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피나물

by 이우형


한때 청계산 계곡을 노랗게 물들이던 꽃이 있었다. 줄기를 자르면 붉은 피 같은 유액이 흘러나온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피나물’이다. 몇 해 전까지는 군데군데 한두 포기씩 모습을 보였는데, 올봄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계곡을 따라 설치한 데크 길도 한몫 거들었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나물은 건조에 약한 식물이라 물이 많은 곳에서 잘 자란다. 계곡을 따라 무리 지어 자라는 이유다. 보통 4월경 꽃을 피운다. 다 크면 키가 30cm 정도 된다. 무리 지어 노란 꽃이 피어있는 모습은 마치 정원에 심어 놓은 화초의 느낌을 준다.

피나물의 다른 이름은 ‘노랑매미꽃’, ‘매미꽃’, ‘미색노랑매미꽃’, ‘봄매미꽃’, ‘새발노랑매미꽃’, ‘선매미꽃’ 등이다. 정명으로 불리는 피나물 외에 모두 ‘매미’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게 흥미롭다.

비슷하게 생겨 오해받는 다른 꽃이 있다. 짐작했겠지만, ‘매미꽃’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매미꽃을 부르는 다른 이름은 ‘갈래피나물’, ‘개매미꽃’, ‘여름매미꽃’, ‘피나물’ 등이다.

이쯤 되면 두 식물의 정체성에 혼란이 올 만하다. ‘네가 나인지, 내가 너인지’ 서로 혼동하기 딱 좋은 분위기 아닌가. 만약 형제라면 이름 놓고 많이 싸웠을 법하다.

이우철 교수의 《한국 식물명의 유래》에는 피나물에 대해 “줄기를 자르면 불그스레한 피와 같은 유액이 분비된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매미꽃에 대해서는 “피나물의 이명으로 사용”되며 유래는 “미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른 기록을 찾아보자. 『조선식물향명집』 주해서인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에는 ‘노랑매미꽃’이라는 큰 제목 밑에 매미꽃이라 쓰고 “줄기를 자르면 붉은 피 같은 유액이 나오고 나물로 식용하는 것에서 유래했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또 “『조선식물향명집』은 꽃이 노란색으로 피고 매미를 닮았다는 뜻에서 ‘노랑매미꽃’으로 기록했으나, 『조선산야생식용 식물』에서 피나물로 개칭에 현재에 이르고 있다”라고 부연하고 있다.

두 식물이 형제처럼 닮았지만, 그렇다고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쌍둥이는 아니다. 일단 두 식물 모두 양귀비과에 속한다. 꽃의 모양과 잎의 모양도 비슷하다. 잎의 모양을 설명하는 식물용어로 ‘우상복엽’이란 점도 닮았다. 꽃의 모양도 꽃잎 4장에 많은 수술, 암술 하나라는 점이 같다.

다만, 꽃이 달리는 형태가 다르다. 피나물은 원줄기 끝의 잎겨드랑이에서 꽃대가 나와 하나의 꽃이 달린다. 매미꽃은 근경에서 꽃대가 올라와 끝에 많게는 10개까지 꽃이 달린다. 꽃대에는 잎이 없다.

이름이 부른 오해는 또 있다. 실제로 피나물은 붉은 유액을 흘리지 않는다. 정확히는 황적색의 유액이 나온다. 반면, 매미꽃은 선명한 붉은색의 유액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두 식물의 이름이 서로 엇갈리는 이유가 이 탓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실제로 국립수목원의 《국가생물종정보시스템》에는 매미꽃에 대해 “피나물과 이름이 바뀐 것이 아닌가 한다. 매미꽃은 줄기를 자르면 묽은 핏빛 액체가 나온다. 그러나 피나물은 줄기에서 노란색의 액체가 나온다”라고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피나물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서도 자란다. 중국에서는 ‘하청화’(荷青花)로 부른다. 이름의 의미는 ‘연꽃처럼 생긴 푸른 잎을 가진 꽃’이다. 이외에도 노란 꽃에서 유래하는 ‘계단황화’(鸡蛋黄花), 약효에서 유래하는 ‘괴조칠’(拐枣七) 등이 있다. 일본에서는 ‘황금색 꽃이 피는 식물’이란 의미의 ‘야마부키소우’(山吹草, ヤマブキソウ)로 불린다.

피나물과 달리, 매미꽃에 대해서는 두 나라 모두 별도의 기록이 없다. 그 이유는 매미꽃이 우리나라 특산식물이기 때문이다. 매미꽃의 학명은 ‘Coreanomecon hylomeconoides Nakai’다. 속명 ‘Coreanomecon’는 ‘한국의 양귀비’라는 뜻이다.

두 식물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꽃말로는 ‘봄나비’가 있다. 이름에 이어서 꽃말까지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꽃말은 공식적인 것이 아니라 크게 의미를 둘 건 아니라고 본다. 그저 꽃에 의미를 담아 기억하기 좋게 하기 위한 장치 정도로 이해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피나물이라 써 놓고 매미꽃 이야기가 더 많았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매번 사진을 촬영해 놓고 두 식물의 차이를 깊이 생각해 본 기억은 없다. 오늘 정리하면서 스스로 많은 걸 배우는 시간이 됐다. 오래전 은사께서 ‘공부’(工夫)란 ‘땅과 하늘에 가득 차(工), 하늘을 뚫는 것(夫)’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뜻밖의 식물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하늘을 뚫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적당히 채울 정도는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새삼 가져본다.





■참고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조민제 外 編著.

·《한국식물명의 유래》, 이우철 著.

·https://www.nature.go.kr/(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국립수목원.

·검색 도우미 : ChatGPT, 네이버 등




■피나물과 매미꽃

피나물


매미꽃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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