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더위가 가고 가을이 찾아올 무렵 전 직장 동료로부터 소개팅을 받아보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20살 처음 소개팅의 기억이 썩 좋지 않았기에 그 뒤로도 소개팅은 일절 거절하고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이번에는 결과가 어떻든 '한 번 만나나 볼까?'라는 가벼운 생각이었다. 그저 인생에서 처음 했던 소개팅의 기억이 계속해서 좋지 않을 채로 지내는 게 영 찝찝하기도 했었던 거 같다.
당시 남편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달 동안 오리엔테이션 일정으로 숙소에서 지내 바로 만날 수가 없었다. 주선자에게 소개받고 대략 한 달이 지나서야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우리의 첫 만남이었던 합정역 5번 출구 앞, 남편의 첫인상을 잊을 수가 없다.
첫 만남, 운명이라는 느낌이 오나요?
보통 결혼한 커플들에게 흔히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첫 만남에 이 사람이 내 사람이라는 확신이 왔어?' 같은 질문들이다. 물론 지금의 남편을 처음 만난 날 선하고 선한 얼굴과 하얗고 동글동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모습을 보고 '웃음이 참 서글서글하고 사람 좋아 보이네'라는 생각은 바로 들었었다. 하지만 첫인상이 좋다고 해서 영화처럼 '이 사람은 운명이야!'라는 느낌은 사실 믿지 않는다. 잠깐의 연애를 거친다고 해도 누군가를 마음에 품기까지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 사람을 잘 만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기 때문에 쉽사리 처음부터 마음을 열지는 않았던 거 같다.
지금의 남편은 잘 모를 거다. 마음을 열기까지 얼마나 많은 나만의 테스트를 그대는 거쳐왔는지-
결혼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
연애를 하면서 남편에게 신신당부했던 게 있다면 '난 늘 한결같은 사람이 좋아'라는 이야기였다. 한결같은 사람이 된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연애 초반이야 서로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겠지만 늘 지속성이 문제다. 한결같은 사람이 좋다고 할 때마다 남편은 '그럼 그냥 지켜봐 줘'라고 대답했고 결혼하고 나서 지금까지 행동으로 실천해주고 있다. 결혼을 결심한 이유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이기도 했다.
꽃길만 걸을 수는 없기에
살아가면서 걸어야 되는 길이 늘 꽃길이면 얼마나 좋을까? 시련 따위는 없이 늘 행복한 날만 가득하면 좋으련만 우리는 알고 있다, 삶이 늘 꽃길일 수 없다는 걸.
혼자 지내온 순간에도 시련은 늘 찾아왔고 혼자 극복하기도 또는 주변 누군가에 힘을 얻어 견뎌오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생활이라는 건 다르다. 배우자가 생긴다는 건 남은 인생을 이 사람과 함께 좋을 때나 슬플 때나 같이 보내야 된다. 나에게 기쁜 일이 생긴다면 가장 가까이서 기쁨을 나눌 사람은 배우자가 될 테고 나쁜 일이 생긴다 해도 같이 짊어져야 할 사람도 배우자가 되는 거다. 기쁨은 배우자가 아니더라도 주변 사람과 쉽게 나눌 수 있지만 시련은 그렇지가 않다. 하물며 부모님한테는 더욱 내색하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내 배우자가 되어줄 사람에게는 이러한 부분들이 필요했다.
따뜻하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
이해심과 포용력이 깊은 사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
배우자로서 뿐만이 아닌 인간으로서도 너무 중요한 부분이지만 배우자 선정하는 기준에서 나에게는 돈과 명예보단 사람의 됨됨이가 가장 중요했던 부분이다. 나의 결점을 따뜻하게 받아줄 수 있는 지금의 남편을 만난 건 내 인생에 큰 행운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런 사람이라면 시련이 오더라도 같이 헤쳐나갈 수 있을 거 같은 확신이 들었다.
사람마다 배우자를 선정하는 기준은 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돈이 가장 중요할 수 있고 명예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수도 있다. 무엇을 중요시 여겨야 할지 모르겠다면, 나의 가치관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배우자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어떤 걸 가장 중요시 여기는지가 일 순위다. 그 후에 내가 가진 가치관을 존중해주며 함께 이해하고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된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어렵기 때문에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하고 만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