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붓꽃
올해 들어 산을 찾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여유가 조금 생긴 탓이 크지만, 야생화 촬영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사연이 생겼기 때문이다. 예전 기억을 되짚으며 촬영지를 찾아 나서니, 딴짓하던 세월이 언제였나 싶다. 어제 다녀왔던 것처럼 기억도 장소도 그대로였다. 물론 기억과 다른 상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세월이 압축돼 흘렀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오래도록 드나들었던 집 인근의 한 자생지를 찾았다. 대단하고 희귀한 꽃이 있는 장소는 아니지만, 늘 반겨주는 고운 얼굴들이 있어 발길이 잦았던 곳이다. 오랜만의 방문이었지만, 반가운 얼굴들은 그대로였다. ‘조개나물’. ‘솜방망이’, ‘꿩의밥’, ‘제비꿀’, ‘할미꽃’, ‘제비꽃’, ‘미나리아재비’ 등등, 봄꽃들이 기다렸다는 듯 바람에 손을 흔들었다.
가장 반가웠던 얼굴은 ‘각시붓꽃’이었다. 나지막한 키에 커다란 보라색꽃을 이고 있는 모습이라니. 정겨웠다. 각시붓꽃은 봄 양지바른 풀밭에서 비교적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꽃이지만, 만날 때마다 눈을 뗄 수 없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각시붓꽃의 ‘각시’는 키 작고 아담하지만, 아름다운 모습이 각시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붓꽃’은 꽃봉오리가 붓을 닮아서 붙여졌다. 일반적으로 붓꽃은 물을 좋아해 습지를 중심으로 자라지만, 각시붓꽃은 비교적 건조한 양지바른 풀밭에서 자란다.
비슷해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 형제로는 ‘솔붓꽃’이 있다. 솔붓꽃은 옛날 무명 짤 때 풀칠하던 솔을 솔붓꽃의 뿌리로 만들어 붙여진 이름이다. 흔히 각시붓꽃보다 솔붓꽃의 뿌리가 더 빳빳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구분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비슷한 시기에 꽃을 피우는 사촌으로 ‘금붓꽃’이 있다. 금붓꽃은 각시붓꽃과 달리 숲 언저리 반음지에서 자란다. 이름 그대로 꽃색이 짙은 노란색이다. 금붓꽃과 비슷한 노란색꽃을 피우는 형제로는 ‘노랑붓꽃’이 있다. 노랑붓꽃은 과거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남부지방의 제한된 곳에서만 만날 수 있다. 노랑붓꽃은 금붓꽃과 달리 꽃대 하나에서 두 송이의 꽃을 피운다. 꽃대 하나에 두 송이 꽃을 피우는 붓꽃이 하나 더 있다. ‘노랑무늬붓꽃’이다. 노랑무늬붓꽃 역시 얼굴 마주하기가 쉽지 않다.
각시붓꽃은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흔한 편이지만, 일본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일본에서는 각시붓꽃을 ‘에히메아야메’(エヒメアヤメ)로 부른다. 여기서 ‘에히메’(愛媛)는 일본 시코쿠 지역에 있는 도시의 이름이다. ‘아야메’(アヤメ)는 붓꽃을 뜻한다.
김종원 교수는 《한국식물생태보감2》에서 ‘1897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자생이 알려진 시코쿠 지역 에이메 현 고시오레야마(腰折山)의 각시붓꽃 자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 관리한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금붓꽃은 일본열도에 아예 분포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귀하신 몸이란 이야기다.
각시붓꽃의 다른 이름은 ‘애기붓꽃’이다. 『조선식물향명집』 주해서인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는 ‘『조선식물향명집』에서 유사한 뜻의 ’애기붓꽃‘을 신청해 기록했으나, 『조선식물명집』에서 ’각씨붓꽃‘으로 개칭한 후 『한국식물명감』에서 맞춤법에 따라 ’각시붓꽃‘으로 개칭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외에 다른 이름으로는 ‘분홍각시붓꽃’, ‘흰각시붓꽃’, ‘흰각씨붓꽃’ 등이 있다. 여기서 흰각시붓꽃이 나오는 이유는 드물게 흰색으로 피는 각시붓꽃이 있기 때문이다. 애기붓꽃은 솔붓꽃의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각시붓꽃의 꽃말로는 ‘기쁜 소식’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 ‘수줍음’, ‘신비한 사람’, ‘부끄러움’ 등이 있다.
올봄에 각시붓꽃과 금붓꽃 모두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수년 전 강원도 평창 오대산 자락에서 노랑무늬붓꽃을 만났을 때의 기쁨이 아직 생생하다. 올봄 두 붓꽃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 역시 그때와 다르지 않다. 5월에는 또 어떤 만남이 이어질지 자못 기대가 크다.
■참고
·《한국식물생태보감2》, 김종원 著.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조민제 外 編著.
·https://www.nature.go.kr/(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국립수목원.
·검색 도우미 : ChatGPT, 네이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