7.1퍼센트.


"카페 계약 기간이 얼마나 남았어요?"

"1년 6개월요."

"그다음 엔요?"

"재계약하면 되죠."

"카페가 장사가 잘 돼요?"


사장님이 잠깐 멈칫했다가 말을 이었다.


"뭐, 그럭저럭요."


성수는 그녀의 말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그럭저럭이라. 절대 잘 된다고 하진 않았다. 분명 그럭저럭이라고 말했다.


'1년 6개월 뒤에 재계약이 안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재계약이 안 된다면 공실이 될 게 뻔하다. 공실이 되면 새 세입자를 구해야 하고, 새 세입자 구하는 동안 월세는 없는 거다.'


성수는 이를 노트에 적었다. '카페 장사 상태 불명확. 재계약 불투명.' 눈치 빠른 사장이 말을 건넨다.


"한번 직접 보러 가실래요?"

"괜찮아요."


두 부동산을 나오고 성수는 다시 걸으며, 천천히 가게를 하나씩 들여다봤다. 음식점에 손님이 얼마나 있는지. 카페에 사람은 있는지. 미용실 안은 바쁘게 돌아가는지. 정오가 가까워지자 사람이 조금 늘었다. 그나마 사람이 모이는 곳이 있었다. 큰 길가 코너 자리에 위치한 건물 하나. 나머지는 한산 그 자체였다.



성수는 코너 자리 건물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1층엔 분식집이 있었고 손님의 줄이 짧게 지어져 있었다.


'저 자리가 좋은 자리구나.'


역시 직접 보니 다른 느낌이었다. 인터넷에서 보는 것과 현장에서 눈으로 보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지도 앱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도 걸으면 모두 볼 수 있었다.


'역 방향 첫 블록 코너. 유동인구 집중. 이 자리 매물 있으면 볼 것.'


그때였다. 길 건너편 부동산에서 누군가 나왔다. 성수는 무심코 보다가 그대로 멈춰 섰다. 최병철이었다. 캐주얼한 복장을 하고 있는 최병철. 그의 손에는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다. 부동산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과 악수를 하고 있었다. 꽤 익숙한 동작이었다. 많이 해본 솜씨다.



최병철이 핸드폰을 꺼내 누군과와 통화를 하며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본 성수는 솔직히 외면하고 그냥 지나치고 싶었다만, 발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다행인 건 최병철이 성수를 보지 못했단 사실이었다. 뭐가 그리 바쁜지 서류 봉투를 옆구리에 끼고 그는 성수의 반대방향으로 걸어갔다. 성수는 얼어붙은 채로 그의 뒷모습을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


'쟤도 여기 왔네.'


최병철은 계약서로 보이는 듯한 서류 봉투를 들고 나오고 있었고. 성수는 노트에 체크리스트를 적고 있었다. 또다시 뭔가 늦은 것 같은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기분은 더럽지만 배는 고팠다. 성수는 근처 분식집에서 점심을 때우기로 했다. 아까본 코너 자리 분식집. 순대국밥 8천 원. 성수는 자리를 잡고 앉아 국밥에 공깃밥을 말았다.



가게 안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열 테이블 중 여덟이 차 있었다. 토요일 점심. 회전은 무척 빨랐다. 손님이 먹고 나가면 바로 다음 손님이 들어오는 완벽한 곳.



성수는 국밥을 먹으면서 머리를 굴렸다.


'테이블 열 개. 평균 객단가 8천 원. 하루 세끼 기준 회전율 각 끼니 2~3회. 하루 매출 대략 50만 원 언저리. 임대료는 얼마일까.'


적어도 월 200은 넘을 것 같았다. 이 자리 건물 주인이 궁금했다. 매달 200을 받는 사람. 토요일에 집에서 쉬면서 이 가게 사장이 열심히 일하는 동안 그의 통장에 돈이 꽂힌다.



오후 2시.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지영에게 문자를 보냈다.


'다 봤어. 가는 길.'

'어때?'

'공부가 더 필요할 거 같아.'

'그래 천천히 하면 되지.'


성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버스에 올랐다. 창가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봤다. 1층 상가. 임대 현수막. 예전엔 그냥 삶의 배경이었던 것들이 이제는 하나씩 그의 눈에 밟힌다.



장사가 되는 지역인지 사람이 다니는 자리인지 솔직히 여전히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해다는 거다. 오늘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집에 돌아오니 지영이 빨래를 개고 있었다.


"어땠어? 박사장?"

"공실 많더라."

"나쁜 거네?"

"그렇지. 상권이 약하다는 거니까."

"그럼 안 사?"

"그 동네는 아닌 것 같아."


지영이 수건을 개며 말했다.


"뭔 일 있었지? 혹시 거기서 누구 만났어?"

"어떻게 알았어?"

"얼굴 보면 알지."

"최병철."


지영이 빨래 더미를 안고 일어서며 말했다.


"그 사람이 어디 가든 우리 갈 길 가면 되잖아."

"응."

"근데 왜 신경 써."

"신경 안 써."

"거짓말."


지영이 안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다음 주에 다른 데 또 가봐. 한 군데만 보면 모르는 거야."


성수는 노트를 꺼냈다. 오늘 적은 것들을 다시 차근히 읽어 내려갔다. 유동인구. 공실률. 업종 구성. 임대료 시세. 여전히 부족한 게 많다.



그러나 오늘 하루 발로 걷고 눈으로 본 것들은 분명 블로그 글 열 개 이상을 읽은 느낌이다. 성수는 노트 맨 아래에 자그맣게 한 줄을 적었다.



다음 주. 다른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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