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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Oct 23. 2022

회심곡이 흐르는 바다

   

 깊은 수심과 용암으로 이루어진 기암괴석과 소나무 숲이 조화를 이룬 이름다운 풍광의 쇠소깍 입구에 도착했다. 올레길 6코스를 걷기 위해서였다. 젊은 남녀들이 유유자적 카약을 타고 있는 모습을 나는 무심이 내려다보았다. 옥빛 물 위에 노니는 그들의 여유가 부러웠고, 그들의 동행이 부러웠다. 

 혼자라는 사실이 새삼 다가올 즈음에 한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고, 쇠소깍의 평온한 물빛을 같이 내려다봤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고, 산책 나온 남자와 함께 올레 6길을 동행했다. 남자의 인상은 선해 보였으나 행색은 남루했다. 말투나 표정은 진지했다. 나이는 사십 대 후반쯤 돼 보였고, 횟집의 주방에서 일한다고 했다. 남자의 손은 거칠었고, 피부는 까칠하고, 건조했다. 외모에서 고생한 티가 많이 느껴졌다. 사람이 맑아 보인다며 나에게 다가왔다고 했다. 사람을 꿰뚫어 보는 눈이 있는 것일까. 하긴 그 나이에 산전수전 다 겪다 보면 사람을 헤아리는 안목도 지니지 않겠는가.

 남자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와의 마지막 이별을 선명하게 표현했다. 미루어 짐작건대 남자의 어머니는 본처가 아니고, 첩인 듯했다. 남자는 예 일곱 살에 어머니와 헤어졌다고 했다. 흙장난을 하고 해 질 무렵에 귀가한 날, 평상시에 입지 않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가 조부모에게 다소곳하게 큰절을 드리고 있었다고 했다. 당시 어렸던 남자는 친모가 무슨 이유로, 왜 떠났는지도 알지 못했다. 할머니나 큰엄마가 쫓아냈다고 유추할 따름이었다. 그 후에 남자는 아버지와 배다른 형제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져 십 대 시절에 가출했다고 했다. 외롭고 힘들게 자랐다고 했다. 그런 탓에 남자의 가슴엔 친모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있었다. 명절이나 생일 때면 더욱더 허전함을 느꼈다고 했다. 

 전국을 정처 없이 떠돌다 제주도에 발걸음이 머물렀고, 망망대해와 부서지는 파도 소리, 물비늘을 보며 마음의 번뇌를 지우려 했단다. 바닷가의 작은 집에서 아침마다 김영임의 회심곡을 경청했다고 했다. 

 莫謂當年學日多하니/무정세월 여류 하여/사람마다 부모 은공 못다 갚고

 인간 백 년 사자 하니//공도(公道)라니 백발이요/못 면할손 죽엄이라

 회심곡을 들으며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했다. 괜찮아졌다고 했으나 여전히 남자의 가슴엔 바위 같은 응어리는 남아있는 듯했다. 어린 시절의 이별 후에 단 한 번도 어머니를 뵌 적이 없다고 했다.

 어느새 발걸음은 백두산 천지를 축소해 놓았다는 소천지에 닿았다. 혼자서라면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던 경관을 남자 때문에 놓치지 않게 됐다. 뾰쪽하게 솟은 화강암과 바닷물에 비친 그림자가 아름다웠다. 맑은 바닷물을 들여다보며 나의 마음도 비워보았다. 남자도 우두커니 서서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후에 어머니의 소식을 들은 적이 없느냐고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자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했다. 먹고살기 바빠서 어머니를 일찍 찾지 못한 후회와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회한이 담긴 목소리였다.

 정방폭포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부터 시원한 물줄기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정방폭포의 상인들과는 아는 눈치였다. 오늘 장사는 어때냐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근처의 편의점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다. 남자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며 나에게 커피 한 잔을 대접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편의점의 이천 원짜리 커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커피 맛은 쓰고, 바람은 세게 불어 머리카락이 헝클어졌다. 시간은 오후 네 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나는 남자 때문에 변경된 일정을 머릿속으로 되뇌며, 어느새 남자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남자와 헤어졌고, 남자의 마지막 한 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맑은 분이시니, 세상에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사시면 될 거예요.”

 그리고 그 남자를 잊었다, 십 년이 넘은 후에 부모님과 제주도를 방문했다. 앙칼스러운 바람은 여전히 했고, 일렁이는 파도와 물비늘도 여전했다. 엄마는 몇 년 전에 치매 진단받았다. 대·소변 실수가 잦고 먹는 것만 집착했다. 비행기를 타도 인지하지 못했으며 꽃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붉게 핀 동백꽃을 구경시켜 줘도 돌아서면 까먹었다. 오로지 통 갈치 정식만 집착했다. 싱싱한 갈치의 가시를 발라 들이며, 너무 늦게 엄마를 모셔 왔다는 후회가 몰려왔다.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엄마의 기억 속에는 첫사랑처럼 물든 동백꽃들이 존재하고, 햇살에 반짝이는 파도가 존재할 것이다.

 신창 해안도로의 일렬로 선 커다란 풍차들이 바람에 쉼 없이 돌아가는 풍광을 보며 문득 그 남자를 떠올랐다.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 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엄마는 나에게 효도할 시간이라도 주었으나 그에게는 그런 기회조차도 없지 않았던가. 커다란 풍차가 돌아가는 해안도로에서 목도리를 자꾸 여미는 엄마의 모습과 낯선 타지에서 회심곡을 반복해서 들었을 그 남자의 뒷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 남자의 눈물도 바닷물처럼 짜지 않았을까. 짠 바닷물과 하얀 파도를 보며 나는 외투를 벗었다. 그리고 엄마의 어깨 위에 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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