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계약한 지 두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성수는 이제 아침마다 핸드폰을 확인하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보다 뾰족하게 말하자면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아침부터 파헤치는 게 그의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 애석하게도 별 내용 없는 날이 더 많았다만 그래도 한번 들인 습관은 좀처럼 끊을 수 없었다.
다행히 공실 문제는 단 6주 만에 해결됐다. 성수와 지영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해결됐다. 세입자는 30대 초반 부부였다. 남편은 어느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이라고 들었고 아내가 카페를 운영하고 싶다는 말에 첫 창업을 도와줬다는 이야기만 얼핏 들었을 뿐이었다.
사실 부동산 사장에게 연락을 받았을 때 성수는 잠깐 망설였다. 첫 창업자. 경험은 전무한 사람. 만약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면 금방 폐업할 수도 있는 세입자였다. 부부가 직접 매물을 보러 나왔을 때 성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세입자를 직접 만나게 된 날이었다.
그의 아내가 가게 안을 둘러보는 눈빛은 꽤 진지했다. 채광, 동선을 확인하고 레이저 줄자로 일일이 치수를 재는 기술까지 선보였다. 아마 카운터를 어디 놓을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성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 진짜 뭔가 하고 싶은 맞네.'
성수도 창업을 해본 경험은 전무하지만 진짜 하고 싶은 사람의 눈빛만은 알고 있었다. 그도 석 달의 시간을 보내며 이곳의 주인이 되지 않았던가.
결국 부부는 성수와 보증금 2천. 월세 130. 2년 계약을 맺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정확히 2018년 11월 15일. 처음으로 세입자로부터 월세가 들어왔다. 띠링- 울리는 핸드폰 알람에 성수는 은행앱을 열고 입금내역을 확인했다.
'한스카페. 1,300,000원.'
성수는 그 숫자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노동의 대가로 들어오는 월급과는 다른 느낌의 숫자였다. 월급은 뭐랄까 내 몸을 한 달 동안 갈아 넣어 일구어낸 대가였고 내 시간을 팔아서 번 돈이었다.
월세 130은 의미가 달랐다. 성수가 출근하는 동안 회의실에서 최병철의 눈치를 보는 동안 심지어 그가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 동안에도 알아서 돈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성수는 은행앱을 닫았다 다시 열어 숫자를 재확인했다. 130만 원이란 숫자는 그의 통장에 그대로 찍혀 있었다.
어느 날의 점심시간. 공무직 이복순이 청사 복도를 닦고 있었다. 지나가던 성수가 멈추어 이복순에게 한마디를 건넨다.
"복순 씨."
"왜요?"
"저 상가 월세란 거 처음 받게 됐어요."
"얼마요?"
"130이요."
"잘됐네요."
칭찬인지 덤덤한 반응인지 알 수 없는 말투였다. 그러나 이복순의 말투는 항상 그래왔다. 과장 하나 없는 담백한 어투.
"기분이 좀 이상하긴 하네요."
"뭐가요?"
"제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 돈이 들어온 거잖아요."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지. 석 달 발품 팔았잖아."
"그건 그거고요."
"열심히 한 게 이제 결과로 나오는 거지. 그게 이상한 거예요?"
"아니죠."
"오늘 아내분이랑 맛있는 거 사 드세요."
이복순이 카트를 밀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보며 성수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성수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월세 130. 이자 40. 손에 쥐는 건 90.
1년이면 1,080만 원.
공무원 월급 약 270만 원. 연간 3,240만 원.
이 두 개를 합산하면 연간 4,320만 원
이전보다 수입은 25퍼센트 늘어난다.
성수가 느낀 건 단순한 숫자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파이프 라인 하나가 더 생긴 느낌이었달까.
집 근처 정류장에서 내려 성수는 걸으며 생각했다.
'파이프 라인 하나 더 생겼다. 혹시 하나 더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집에 들어오니 마침 지영은 저녁을 차리고 있었다.
"왔어?"
"응."
"고생했어. 밥 먹자."
성수는 손을 씻고 식탁에 앉았다. 지영이 국을 한술 뜨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 월세 들어온 거 봤어."
"응. 봤어?"
"그럼. 나도 당신 통장 볼 수 있잖아"
"어때?"
"기분 좋지."
"나도."
"근데 말이야."
지영이 숟가락을 손에 들고 그에게 말했다.
"어쨌든 이건 세입자가 계속 잘 돼야 하는 거잖아."
"응. 그렇지."
"카페 잘 되고 있는 거 같아?"
"모르겠네."
성수는 사실 계약하고 나서 그곳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그저 월세가 꾸준히 들어오고 있으니 잘 되고 있으려니 생각했다.
