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만난 그대

노루귀

by 이우형
10년전 만난 화야산의 노루귀.


화야산은 2006년부터 2016년까지 해마다 두어 차례 정도 드나들었다. 화야산은 꽃이 많은 산이다. 특히 봄에 청보라색 꽃을 피우는 ‘청노루귀’로 유명하다. ‘노루귀’는 비교적 만나기 쉬운 봄꽃이다. 꽃색은 대부분 희거나 분홍색이다. 분홍의 경우 옅거나 짙은 차이가 있지만, 청보라색을 가진 노루귀는 몇몇 산지가 아니면 만나기 어렵다. 그중 한 곳이 화야산이다.

꽃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불문율이 하나 있다. 촬영 장소를 알리지 않는 것이다. 장소를 표기한다면, 촬영지가 속한 시군 정도 언급하는 게 전부다. 하지만 화야산, 천마산처럼 모두가 알고 있는 장소는 그대로 표기하기도 한다. 굳이 숨길 이유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꼭 10년이 지난 올 4월 초 다시 화야산을 찾았다. 한동안 야생화 탐사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는데, 자의 반 타의 반 다시 촬영할 기회가 생긴 탓이다. 10년 만에 찾은 화야산은 여전했다. 입구도 계곡도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에 흙이 많이 씻겨 내려간 듯한 느낌 말고는, 특별히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얼레지’가 지천이었고, 숨어 있는 ‘무늬족도리풀’과의 눈 맞춤도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입구에서 만난 ‘회리바람꽃’은 20년 전의 기억을 그대로 떠오르게 했다. 회리바람꽃을 처음 만만 곳이 화야산이었다. ‘미치광이풀’은 그 세력을 더욱 넓힌 듯 보였다. 계곡 양편으로 곳곳에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계곡을 배경으로 바위틈에 자리 잡은 ‘돌단풍’, 수줍게 햇볕을 쬐고 있는 ‘금붓꽃’, 제 세상을 만난 ‘개별꽃’ 등등 옛 친구들 대부분이 그대로였다.

그들 중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노루귀였다. 화야산에는 흰색, 분홍색, 청보라색의 노루귀가 모두 있었다. 그런데 하나도 만날 수 없었다. 얼레지와 함께 어울려 피어나던 노루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화야산의 상징은, 흔히 말하는 ‘청노루귀’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뿐만 아니라 노루귀 자체를 만날 수 없었다.

돌무더기 등산로를 피해 계곡 옆 오솔길로 산을 거의 내려왔을 무렵, 함께 갔던 동료가 조용히 ‘노루귀’를 속삭였다. 마지막으로 얼레지를 촬영하던 그의 눈에 노루귀가 들어왔던 거였다. 일어나 다가가니 조그만 바위 옆 낙엽 사이로 한 송이가 보였다. 청노루귀였다. 반가운 마음에 몇 장 촬영하고 누가 볼세라 낙엽으로 살짝 가려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을 장담할 수 없을 듯했다.

노루귀가 이처럼 귀해진 게, 어쩌면 손을 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두 송이씩 캐서 가져간 게 지금의 상황을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다.

여전히 산에 오는 사진가 중 몇몇은 방석과 돗자리를 들고 와 바닥에 깔고 엎드려 촬영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꽃은 사진을 위한 도구일 뿐, 깔리거나 뽑아가도 문제 되지 않는 하찮은 존재에 불과해 보였다.

10년쯤 지나 다시 왔을 때, 당연히 만날 것이라 믿었던 존재가 그 자리에 없다면, 그들은 과연 상실감을 느끼게 될까?

노루귀는 어린잎이 돋아날 때 말린 모습과 뒷면에 돋은 털이 마치 노루의 귀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식물향명집』 주해서인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에는 ‘노루귀라는 이름은 『조선식물향명집』에 따른 것으로, 어린잎(포엽 포함)이 노루의 귀처럼 보이는 데서 유래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노루귀의 학명은 ‘Hepatica asiatica Nakai’이다. 속명 ‘Hepatica’는 ‘간’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잎의 모양에서 따왔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노루귀’, ‘유성노루귀’, ‘새끼노루귀’, ‘섬노루귀’ 이렇게 4종이 ‘노루귀속’으로 등록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잎이 세 갈래로 갈라진 모양’에서 따온 ‘미스미소우’(三角草, ミスミソウ), ‘눈을 가르고 나오는 풀’이란 의미의 ‘유키와리소우’(雪割草, ユキワリソウ) 등 형태, 모양, 분포 지역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중국에서는 ‘노루귀를 닮은 족도리풀’이란 의미로 ‘장이세신’(獐耳细辛)이라 불린다. 이름 그대로 약용식물로 분류되며,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에 따르면, 노루귀라는 이름이 여기서 유래되었을 거라 보고 있다.

노루귀의 꽃말은 ‘인내’로 알려져 있다. 꽃색에 따라 붙여진 것도 있는데, 흰색은 ‘순결·신뢰’, 분홍색은 ‘수줍음·애정’, 청색은 ‘고귀함·기다림’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화야산의 노루귀는 이제 하늘의 도움을 받아야 겨우 만날 수 있는 존재가 된 듯싶다. 그나마 잊지 말라며 얼굴을 보여 준 청노루귀 한 송이가 비루해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참고

·《국가표준식물목록》, 산림청 국립수목원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조민제 外 編著.

·https://www.nature.go.kr/(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국립수목원.

·검색 도우미 : ChatGPT, 네이버 등



2026년 4월 만난 화야산 청노루귀.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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