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꼬마빌딩을 매입한 지도 어느덧 11개월이나 됐다. 하루의 시간은 고되지만 돌아보면 시간은 쏜살같이 빠르기만 하다. 그날 성수는 퇴근길 핸드폰 스크롤을 내리다 우연히 놓친 문자 하나를 발견했다. 모르는 번호로부터 온 문자 메시지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박 사장님, 저 김말순이에요. 1층 세탁소 운영하는 할머니요. 드릴 말씀이 있는데 시간 되실 때 전화 한번 주실 수 있어요?'
김말순. 맞다. 세탁소 할머니 이름이었다. 계약서에서 얼핏 본 것 같기도 했다. 임차인에게 연락이 오는 건 언제나 부담스럽기 그지없다만 결국 그가 헤쳐나가야 할 또 다른 문제이기도 했다. 성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두어 번 신호가 갔을까? 임차인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박성수입니다. 문자 보내셨죠. 제가 놓쳤네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이고, 사장님.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이제 세탁소를 그만해야 할 것 같아요."
성수는 순간 버스 손잡이를 꽉 잡으며 차근히 말을 뱉었다.
"언제까지요?"
"계약 두 달 남았는데, 그때까지만 하려고요. 몸이 영 안 좋아서. 아들도 그만하라고 하네요."
"네, 알겠습니다."
"죄송해요, 사장님. 갑자기 이러면 안 되는 건데."
"아니에요. 건강이 먼저죠.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성수는 바로 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왜?"
"세탁소 할머니 두 달 후에 나간다네."
"언제야 그게?"
"8월."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다시 지영이 말을 이어갔다.
"예상했던 거잖아."
"응. 그렇지"
"다음 세입자는 어떻게 할 거야?"
"글쎄. 업종을 바꾸면 좋을 거 같아. 세탁소로는 솔직히 임대료 올리기 어렵고."
"뭘로 하게?"
"생각해 봐야지 이제."
"집에서 밥 먹으면서 다시 얘기하자."
그날 저녁, 식탁에 두 사람이 앉아 못다 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1층 코너 자리고 유동 인구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
"뭐가 들어오면 잘 될까."
"카페나 편의점이 제일 무난한데. 편의점은 브랜드 본사가 결정하는 거라 우린 선택권 없어."
"그럼 카페는?"
"근처에 두 개 있더라고."
지영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럼 어쩌지?"
"그 주변에 없는 게 뭔지 가봐야지."
그 주 토요일. 성수는 혼자 다시 동네를 찾았다. 코너 건물을 중심으로 반경 500미터엔 세탁소. 편의점 두 개. 카페 두어 개. 미용실. 부동산. 약국. 중국집. 분식집이 고루 분포되어 있다.
'없는 게 대체 뭘까.'
상가 주변은 주거 밀집 지역이었다. 빌라와 다세대가 많았고 젊은 사람보다 중장년층이 유독 많았다. 가끔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젊은 부부도 봤지만 주요 타깃은 아니다. 그러다 조금씩 없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문구점, 반찬가게 같은 건 주변에 없었다. 두 달 뒤 세탁소가 나간다면 세탁소도 없는 거다. 성수는 이를 노트에 적어내려 갔다.
'주거 밀집. 중장년 많음. 혼자 사는 사람들. 반찬가게. 수요 있을 것 같음.'
그날 저녁 성수는 부동산 카페에 글 하나를 올렸다.
제목 : 1층 코너 상가 공실 예정. 업종 추천 부탁드립니다. 주거 밀집 지역. 중장년 많음.
하나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반찬가게 괜찮을 것 같아요.'
'세탁소 그냥 유지하는 게 나을 수도.'
'편의점 넣으세요. 임대료 높아요.'
'네일숍도 요즘 잘 돼요.'
성수는 댓글들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편의점이 임대료가 높다. 처음 알게 된 사실. 하지만 본사가 입지 분석을 해서 결정한다고 하니 들어올지 안 들어올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반찬가게. 왠지 수요가 있을 것 같았다. 장사가 잘 될지는 세입자 하기 나름이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출근길, 회사 복도에서 이복순을 만났다.
"요즘 무슨 고민 있어요? 멍하네. 사람이."
"다음 달에 상가 세입자 하나가 나가거든요."
"어디였죠?"
"경기도 북부 쪽요."
이복순이 마대 걸레를 짜며 다시 물었다.
"그 동네 어때요?"
"주거지죠 뭐 중장년층 많고."
"반찬가게 어때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요?"
"혼자 사는 어르신 많잖아요. 반찬 해 먹기 귀찮을 걸요. 나도 그런데 뭐. 퇴근하고 반찬 만들기 싫어서 사다 먹는 날이 있어요."
"네. 참고할게요."
