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우리 삼 남매 중 엄마의 가장 큰 껌딱지는 바로 '나'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사춘기 시절을 지나오면서도 뒤돌아서면 늘 친구보다는 엄마의 곁에 머물렀던 거 같다. 고등학생 시절 엄마의 회사와 나의 학교가 버스정류장으로 고작 한 정거장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이 끝나갈 무렵에는 오전 수업밖에 하지 않아 덕분에 늘 엄마의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들의 떡볶이 모임조차 만류하고 엄마와 하교하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미국에서 4년 동안 혼자 지냈을 때에도 하루에 한 번은 기본으로 엄마와 끊임없이 통화를 했었는데 이렇게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 게 힘들 줄 알았다면 애초에 유학의 길에 오르지도 못했을 거 같다.
이렇게 애틋하고 엄마의 껌딱지 시절도 있었지만 정말 남보다도 못하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사건들도 많았다.
가까울수록 지켜야 하는 적정거리
미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막 취업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부모님의 희생으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기 때문에 많은 기대가 있을 수밖에 없는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그 기대감이 집에 있는 내내 나를 억눌렀고 엄마가 원했던 방향으로 길이 흘러가지 않자 모녀관계가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다. 가장 엄마와 심하게 다투고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만 골라서 뱉었을 때가 이 순간들이었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들이 꽤 오랜 시간 동안 마음 한구석에 남아 떠오를 때마다 깊은 상처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가장 가까운 사이가 어쩌면 가족이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타인에게는 쉽게 뱉지 못할 말들을 오히려 가족에게 더 쉽게 뱉기도 한다. '나' 자신을 중점으로 가족을 한 걸음 떨어져서 본다면 이들도 '타인'이다. 가족이라 해서 모든 말들이 용서가 되고 이해가 되는 게 아니다. 가족 간에도 지켜야 할 적정거리가 있다는 걸 수 없는 싸움으로 깨달았다.
세상에 엄마들에게
흔히 엄마와 모녀간에 다툼이 생기는 경우의 수는 많겠지만 가장 흔한 부분을 꼽아보자면 딸이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순간들이 아닐까 싶다. 엄마도 엄마의 친구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부분들을 딸에게 털어놓고 감정을 쏟아냄으로써 위로받거나 때론 화를 풀기도 하는 거 같다. 하지만 반대로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껴야 하는 딸들은 가끔 벅찰 때가 있다. 그리고 상처로 남을 때도 있다. 이런 엄마의 행동을 이해해보려 노력하고 공감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단어가 격하게 들릴 수 있으니 나는 고민 창구 정도로 표현해보려고 한다. 말 그대로 엄마들이 겪고 있는 힘듬이나 슬픔이 있다면 감정을 털어놓는 게 아닌 고민 상담식으로 딸에게 접근해보면 어떨까 싶다. 앞서 표현한 감정 쓰레기통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 싶다.
세상에 모든 딸들에게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고 싶지 않아 애초부터 귀를 닫은 딸들이 있다면 스스로를 엄마의 고민 창구로 생각해보고 엄마의 감정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여보자.
온전한 나의 엄마로서 상황을 이해해보고 그다음은 같은 여자로서 이해하려고 노력해보자. 시간이 지나면 나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모습에 감사하다.엄마에게는 그저 들어주기만 하는 걸로 큰 위로가 될 테니까.
물론, 고민 이상의 불필요한 감정이 나에게로 쏟아져 나온다면 주저 없이 컷 해도 좋다.
가까울수록 지켜야 할 선이 부모와 자식 관계에도 있다.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 가족이라는 이유로 지켜야 할 선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선이라는 단어에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정거리는 오히려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