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최병철

by 자향자

2022년 1월. 사내 새로운 인사발령이 났다. 스크롤을 내리며 공문을 유심히 보던 성수는 순간 멈칫했다.


'최병철 OO과 팀장 보직에 명함'


최병철이 드디어 팀장이 됐다. 6급 승진을 한지 얼마되지 않아 그는 또 한 번 자신의 신분을 공식적으로 대폭 상승시켰다. 병철은 성수와 같은 해에 입사한 동기였다. 아이러니하게 성수는 여전히 7급에 머물러있었다. 아이러니하게 성수는 병철이 팀장으로 있는 팀원으로 배치받게 됐다. 하늘의 장난인 걸까.



발령 첫날 최병철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 명함을 새로 맞췄다. 그날 점심은 병철의 몫이었다. 팀원들과 빙 둘러앉은 자리에서 병철이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열심히 해보자고요."


팀원들이 박수를 치는 소리에 성수도 덩달아 작게 손바닥을 부딪쳤다. 솔직히 말해 부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성수 자신을 무너뜨릴 만큼 부러운 것은 아니었다. 회사라는 시스템 안에서 최병철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고 성수는 제자리였던 게 전부였다.



팀장이 된 최병철은 뭔가 달라졌다. 평소보다 말이 더 많아졌고, 팀 회의를 할 때면 지시가 하나둘 늘어났다. 전임 팀장이 해오던 방식과 다르게 자기 스타일대에 맞추어 보고 형식을 바꿨다. 성수는 이에 빠르게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누가 시키는 것만큼은 잘해왔으니까.



보고서 형식을 바꾸라고 하면 바꿨고, 자료 정리 방식에 변주를 원하면 군말 없이 그가 원하는 대로 변화를 주었다. 어느 날 최병철이 그를 성수를 부르며 말했다.


"박주임, 보고서 잘 쓰네."

"감사합니다."

"원래 이렇게 잘 썼어요?"

"팀장님이 시키는 대로 한 거예요."


최병철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사실 그게 제일 어려운 건데."


칭찬인지. 비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그해 3월 중순의 어느 날, 병철은 퇴근 후 성수를 청사 주차장 인근으로 불러냈다. '무슨 말하려고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가봐야 아는 일이었다.


"박주임" 하고 부르며, 최병철이 담배를 꺼내 들었다.

"요즘 부동산 어때요?"


성수는 이 사람이 이 질문을 왜 하는지 경계했다.


"그냥 보고 있어요."

"아니, 솔직하게. 우리끼리."


'우리끼리.' 14년 직장 생활을 해오면서 최병철이 그와 같은 말을 쓴 걸 본 적은 없었다.


"뭐가 궁금하신데요?"

"금리가 오르잖아요."

"네."

"저 지금 대출이 꽤 있거든요. 이자가 올라서."

"얼마 나요?"

"변동금리로 6억 가까이요. 금리 1퍼센트 오르면 이자만 연 600 정도 늘어나는 거잖아요."

"고정금리로 바꾸셨어요?"

"작년에 바꿨어야 했는데. 그때 금리가 낮아서 변동이 유리했거든요."

"지금이라도 바꾸면."

"중도상환 수수료가 있어서."


성수는 최병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 사람이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었다. 이제껏 직장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걸 저한테 왜 물어보세요?"

"박주임이 부동산 공부 많이 한다는 거 알아요."

"어떻게 아셨는데요."

"이복순 씨한테 들었어요."


이어 최병철이 말을 이었다.


"모르는 거 아는 척할 수는 없잖아요. 모르는 건 아는 사람한테 물어봐야지."


성수는 이 사람에게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저도 많이는 몰라요."

"그래도 저보다는 알잖아요."

"흠. 변동금리 대출이 얼마인지, 고정으로 바꿀 때 중도상환 수수료가 얼마인지 계산해 보세요. 수수료보다 앞으로 낼 이자 차이가 크면 지금이라도 바꾸는 게 맞는 거 같아요."

"금리 더 오를 것 같아요?"

"모르죠. 예측불가 영역이니까."

"대략이라도."

"어쨌든 미국 기준금리가 계속 오르고 있으니까 한국도 따라갈 거예요. 올해 안에 한 번 더 오를 것 같기는 한데. 확실한 건 아니에요. 저도 모르겠네요."


병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최병철이 차에 오르며 말했다.


"가끔 물어봐도 돼요?"

"그럼요. 근데 저도 많이 몰라서."


그 사이 어느새 차 문은 닫히고 그의 차는 유유히 떠나버렸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최병철이 자신에게 무려 14년 만에 처음으로 조언을 구했다. 집에 와서 이를 지영에게 말했다.

