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마실_20251106_입사 392일차
이름이 매력적이었다.
성곽도서관이라니, 뭔가 고즈넉하고 여유가 넘칠 것 같지 않은가.
그래서 예전에 한참 구직활동을 할 때 응시를 하고 면접을 봤었다.
얼마나 멀면 해당 도서관에서 면접을 보지 않고 중구의 거점 도서관에서 봤다.
면접관이 혹시 도서관 직접 가봤냐고 물었다.
안 가봤다고 했더니 진짜 산꼭대기에 있어서 출퇴근이 힘들 수 있다고 했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떨어졌다.
그 뒤로 도대체 얼마나 산꼭대기길래 그러지? 싶었고 언제 한 번 꼭 가보리라, 다짐했다.
실행에 옮기기까지 참 오래도 걸렸다.
어디 얼마나 멀고 외진 지, 또 얼마나 멋진지, 오늘은 꼭 가보리라.
와... 진짜 성곽 아래(그래서 이름에 성곽이 들어가겠지, 당연한 소리를...)였다.
6호선 버티고개역이나 약수역에서 도보 13분이라고 찍히는데, 내 걸음으로 거의 30분이 걸렸다.
입구가 작아 자칫하면 지나칠 수 있을 것 같은 도서관. 주변 성곽과 잘 어우러지는 벽돌로 지은 아담해 보이는 공간이었다. 규모가 작은 도서관은 너무 아기자기해서, 아기자기하다는 건 직원과 이용자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것이고, 도서관의 전체 규모가 한눈에 보인다는 것이고, 그건 음... 너무 부담스럽다.
역시 건물도 풍경도 멋졌다. 요즘 도서관답게 층고가 높고 식물과 오브제로 근사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천장까지 이어진 서가와 창문틀에 놓인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이벤트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특색 있는 도서관이 많은 것을 활용한 중구 도서관 스탬프 투어는 각 도서관에 비치된 도장을 찍으면 제법 근사한 그림이 완성되는 이벤트로 흥미로웠다. 칼 각을 맞춰 책을 꽂아놓은 곡선 서가를 따라 걸으면서 책도 보고 이벤트도 보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1층에 마련된 개인 소파와 어린이실의 아기자기한 의자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3층에는 문학과 잡지를 모아놓은 공간이 있었다. 진한 나무색 서가와 좌식으로 배치해 놓은 공간이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벽에 기대앉아 책을 읽으면 금세 몰입해 한 권 뚝딱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책과 식물, 참 낭만적인 조합이다. 그런데 이용자가 앉을 곳이 너무 적다. 어린이실도 거의 구색만 갖춘 것 같고, 입구에 마련된 식물과 미디어 월(?)을 통과하는 부분의 통행도 불편했다. 두 명이 지나가면 한 명이 비켜줘야 했다.
3층 문학 자료실도 좌식으로 앉아서 편하게 보기는 좋다. 그런데 누가 앉아 있는데 책을 찾을 수 있을까? 물론 줄을 쳐놓긴 했다. 그런데 책을 찾겠다고 굳이 굳이 거길 비집고 들어갈 용기가 일단 나는 없다.
와, 정수기 위치를 보고는 깜짝 놀랐고, 많은 식물들을 보고는 저건 다 누가 관리하지? 담당자가 따로 있는 건가? 싶었다. (일 늘리기 싫어하는 직원인 나의 시선이다.)
이용자도 편해 보이지 않는 동선인데, 직원들은 일하기 편할까?
아니라고 본다. 직원 관련 시설은 더더욱 없을 테고.
경력이 일천한 내가 봐도 이건 분명 설계 때 도서관 관계자가 한 명도 참여하지 않았을 것 같은 디자인과 동선이었다.
평일 낮, 와~ 이용자가 열 명도 안 됐다. 와~ 부럽다, 정말 부러웠다.
성곽을 지나다 구경을 온 듯한 중년 여성들이 휙 둘러보고 나가니 더 썰렁하고 고요해졌다.
주말에는 각종 프로그램과 나들이 손님(?)으로 북적일 것 같지만 일단 평일에는 한산한 것이 지박령도 없고 정말 내가 딱 원하는 그림(?)이었다. (서가의 책 배가 상태만 봐도 안다. 서가에 책 등을 딱 맞춰 놓는다는 건 이용자가 별로 없거나 배가 인력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상주하면서 그때그때, 바로바로 정리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곳도 밤 10시까지 운영한다고? 저녁에는 이용자가 좀 늘어날까? 설마 규모가 작다고 덜렁 혼자서 근무하는 건 아니겠지? 이렇게 인적이 드문 곳을 밤 10시까지 운영한다는 건 조금 과한 거 아닌가 싶었다. ('한 명의 이용자라도 최선을 다해서 모시겠습니다!' 마인드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밤 10시는 폭력이다. 이건 또 많은 말이 나올 수 있는 주제지만... 어쨌든 직원의 안전은 꿈도 꾸지 못한다... 최근 세무서 민원실에 보안 인력이 상주하기로 했다는데, 내 생각에는 모든 공공시설에 보안 인력을 상주시켜야 한다고 본다.)
겉만 봤을 땐 뭔가 좋아 보이고 예쁜데 편안하지는 않은 공간이었는데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 주말에 오면 또 어떤 분위기일지 궁금하긴 했다.
너무 멀어서 다시 올 것 같진 않지만, 도서관 내부는 물론 야외에도 쉴 공간이 있으니 산책 삼아 성곽길을 걷다가 한 번쯤 들러보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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