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질렀다

by 자향자

2018년 9월. 임장을 다닌 지도 어느덧 석 달이나 지났다. 그간 성수는 매주 토요일마다 임장에 나섰다. 서울은 너무 비싸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경기도 이곳저곳을 기웃거린 거 아쉬울 뿐이었다.



혼자 또 어느 날은 지영과 함께 임장을 다니다 보니 어느새 노트 한 권은 가득 차버렸다. 그동안 성수가 본 매물은 열두 개나 됐다. 그렇지만 실제로 계약한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매번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첫 매물은 공실률이 너무 높았고, 두 번째 매물은 세입자와의 계약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단 이유였다. 또 어떤 매물은 건물 연식이 30년이 넘었고 어떤 수익률이 5퍼센트 이하였다.



나름의 이유는 항상 있었다. 그가 생각한 완벽한 매물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사실 그도 물건이 문제인 건지, 아니면 철저하게 자신이 문제인 건지 알 순 없었다. 거금의 돈을 투입해야 했으니, 그럴 수밖에.



어느 날, 지영이 저녁을 먹으며 말을 건넸다.


"당신, 혹시 겁 나는 거 아니야?"

"..."


성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에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었다.



그 주 토요일, 여섯 번째 임장에 나섰다. 인구 15만의 경기도 북부 어느 소도시였다. 역 주변 공장이 꽤 많았다. 공장 노동자들이 밀집해 사는 동네 같았다. 서울의 어느 도시처럼 화려하지 않았다만, 그의 눈에 분명 밟히는 것 하나는 사람이 꽤 있었다란 사실이었다.



그렇게 성수는 역에서 내려 상업지구로 걸음을 내디뎠다. 토요일 오전 11시. 장을 보는 아줌마, 편의점에 들어가는 청년, 국밥집 앞에 줄을 서 있는 삶들. 특별히 많진 않았지만 물 흐르는 듯한 꾸준함이 그의 눈에 밟혔다.



성수는 이를 바로 노트에 옮겨 적었다.


'유동인구. 꾸준함. 피크타임 아닌데 사람 있음.'


그렇게 면밀히 체크하다 어느 부동산 하나에 들어갔다. 사장님이 말을 꺼내기 전에 성수가 물었다.


"이 근처 1층 상가 매물 있어요? 매매가 2억에서 2억 5천 사이."

"많이 보러 다니셨어요?"

"석 달 됐어요."

"어디 어디 보셨어요?"


성수가 그간 그가 본 지역들을 나열했다.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보는 눈 좀 생기셨겠네. 이쪽 앉으세요."


사장이 파일 하나를 꺼내 들었다.


"지금 나온 물건 두 개 있어요. 하나는 2억 2천인데 현재 세입자 있고 월세 140. 또 하나는 2억인데 지금 공실."

"공실이요?"

"세입자가 지난달에 나갔어요. 전엔 옷가게가 있었고요."


공실은 리스크였다. 당장 현금 흐름이 나올 구석이 없었다. 하지만 공실이면 가격 협상이 가능했다. 세입자 있는 매물은 가격이 잘 안 내려가는 편이었으니까.


"공실 매물 먼저 볼게요."


건물은 역에서 도보 7분 거리에 있었다. 2층짜리 건물에 1층. 전용면적 25평. 유리 통창.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전에 옷가게였다는 작은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성수는 안으로 들어가 천천히 내부를 살폈다. 천장 높이. 채광. 환기. 전기 콘센트 위치. 화장실 상태. 이를 바로 노트에 적었다. '천장 높이 양호. 채광 좋음. 남향. 화장실 노후. 수리 필요.'



이어 밖으로 나와 건물 외벽을 훑어봤다. 균열은 없는지 방수는 양호한 편인지 오래된 건물 특유의 냄새가 나는지까지 꼼꼼히 확인했다. 그간 임장을 다닌 내공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 괜찮아 보였다. 사장이 옆에서 말을 건넸다.


"어때요?"

"위치가 역에서 좀 멀긴 하네요."

"7분이면 가깝죠."

"직선 구간으로요?"

"뭐, 한 번 꺾이긴 해요."


그 말을 듣고 성수는 역 방향으로 걸어갔다. 주변에 뭐가 있는지 사람은 지나다니는지 사장이 말한 그 7분이 멀게 느껴지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4분여쯤 걸었을 때 큰 마트 하나를 발견했다. 마트 앞에는 이제 막 장을 보고 나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장보기를 마치고 역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


'마트 고객 동선이 여기를 지나가네.'


이를 노트에 적었다.


"마트 고객 유동인구 있음. 역 방향 동선에 포함.'


부동산으로 돌아와 사장이 건넨 커피 한잔을 마시며 성수가 말했다.


"매매가 조정 가능해요?"

"얼마나 생각하세요?"

"1억 8천."


사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좀 세게 부르셨다."

"공실이잖아요. 지금 당장 수익도 없고."

"그래도 1억 8천은."

"그럼 1억 9천은요?"

"매도인한테 물어볼게요."


