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지킨답시고 코트를 입었더니 너무 추워서 하루종일 떨었다. 같은 자리에 참석한 다른 사람이 롱패딩을 입은 모습을 보고 단정하지 않다거나 TPO에 어긋난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따뜻하겠다, 나도 롱패딩 입을걸, 미련했다' 하는 생각만 들었다. 목도리도 하지 않아 목덜미로 칼바람이 슝슝 들어와 바람과 닿는 면적을 최소화하고자 버버리 코트를 입은 영국 신사처럼 코트 깃을 한껏 세우고 승모근을 잔뜩 추켜올리고 걸었다. 카페에서 따뜻한 음료를 주문할까 고민하기까지 했다.
집지하철 역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홀린 듯이 찹쌀 꽈배기 가게에 들어가 거침없이 주문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 가게는 미리 튀겨 놓은 것도 있지만 바쁠 때가 아니면 주문 후 바로 튀겨줘서 좋다. 내가 주문한 꽈배기를 돌돌 말고, 바로 기름에 넣는 것을 구경하고 있자니 급속도로 배가 고파진다. 추우면 더 빨리 허기진다. 연소시켜 에너지로 만들 지방을 이렇게나 많이 축적해 놨건만 거기서 좀 떼서 쓰고 새 에너지를 넣어달라고 신호를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그 신호에 약하단 말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롱패딩을 입지 않고 겨울을 날 의향도 있다.
꽈배기가 들어간 기름 위 타이머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설탕을 묻힐까 말까 고민한다. 설탕을 다 묻히면 너무 달고 죄책감이 든다. 반만 묻혀달라고 하면 한쪽만 묻혀주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먹다 보면 아무리 조심해도 설탕가루가 여기저기 튀어 있다. 너비 30센티가 넘는 쟁반을 거의 턱 밑에 받쳐두고 먹어도 그렇다. 금세 녹아 끈적거리기까지 해서 청소하기가 너무 귀찮다. 그냥 찹쌀 꽈배기도 아니고 달콤한 유자 앙금이 들어간 꽈배기를 시켰으니 최소한의 양심을 지킬 겸, 설탕을 안 바르는 쪽을 택했다. 너무 진지하게 고민하는 바람에 듣고 있던 오디오북의 내용을 한참 놓치고 말았다.
타이머가 울리면 도넛을 건져 큰 채에 올리고, 기름을 두어 번 탈탈 털어 설탕을 바를 건지 물어본다. 간혹 안 물어보고 바로 설탕에 바로 도넛을 던져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땐 당혹스러운데 은근히 좋기도 하다.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따뜻한 도넛을 하얀 종이봉투에 담아서 비닐에 넣어 준다. 집이 가까운 데다가 어지간하면 비닐 사용을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비닐봉지는 받지 않고 종이봉투만 받았다.
갓 튀긴 도넛이 따끈따끈해서 나도 모르게 코트 안쪽으로 넣어 가슴에 품고 걷기 시작했다. 온몸이 훈훈해진다. 코 밑에서 기분 좋은 기름 냄새가 풍긴다. 비닐봉지를 받았으면 이렇게 안고 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손목에 건 채 주머니에 손을 넣었을 텐데. 나 잘했네. 기쁘다. 꽈배기의 온도로 얼었던 손이 녹고 따뜻해지기까지 한다. 꽈배기로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집에 빨리 가서 불편한 옷을 훌훌 던지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손만 씻고 바로 전기방석을 깔아 따뜻하고 폭신해진 소파에 누워서 우걱우걱 먹어야지. 오늘도 다이어트 다짐은 지방에 튀긴 고칼로리 탄수화물 간식에 밀려버렸다. 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