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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어가기 Sep 16. 2021

그림자의 통합

도플갱어와 울타리


그림자


온전한 전체성, 즉 자기(Self)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그림자(shadow)와의 통합 과정이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그림자는 내가 억눌러왔던 나의 또 다른 부분이며, 그림자가 없는 지금의 상태는 그저 반쪽짜리의 불완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온전한 전체가 되기 위해서는 억눌렀던 잃어버린 반쪽의 나를 되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림자와 마주하는 과정은 끔찍하리만치도 괴로운데, 그림자는 지금까지 내가 옳지 않다고 생각해왔던 악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림자가 그림자가 된 이유는, 정신세계에서 내가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을 의식의 바깥 부분으로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인정할 수 없는 것은 일단 치워버림으로써 가치관은 유지되고 당분간은 손상 없이 자아(ego)를 유지할 수 있다. 자아는 인간 의식의 탄생과 더불어 계속 성장해나간다. 우리의 자아는 인류 전체의 가치관, 혹은 특정 집단의 가치관들을 막대기 삼아 이를 모방하여 마치 덩굴처럼 타고 올라가는데, 이런 막대기는 자아의 성장을 더욱 빠르게 하는 지지대 역할을 한다. 그림자를 만나는 과정은 이 막대기를 다 빼버리는 것과 같다. 내가 지금까지 옳다고 믿어왔던 정의와 가치관들이 전부 무너진다. 자아가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자아도 같이 한 번 죽는다. 내가 알고 있던 세계의 파멸 그리고 재탄생하는 것이 바로, 그림자와 대면하는 과정이다.


그림자와 위험


이 세계의 파멸을 충분히 견딜 수 있을 만큼 탄탄하지 않으면 정신세계 자체가 무너져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그림자를 만나는 과정은 위험하다. 도플갱어에 대한 전설이 있다. 나와 똑같은 나를 만나면 죽어버린다는 괴담이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생각보다 상당히 타당한 이야기인데, 나와 똑같은 모습인 나, 그러나 나와는 다른 개체인 나, 이것은 모두 그림자를 의미한다. 그림자를 만나면 현재 상태의 자아는 소멸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전혀 모르는 ‘타자’로서의 나를 만났을 때 이상하리만치 소름 끼치고 괴이한 느낌과 함께 존재 자체에 대한 깊은 불안이 피어오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소멸에 대한 불안은 터무니없는 불안이 아니다. 진짜로 죽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그림자와의 만남은 위험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림자는 항상 만나지 못하도록 즉 의식 위로 떠오르지 못하도록 수면 아래에 억눌러져 있다. 그림자와의 통합을 저해하는 건 정신세계의 안정을 추구하는 하나의 안전장치이다.


그림자와 쾌락


그림자와의 만남의 또 다른 속성 하나는 희열인데, 이것은 그림자가 금기(터부)의 측면을 가지기 때문이다. 금기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말도록 지시하는 하나의 심리적 안전장치이다. 이 금기의 선을 넘어가는 순간 그림자를 맞닥뜨리게 되므로, 그것을 어기지 않도록 하는 엄중한 경고이다. 많은 사람들은 금기에 대한 의심 없이 안전 울타리 속에서 잘 살아간다. 그러나 언제나 학교 담장을 넘는 사람들이 있다. 울타리 안에 대한 답답함,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들이 언제나 울타리를 넘어가도록 자극한다. 울타리는 그 안의 공간을 지켜낸다는 안전장치로서의 의미가 있고, 반대로 그 울타리를 항상 뛰어넘도록 유혹하는 금기로서의 또 다른 의미가 있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이유는 그때의 짜릿한 쾌감 때문이다. 왜, 어렸을 때 부모가 유난히 하지 말라고 했던 것들을, 오히려 더 매달려서 몰두하고 심지어 성인이 되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청개구리 심보는 인류 공통의 속성이다. 사람은 하지 말라는 것에 더욱더 집착하게 되는 법이다. 금기를 넘어서는 것은 단순한 잘못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의 전개를 뜻한다. 민담 속에서 이야기가 펼쳐질 때 언제나 금기가 어겨지게 된다. 그때는 왜 하지 말라는 것을 꼭 해버려서 주인공이 그 고생을 하나 싶지만, 금기를 어기지 않고 가만히 조용히 살아갔으면 민담으로 전해질 만한 이야깃거리도 없다. 이야기의 진행은 의식의 성장을 의미하며 따라서 금기를 어기는 것은 성장에 대한 가능성이다. 물론 그 결말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정체의 상태보다는 변화가 더 생동감을 부여하는 법이다. 금기시되어왔던 인간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탐색은 언제나 짜릿한 쾌감을 불러일으키게 되어있다. 다만 이 쾌감에 계속 몰두하면 그림자의 역전, 즉 인간의 삶에서 의식보다 그림자가 삶을 주도하게 되는 상황이 등장하고, 그러면 그림자에 삼켜져 인생이 파멸할 위험성이 높다. 금기가 보호해주는 것은 이러한 파멸의 위험성이다.