성수는 커피를 마시며 기다렸다. 사장이 낮은 목소리로 주인과 통화를 시작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또다시 주인과 짧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1억 9천5백까진 된대요."

'1억 9천5백. 공실. 화장실 수리 필요. 수리비 대략 300~500 예상. 실질 비용 2억 초반.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면 월세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이 동네 비슷한 평수의 시세는 아까 월 120~150 사이라고 사장님에게 들었다. '수익률 계산해 보면 연 1,440~1,800. 매입가 1억 9천5백 기준. 7.4~9.2퍼센트.' 성수는 핸드폰을 꺼내 바로 지영에게 문자를 보냈다.


'매물 있어. 1층. 공실. 1억 9천5백. 어떻게 생각해?'

'공실이면 리스크 있잖아. 직접 봤어?'

'응. 지금 부동산이야.'

'느낌은 어떤데?'

'나쁘지 않아.'

'좋다는 거야, 나쁘단 거야?'

'좋은 거.'


얼마 후 답장이 왔다.


'그래 믿어볼게. 근데 수리비 확인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성수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수리업체 한 군데 불러서 견적 받아볼 수 있어요?"

"매도인한테 허락 맡아야 하는데, 될 거예요."

"등기부등본 오늘 뗄 수 있어요?"

"되죠."

"근저당 설정 없는 거 맞죠?"


사장님이 잠깐 성수를 봤다.


"공부 많이 하셨네."

"석 달이나 돌아다녔으니까요."


사장님이 웃으며 서류를 꺼냈다. 이틀 뒤 월요일. 기다리던 수리비 견적이 나왔다.


'화장실 전면 리모델링. 도배. 바닥 장판 교체. 전기 콘센트 추가. 합계 380만 원.'


성수는 그 숫자를 보면서 순식간에 머리를 굴렸다.


'매입가 1억 9천 5백. 수리비 380. 취득세 및 기타 비용 대략 600 예상. 총 실비용 2억 480.'

'월세 130 기준 수익률. 연 1,560. 수익률 7.6퍼센트.'


이 정도면 감당할 수 있는 수치였다. 기존 두 아파트 담보대출에 자기 자본 5천 그리고 나머지 전부 대출. 월 이자 부담 대략 40만 원. 월세 130에서 이자 40을 빼면 실수익은 90만 원이다.



매달 90만 원. 성수는 그 숫자를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공무원 월급 외에 매달 90만 원이 꽂힌다. 부부에게 절대 작은 돈은 아니었다. 그날 밤. 지영과 마주 앉았다. 성수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종이엔 상가 투자를 위한 그간의 수치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대출이 늘어나네."

"응."

"이자 감당이 되나?"

"지금 월급으로 가능할 거 같아. 공실 기간이 길어지면 좀 빠듯하겠지만."

"공실이 얼마나 갈 것 같은데?"

"주변 시세 보면 빈자리가 별로 없었어. 이 가격대면 금방 나갈 것 같아."

"금방이 얼마야?"

"두 달에서 석 달."


지영이 종이를 내려놓고 되물었다.


"확실해?"

"확신은 못 해."

"그럼?"

"그냥. 될 것 같아. 왠지"

"엥? 그게 전부야?"

"석 달 동안 열두 개 봤는데 이게 제일 나았어. 완벽한 건 없잖아. 근데 이게 제일 나은 건 맞아."


지영이 한참 성수를 바로 보다 입을 열었다.


"해."


2018년 9월 28일. 부부의 계약 날이었다.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매도인과 마주 앉았다. 60대 남자. 표정은 무뚝뚝했다. 곧이어 사장이 계약서를 내밀었다.



매매가 1억 9천5백만 원. 조건. 특약. 잔금일. 명도일을 공인중개사가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성수는 손이 약간 떨림을 느꼈다. 익숙해질 법하지만 여전히 익숙해하지 않다. 그러곤 속으로 되뇌었다.


'괜찮아. 충분히 공부한 매물이야. 발로도 뛰었고, 숫자도 다 맞춰봤어.'


공인중개사가 말했다.


"여기 도장 찍으시면 됩니다."


성수는 도장을 들었고 잠깐 멈춰 섰다. 그리곤 내리찍었다. 부동산을 나오자 9월의 저녁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성수는 잠깐 멈춰서 하늘을 바라봤다. '끝났다.'



부부의 세 번째 부동산이었다. 이번엔 아파트가 아닌 상가. 잘 될지 그도 솔직히 감이 오지 않는다. 공실이 두 달 안에 해결될지 세입자가 잘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석 달 동안 발로 뛰고 눈으로 보고 엑셀까지 돌려본 그의 최종 결정이었다. 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계약했어."

"수고했어."

"응."

"밥 먹었어?"

"아직."

"오는 길에 두부 좀 사 와. 된장찌개 먹자."


성수는 길을 걷다 편의점 한 곳에 들러 캔맥주를 하나를 샀다. 시원한 한 모금에 그간의 고됨이 사라지는 것 같다. 하늘엔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오늘은 그냥 지금 이대로의 느낌에 집중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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