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편도는 처음입니다만,

by 해야

자존심이 상하는 순간이다. 내겐 이상한 자부심이 있다. 짐을 가볍게 싸되 필요한 것은 모두 기가 막히게 챙긴다는, ‘짐 싸기 부심’이다. 시작은 국토대장정이었다. 10여 년 전 참가한 국토대장정에서 우리는 행진 내내 침낭을 포함한 자신의 짐이 든 배낭을 메고 다녀야 했다.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보니 꼬리빗 무게조차 줄이려고 빗의 끝부분을 잘라서 버리고 들고 다녔다는 글을 보고 솔직히 ‘몇 그람이나 된다고 그렇게 까지야’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또 오만했다. 막상 참가해보니 더위와 체력과 싸우면서 1그람, 아니 0.1그람이라도 줄여야 내가 살겠구나 본능적으로 느꼈다. 21일간 매일 저녁 동안 더 짐을 줄이고, 버리기 위해 개인 정비 시간을 썼다. 그 시간에 대한 보답이랄까. 빠른 시간 안에 필요한 것만 부피를 촥촥 줄여 담을 수 있는 꼼수가 생겼고, 여행 갈 땐 늘 동행인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짐이 그게 다야?’ 하고 묻곤 했다. 게다가 나보다 짐이 많은 동행인들이 미처 챙기지 못한 물품을 빌려줄 땐 묘한 쾌감마저 든다. 그리하여 별달리 자랑할만한 장기도 특기도 없는 내게 이상한 자부심이 생겨버린 것이다.


서론이 길었다. 그래서 하고자 하는 말은, 이번 제주 여행은 짐이 너무 많다! 뚜벅이 여행이니 백팩만 하나 메고 갈까 했던 처음 생각과 달리 기내용 캐리어가 꽉 차서 꾹꾹 눌러 담아야 했다. 아무리 기념품을 안 산다 해도 돌아올 때는 아쉬운 마음에 뭐라도 사게 되어 있으므로 캐리어는 1/2에서 1/4 정도는 비워 가져 가야 하거늘, 처음부터 이렇게 빡빡하게 차다니 난감하다. 게다가 무게는 또 어찌나 무거운지 수하물 최대치인 15kg 넘으면 어쩌지 걱정된다.


짐이 많는데 나름의 변명거리가 있다. 이번 나 홀로 제주 여행은 출발 2일 전에 결정하고 시행한 것으로, 아무 계획도 없고 다만 희망 사항만 있는 일종의 도피다. 유독 힘든 한 주를 보내고 어디든 떠나 바다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즉흥적으로 결정해버렸다. 바다를 보면서 요가하고 싶어 요가복도 챙기고(아직 예약도 안 했고 정보도 없지만), 호핑투어가 있다는 말을 듣고(아직 예약도 안 했고 정보도 없지만 2) 일단 수영복과 래시가드, 스포츠 타월, 운동복 등을 챙기니 짐이 점점 늘어났다.


게다가 일정도 계획도 없는 여행의 정점, 편도 티켓을 끊었다. 편도는 처음이다. 가서 그냥 더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자는 생각으로 제주로 떠나는 비행기와 처음 도착해 머물 숙소만 3일 결제했다. 계획형 인간인 내게 좀 힘든 부분이긴 한데 또 어딘가 후련하기도 하다.


제주 여행 교통수단으로 버스를 택했다는 점도 걱정되는 부분이다. 풀 뚜벅이는 처음이다. 여행 중 며칠은 렌트를 하고, 한라산 가는 날과 공항 가는 날에만 버스와 택시를 이용한 적은 있지만 이번엔 처음부터 끝까지 버스를 이용해보려고 한다. 혼자 운전해 본 적이 없는 데다가 초보 운전자가 많은 제주라 렌트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저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버스 타고 잘 다닐 수 있을지.


제주도 가면서 걱정이 되는 건 처음이다. 나 잘할 수 있을까? 이번 여행은 어떻게 흘러갈까. 가 보자. 신비의 섬 제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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