그림자와 통합하는 과정 - 1


그림자는 이렇게 성장과 파멸의 가능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미지의 세계이며 위험하고 괴로운 과정이지만 동시에 쾌감을 선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면 이 그림자의 통합은 언제, 어디서, 왜 일어나게 될까? 나는 이 과정을 하나의 단계로 묘사했지만, 사실은 그림자와의 만남은 매우 다채롭게 반복된다. 하나의 가치관에 하나의 그림자적 측면이 발생하는 만큼, 우리의 정신세계의 안에는 크고 작은 그림자들이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우리가 평소에 추구하는 가치관이 절대적일수록 그림자의 크기도 더 커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그림자의 일부를 의식의 한 부분으로 통합하는 과정을 반복해서 겪는다. 그것은 그림자의 크기, 즉 의식의 방향성의 크기에 따라 원활한 과정일 수도, 죽도록 힘든 과정일 수도 있다. 그림자의 통합 기회는 언제나 의식의 성장이 한계에 다다른 그 시기에 찾아온다. 모든 것이 정체되어서 지금까지의 논리, 가치관으로는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을 때, 다른 곁길로의 가능성이 0이 되는 순간 무풍의 상태가 찾아오고 내가 보기 싫었던 어두운 부분에서 성장의 가능성을 퍼올리게 된다. 그리고 고통스럽고도 짜릿한 묘한 과정을 거쳐 그림자를 통합하게 되면 의식의 지평이 조금 더 넓어진다. 그리고 또 살아가다가 의식은 한계에 부딪히고, 그러면 또 그림자를 통합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하고 반복되는 것이 인생이고, 그러면서 자아는 자기(Self), 즉 온전한 전체성에 조금씩 다가가게 된다. 매 순간이 고통이고 위험하며 동시에 쾌락이다. 그림자를 통합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고 인생이 자아에게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 보고 성장하라고 계속해서 다그치는 것이다. 우리는 늘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겠지만, 시간이 이 간절한 소망을 방해한다. 시간의 흐름을 멈출 수 없다면 성장과 변화는 필연적이다. 그것이 그림자를 마주하게 되는 이유이다.


그림자와 통합하는 과정 - 2


그림자와의 통합 과정은 인지적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고 고찰하고 심도 있는 통찰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그런 형이상학적 과정이 아니다. 해결의 실마리는 언제나 행동이다. 문제 상황에 대한 인지적 습득은 자칫 잘못하면 하나의 방어기제, 회피의 메커니즘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문제 상황을 해결해주는 것은 인지가 아니라 결국 행동이다. 알고 있더라도 행동할 수 없다면 아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반면에 알지 못하더라도 행동을 나도 모르게 행했다면 그것은 변화를 가져온다. 대부분 본능적 충동에 의해 나도 모르게 행동을 취하며 그것은 결과적으로 변화를 일으킨다. 다시 말해 그림자에 대한 지식이 변화와 성장에 꼭 필수적인 것은 아닌 것이다. 그림자와 대결하고 통합하는 과정은 결국 그 사이로 정면으로 뛰어드는 행동이다. 어설프게 아는 척했다가는 계속해서 그림자로부터 도망 다니거나 그림자에게 사로잡힐 뿐이다. 막상 행동으로 옮겨보고 나면, 그것이 생각보다 그렇게 크고 두렵고 괴롭고 불안한 존재가 아니었음을, 생각보다 많은 변화가 일어나지도 않음을, 그저 자연스러운 부분의 일부였는데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이것 또한 원래의 내가 가지고 있었던 본연의 모습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림자와의 대결 후에 다가오는 통합 과정은 대단한 성취가 아니라 허무하리만치 자연스럽다. 그토록 버티고 있었던 나의 아집만이 스스로의 그림자를 거대하게 만든 원인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밀려드는 사무침은 그저 흘러가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뿐이다. 그럼에도 또 다른 그림자를 통합할 때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긴박감과 긴장감 속에 다시 인생 최고의 대결을 겪게 된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의 민담이라기보다는 계속해서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반복되는 민담집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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