푹푹 찌는 7월 한 달 내내 성수는 세입자를 알아봤다. 부동산 사장에게 연락해 매물을 등록한 건 꽤 됐다만 연락은 뜸했다. 얼마 지나 찾아온 8월. 세탁소 김말순 할머니가 짐을 정리했고 이제 공실만 우두커니 남아있다. 성수는 그날 퇴근 후 빈 가게를 혼자 방문했다.
텅 비어 있었다. 세탁기가 있던 자리. 할머니가 앉아 있던 저 구석의 어느 자리. 이제 아무것도 없다. 남은 거라곤 세탁 세제 냄새 정도였을까. 성수는 빈 공간을 주욱 둘러봤다.
'이런 게 공실이구나.'
글로 수백 번은 읽었고 숫자로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직접 마주해 보니 느낌은 사뭇 달랐다. 공실은 그런 걸로 때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텅 빈 공간이었다. 아무것도 없다. 이 상태를 길게 늘일 순 없었다. 8월 말의 주말 오전. 부동산 사장에게 드디어 연락이 왔다.
"박 사장님, 반찬가게 하고 싶다는 분이 계세요. 보증금 1천에 월세 80 생각하신다는데."
'세탁소 월세가 70이었으니까 80이면 일단 올릴 수 있다.'
"어떤 분인데요?"
"마트에서 반찬 코너 5년 하셨대요."
"나이는요?"
"50대 초반 여성이요."
경력, 나이를 고려했을 때 이 동네 중장년층 수요와 딱 맞아떨어진다.
"한번 만날 수 있을까요?"
그다음 주의 토요일. 성수는 빈 가게에서 예비 세입자를 만났다. 정미숙 여사. 나이는 53세로 작은 체구에 특이하게 앞치마를 입고 마주하게 됐다. 아마 일하던 중 짬을 내서 방문한 것 같았다. 곧이어 정미숙이 가게 안을 주욱 둘러봤다.
"코너 자리네요."
"네."
"채광이 좋네요."
"남향이에요."
"냉장 쇼케이스는 제가 들여올게요."
"네."
"도시가스 들어와요?"
"그럼요."
"환기는요?"
성수는 환풍구를 손으로 가리켰다.
"환풍기는 추가로 달아야 할 것 같아요. 반찬 냄새가 많이 나거든요."
"비용 얼만데요?"
"제가 부담할게요."
성수는 정미숙을 지긋이 들여다봤다. 환풍구 비용을 자기가 내겠다고 하다니. 보통은 떠보기 마련인데 말이다. 분명 제대로 장사할 마음이 있다는 뜻이었다. 오래 할 생각이 없는 사람은 이런 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
"월세는 85로 하시죠."
"부동산에서 80이라고 했는데."
"네. 근데 이 자리 코너고 채광도 좋아요. 장사 잘 되실 거예요. 그 대신 환풍구 비용 제가 부담할게요."
"85에 환풍구는 사장님 설치해 준다고요?"
"네."
"좋아요."
2020년 9월. '정미숙 반찬가게'가 문을 열었다. 성수는 개업 첫날 그곳을 방문했다. 가게 안에 줄지어 있는 냉장 쇼케이스. 시금치나물. 멸치볶음. 계란장조림. 깍두기. 돼지고기 두루치기까지 오색을 뽐내는 반찬들이 가지런히 담겨 있다.
마침 60대 어르신으로 보이는 두 명이 반찬을 고르고 있었다. 정미숙은 "오늘 새로 만든 거예요" 하며 친근하게 다가간다. 이곳도 왠지 잘 될 것 같았다.
10월. 기다리던 월세가 들어왔다.
'정미숙 반찬가게. 85만 원.'
'한스커피. 130만 원.'
합하면 215만 원이다. 성수는 이 숫자들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공무원 월급 외에 매달 215만 원이 꽂힌다. 이자를 빼면 130 남짓. 절대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날 저녁 식사자리에서 지영에게 말을 건넸다.
"반찬가게 잘 되는 것 같더라."
"가봤어?"
"저번 주에 갔었지. 한두 개 사봤어 멸치볶음이랑 계란장조림."
"맛있더라."
이어 지영이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뭘."
"다음 투자 말이야."
성수는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제 좀 쉬어야 할 것 같아."
"왜. 좀 지치는 거 같아?"
"대출이 많이 쌓였어. 정리가 좀 필요할 거 같아."
"뭐 팔려고?"
"아니. 그냥 대출 줄이면서 기반 다지면 좋지 않을까 해서."
"그래. 맞는 말 같아."
10월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살랑 불어대는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렸다. 모든 게 물 흐르는 잘 되고 있었다.
아파트 두 채에 구분상가 하나 그리고 꼬마빌딩까지. 모두 임차인이 있었고 월세 또한 나오는 상황. 성수는 담담했다.
하지만 잘 된단 생각은 금물이었다. 내일은 모르는 일이었다. 부동산은 오르고 내리며, 세입자 또한 이번처럼 언제 나갈지 모른다. 경기 또한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잘 되고 있다는 건 단지 지금일 뿐이었다.