지영이 밥을 먹다가 젓가락을 내려놨다.


"엥? 최병철이?"

"응."

"부동산 때문에?"

"금리가 걱정 이래. 변동대출로 6억이나 갖고 있더라고."

"진짜 많긴 많네."

"응."

"우리는 어떤데?"

"작년에 다 고정으로 바꿨잖아."

"올. 잘했네."


성수는 밥을 한술 뜨며 말했다.


"근데 이상해."

"뭐가."

"그 사람이 나한테 물어봤다는 게 좀 이상하잖아."

"이상할 게 있어? 모르면 물어봐야지."

"봐봐. 그 사람이 항상 나보다 먼저 들어가고 더 많이 알곤 했잖아."

"부동산 개수가 많다고 다 아는 건 아니잖아."


최병철은 성수보다 늘 먼저 투자해 왔고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들여다보면 꼼꼼하게 공부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아는 형 소개로 사고, 대략적인 시장 흐름 보고 사곤 했으니까. 성수처럼 임장 노트를 쓰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비교 분석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 차이가 이제야 하나씩 드러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해 5월. 금리는 성수의 말대로 또 한 번 올라섰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1.75퍼센트. 성수는 이를 보며 대출 이자를 계산했다. 고정금리로 바꿔놨으니 이자는 또렷하고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부동산 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금리가 오르면 대출 이자가 오르고 대출 이자가 오르면 집을 살 여력이 줄어든다. 살 사람이 줄면 가격이 눌리게 마련이다. 보유한 물건들의 시세를 빠르게 훑었다.


첫 번째 아파트. 4억 8천. 두 달 전보다 4천이 빠졌다.

두 번째 아파트. 3억 7천. 마찬가지였다.


성수는 아직 이를 팔 생각은 없었지만, 꾸준히 올라가던 숫자가 내려가는 걸 보니 기분이 사뭇 달라졌다. 그 무렵 사무실 분위기도 이전과 달라지기 시작했다. 최병철 팀장이 예민해진 것. 작은 실수에도 유독 지적이 많아졌다. 회의 때 목소리가 높아졌으며, 대체 뭘 하는지 퇴근도 늦어지곤 했다.



어느 날 성수는 보고서를 들고 팀장 자리로 갔다.


"팀장님, 이번 주 민원 처리 현황이에요."

"수치가 왜 이래요."

"지난주 대비 증가율이에요."

"아니, 형식이 다르잖아요."

"지난번에 바꾸라고 하셔서 바꾼 겁니다."

"내가 그렇게 말했어요?"

"네."

"다시 원래 형식으로 해줘요."

"알겠습니다."


돌아서며 그는 생각했다. '이 사람 요즘 힘들구나.' 부동산 대출 이자가 급격히 오르고 있었고 시세는 내려가고 있었다. 여기에 새로운 팀장이란 업무 적응까지 아마 여러 악재가 겹쳤을 것이다. 성수는 다시 자리에 앉아 보고서 형식을 군말 없이 바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철은 또다시 성수를 주차장으로 불러냈다. 무거운 표정이었다.


"박주임, 나 고민이 있어요."

"아파트 하나 팔까 생각 중이에요."

"왜요?"

"이자가 너무 올랐어요. 대출이 아직 4억 있는데. 금리는 또 오를 것 같고."


팔면 이자 부담이 줄어드는 건 사실이었지만 지금 시세는 고점 대비 내려와 있었다.


"어느 아파트요?"

"두 번째 산 거요. 수원 쪽."

"지금 시세가 얼만데요?"

"4억 초반이에요. 샀을 때 3억이었으니까 1억이 남긴 하는데."

"그 집 대출이 얼만데요?"

"2억이요."


성수는 바로 계산에 들어갔다. 만약 팔게 되면 실수익은 2억 초반. 이자 부담은 월 70 이상 줄어든다. 하지만, 만약 팔고 나서 시세가 오르면 결국 그에게 손해였다.


"금리가 언제까지 오를지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고민이죠."

"저라면. 버텨요."

"이자가 너무 올랐는데."

"버텨요. 지금 팔면 싸게 파는 거예요. 금리가 오르는 건 한시적이에요. 경기가 안 좋아지면 다시 내리는 거구요."

"언제요?"

"그건 저도 모르죠."


최병철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버티는 게 맞는지 모르겠네."

"확실한 건 세상 어디에도 없어요. 그냥 제 생각이에요."

"팀장님 대출 조건이 정확히 어떤지 모르니까 제가 틀릴 수도 있어요. 은행 가서 상담받아보세요."

"그래야겠네요."