"한번 가봐야 하나."
"우리. 손님으로 한번 가볼까?"
"같이 가자고?"
"다음 주 토요일 즈음?"
그다음 주 토요일, 성수와 지영은 그곳으로 향했다. '한스카페'. 유리 통창 너머로 안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다행히 여섯 테이블 중 네 개가 손님으로 차 있었다. 나쁘지 않아 보였다.
둘은 시원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켰다. 카운터 앞 계약할 때 봤던 젊은 여자 하나가 서 있었다. 다행히 성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성수는 알아도 모른 척해주길 바랐다.
"인테리어 깔끔하네."
"그러게."
"손님들은 꽤 오래 머무는 거 같아. 노트북 쓰는 사람도 있고 말이야."
"카공족인가."
"그럼 회전은 좀 느리겠다."
"그래도 자주 방문하지 않을까?"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며 주변을 살폈다. 주인장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표정도 밝아보였고 일을 그리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자신이 좋아서 일을 하는 사람의 표정을 그는 알고 있다.
"커피 맛있었어."
"괜찮더라."
"다시 올 거 같아?"
"건물주가 단골이면 이상하지 않나?"
두 사람이 나란히 걷는 와중 성수가 입을 열었다.
"잘 될 것 같아. 여기"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렇다고 너무 안심하면 안 돼."
"뭐가."
"잘 되면 임대료 깎아달라고 할 수도 있고, 망하면 한 순간에 나가는 거잖아. 변수는 늘 있어."
그녀의 말이 맞았다. 서로가 잘 되고 있는 지금의 시점이 오히려 다음을 준비할 시기였다.
"그럼 이제 우린 뭘 해야 하지?"
"다음 거 준비해야지."
그날 성수는 저녁 집에 돌아와 노트북을 다시 열었다. 매일 들락 거리는 부동산 카페에 올라온 새로운 글들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글 중 하나가 그의 눈에 걸렸다.
제목 : 지금 상가 시장 과열인가, 기회인가.
내용은 매우 길었다만 요약하면 이러했다. 정부에서 아파트를 강도 높게 규제하며 상가로 자금이 몰리며 수익률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좋은 자리 매물은 이미 가격이 많이 올랐다. 지금 들어가면 후회할 수 있다. 하지만 틈새시장은 여전히 있다. 비주거용 부동산. 특히 소형 오피스텔이나 꼬마빌딩 저층부.
성수는 이를 읽으면서 노트에 촘촘히 메모했다.
꼬마빌딩.
그에겐 여전히 부담스럽고 낯선 단어였다.
그 무렵 성수의 첫 번째 아파트 시세는 3억 7천으로 다시 한번 점프했다. 1억 9천에 산 매물은 어느새 두 배가 가까이 올라버렸다.
두 번째 아파트는 어떻게 됐을까? 1억 7천에 매입한 아파트는 2억 9천으로 껑충 가격이 오르며 이 두 채에서 2억 8천이란 수익을 그에게 안기고 있었다.
여기에 따박따박 들어오는 상가 월세 수익까지 더하면 굉장한 수치들이었다. 성수는 이 숫자들을 노트에 적어내려 갔다. 동시에 3년 전 새벽에 가계부를 펼치며 막막했던 그날 밤이 생각났다.
한 달에 140만 원 남는 게 전부라며 하염없이 천장을 바라보던 그날의 밤. 그때와 지금의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노트를 덮을 찰나, 지영이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성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안 자?"
"응, 이제 자야지."
"뭐 했는데?"
"아파트 시세."
"좀 올랐어?"
성수가 지영에게 노트를 건넸다. 지영이 잠깐 서서 그 숫자들을 빤히 들여다봤다. 한참을 보던 그녀가 다시 성수를 보며 말했다.
"이제 팔 거야?"
"아직."
"왜?"
"더 오를 거 같아서."
"욕심부리면 안 돼."
지영이 물컵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성수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욕심과 이상. 그 경계가 어딘지 성수는 알 수 없었다.
2019년 1월. 새로운 해가 시작됐다. 성수는 새해 첫날 아침을 맞이하며 가계부를 새로 만들었다. 이전보다 항목은 늘어났다. 월급. 상가 월세. 이자 지출. 대출 원금 상환. 생활비. 저축. 까지 이전에 쓰던 가계부보다 복잡해졌다.
숫자가 달라졌고 자산은 이전보다 훨씬 상승했다. 올라가는 게 한눈에 보였으니까.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성수는 조용히 커피를 내렸다. 한 모금 마시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올해도 무조건 전진이다.'
3년 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당시엔 그저 버티는 게 능사였다만 그날의 외침은 조금 다른 의미였다. 정확히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었지만 분명히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