그해 겨울, 코로나19가 터졌다. 중국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는 뉴스 하나를 봤다.
성수는 뉴스를 보며 생각했다.
'전염병 같은 건가? 별일 있겠어.'
그건 실수였다.
2020년 12월. 카페 세입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장님, 저 한스카페인데요."
"네, 말씀하세요."
"코로나 때문에 매출이 반 넘게 줄었어요. 혹시 정말 죄송한데 임대료 좀 줄여주실 수 있을까요?"
"얼마나 생각하시는데요?"
"100으로 줄여주시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월세 130만 원에서 30만 원을 깎아달라니. 1년이면 무려 360만 원이었다. 성수는 거절할 권리가 있었다. 계약서엔 130이라고 적혀 있었으니 법적으론 받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세입자가 버티지 못하면 공실이 발생한다. 공실이 되면 0으로 수렴하는 건 순식간이다.
"알겠어요, 6개월만 그렇게 가시죠."
"감사합니다, 사장님."
전화를 끊고 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카페 임대료 6개월만 100으로 내리기로 했어."
"잘했어."
"미안하다."
"뭐가 미안해. 다시 나중에 올려 받는 건데. 잘했어."
지영의 말이 맞았다. 세상 모든 게 숫자로만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세입자가 버텨줘야 월세를 받을 수 있고 그래야 대출이자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유지되어야 자산이 쌓이는 법이었다. 긴 호흡으로 다가가야만 했다. 하지만 성수는 이를 알면서도 불안했다.
다음 해 2021년 봄. 코로나 백신이 나왔다. 정부의 거리두기 정책은 조금씩 유연해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카페 매출은 다시 조금씩 올라왔다. 임대료도 다시 130만 원으로 돌아왔다. 한편, 반찬가게는 오히려 코로나 기간에 매출이 올랐다. 배달이 늘어 집밥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란다.
정미숙이 어느 날 전화를 걸어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 저 잘 버티고 있어요."
"천만다행이에요."
"코로나가 오히려 기회였더라고요."
"저도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전화를 끊으며 그는 생각했다. 업종의 중요성을 다시금 배웠다. 카페는 흔들렸지만 반찬가게는 버틸 수 있었다. 같은 건물이어도 업종에 따라 살아남을 수도 없어질 수도 있었다.
'불황에 강한 업종. 생활 밀착형. 식품. 반찬. 세탁. 약국.' 짧은 메모로 그날을 기록했다.
그해 2021년 가을의 깊은 밤. 성수는 노트북 앞에 앉아 물건의 시세를 주욱 살폈다.
첫 번째 아파트 시세 5억 2천. 1억 9천에 산 매물.
두 번째 아파트 시세 4억 1천. 1억 7천에 산 매물.
상가 시세. 2억 8천. 매입가 1억 9천 5백.
꼬마빌딩. 5억 3천. 매입가 3억 9천.
합산 시세. 17억 4천.
대출 합계. 6억.
순자산. 11억 4천 언저리.
성수는 그 숫자를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그러나 성수는 기뻐하지 않았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숫자에 불과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날 밤 지영이 물었다.
"자산 정리 해봤어? 아까 노트북 보고 있더만."
"응."
"얼만데?"
"11억 정도"
"많이 올라왔네."
"응."
"근데 표정이 왜 그래?"
"잘 되는 건 맞는데 뭔가 찜찜해."
"뭐가?"
"모르겠어. 너무 잘 되는 거 같아서. 계속 잘되는 게 이상하잖아."
뭔가 골똘히 생각하던 지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감각이란 거. 중요하지. 잘 되고 있을 때 불안하단 그 감각. 그런 거 있는 사람이 오래간다더라."
"당신은 불안하지 않아?"
"나까지 불안해할 필욘 없잖아 ㅋㅋ"
"그게 무슨 말이야.ㅋㅋ"
"둘 다 불안해하면 못 버티는 거 잖아. 둘 다 낙관적이면 망하는 거고."
지영의 말은 항상 일리가 있었다. 성수가 흔들릴 때 지영이 잡아줬고 망설일 땐 언제나 지영이 뒤에서 힘껏 밀어줬다. 성수가 과욕을 부리려 할 땐 지영은 브레이크를 걸었다.
14년 직장 생활을 버티게 만든 건 오롯이 지영 덕분이었다. 그리고 부동산 투자로 여기까지 이끌어준 것도 그녀 덕분이었다.
"고마워."
"갑자기?"
"그냥."
"오랜만에 야식으로 치킨이나 시켜 먹을까? 배고프다."
사실 성수의 감각은 틀리지 않았다. 잘 흘러가던 것들이 흔들리고 있단 건 사실이었다. 위험은 언제나 가장 자신 있었던 곳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도 감각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