그날 밤, 성수는 자신의 자산 현황을 다시금 살펴봤다. 아파트 두 채 시세는 내려갔고, 다행히 상가는 유지되는 상태였다. 꼬마빌딩은 약간 내려간 상황. 합산 시세는 15억 언저리다. 두 달 전보다 2억이나 빠졌다. 대출은 그대로였지만 순자산은 확실히 줄었다. 그 숫자를 멍하니 보고 있을 찰나, 지영이 옆에서 말을 건넸다.


"많이 빠졌네."

"응."

"팔 거야?"

"아니."

"왜."

"버텨야 돼."

"최병철 씨한테 한 말이랑 똑같이 말하네."

"상황 비슷하니까."

"당신 스스로를 믿어?"

"믿어야지.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2022년 가을, 기준금리는 계속 올라갔다. 2.5퍼센트, 2.75퍼센트 그리고 3퍼센트까지. 아파트 시세는 주욱 빠졌다. 거래가 줄어들고 매물이 쌓이기 시작했다. 부동산 카페 분위기도 달라졌다. 이전엔 투자 후기. 수익 인증. 임장 정보들이 흘러넘쳤지만, 이젠 이런 글들이 많았다.


'이자 버티기 힘든데 팔아야 하나요.'

'급매로 내놨는데 연락이 없어요.'

'역전세 맞았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성수는 글들을 읽으며 생각했다. 역전세. 집주인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 다행히 성수 물건들엔 전세는 없었다. 모두 월세였다. 전세 없이 월세로만 운영하는 게 번거롭다는 말도 있었다만 지금 이런 상황에선 오히려 훨씬 안전했다.



그해 11월, 최병철이 사무실에서 누군가와 낮은 목소리로 긴 전화를 했다. 성수는 이를 듣지 않으려 했지만 바로 옆자리에 있으니 들릴 수밖에 없었다.



"형, 그거 지금 얼마예요? 그 가격이면 손해잖아요. 그냥 버텨야 하지 않아요? 아, 그래요? 형은 팔 거예요?"



이어 전화를 끊고 최병철이 자리에 앉아 표정 하나 없이 모니터를 멍하니 들여다봤다. 퇴근 무렵. 병철이 성수 자리로 와 말을 건넸다.


"박주임."

"네."

"저 아파트 팔기로 했어요."

"이자가 너무 올랐어요. 버티기가 안 되겠어서."

"그렇구나."

"박주임은 버틸 거예요?"

"일단은요."

"이자 괜찮아요?"

"고정금리라서요."

"잘했네요, 그때."


최병철이 팔기로 했다. 이번에도 그의 선택이 맞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각자의 상황이 달랐다. 최병철은 변동금리 대출을 끼고 있고, 이자 부담은 성수보다 컸다. 성수의 생각 끝에 '지금 파는 게 맞나.'란 여지가 있었지만 그건 아직 모르는 일이었다.



2022년 12월, 병철은 기어코 수원 아파트를 팔았다. 3억에 산 물건을 4억 2천에 팔며, 1억 2천이란 차익을 남겼다. 하지만 그 아파트의 최고가는 5억이 넘었었다. 고점 대비 8천이나 싸게 판 것이었다.


"팔고 나니까 속이 좀 후련하네요."

"다행이네요."


다른 팀원 하나의 말에 최병철이 웃었다. 그 웃음에 성수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지영이 말했다.


"최병철 씨 팔았대."

"알아. 사무실에서 들었어."

"어떻게 생각해?"

"그 사람 입장에선 맞는 선택이었을 거야. 이자 부담이 우리보다 컸을 테니까."

"우리는?"

"버텨야지."

"얼마나."

"금리 내릴 때까지."

"그게 언제인지 모르잖아."

"그렇지."

"그래도 버텨?"


때는 찬 공기가 코끝을 스치는 12월이었다. 성수는 창밖을 보며 말했다.


"버텨야지. 지금 팔면 싸게 파는 거야. 대출 이자는 우리 월급으로 감당할 수 있어. 월세도 계속 나오고 있고."

"오키."


딱 두 글자. 그러나 성수는 그 두 글자가 어떤 의미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지영이 성수를 온전히 믿는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성수의 말은 맞아떨어졌다. 그로부터 1년 뒤 금리는 내리기 시작했고, 아파트 시세는 다시 완만하게 올라왔다. 최병철이 매도한 아파트도 다시 전고점 5억을 넘어 최고가를 경신했다.



그러나 그 보다 사실 그의 인생에 더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성수 자신도 실수를 하는 사람이었다.

최병철을 보면서 버텨야 한다고 했던 그가 정작 자신은 아무 일도 모른 채 더 큰 실수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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