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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Jan 13. 2023

네, 저는 호구입니다

택시사기를 조심하세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간 해외가 태국, 방콕이었다. 10여 년이 훌쩍 지나고 새로 발급받은 전자 여권에 첫 도장을 찍게 된 나라도 태국, 치앙마이다. 한국인답게 3-4일에 후다닥 스팟을 찍는 여행에 익숙해 장기 여행은 다녀본 일이 거의 없는데 유독 태국에서는 오래 머물렀었다. 대학 시절 처음 방콕에 갔을 때도 3주, 이번 치앙마이 여행도 2주 넘게 체류했으니 말이다. 


 대학 시절 함께 방콕에 다녀온 친구는 요즘도 태국 뉴스를 집중해서 보고 현 상황을 꿰뚫고 있다고 한다. 그때의 추억이 너무 커서 태국이 소중한 나라가 되어 버렸다고. 그래서 태국 소식에는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고 한다. 내게도 그렇다. 하지만 소중하기도 하고 동시에 아픈 기억도 있는 곳이 태국이다.


첫 번째 사기

 체류기간이 길고 주로 택시를 타고 다녔기 때문일까. 그간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유독 태국에서만 두 번이나 겪은 일이 있다. 바로 택시사기다. 첫 번째 사기는 4년 전 방콕에서 유명 쇼핑몰에 갔을 때 일이다. 택시 사기나 흥정 관련 에피소드가 워낙 많다 보니 태국에서도 이를 아는지 아예 쇼핑몰 1층에서 택시를 잡아주고, 미터로만 요금을 받게 한 서비스가 있었다. 이런 서비스가 있다니 무척 감동하여 꽤 줄을 서서 택시를 탔다. 


 그.런.데. 쇼핑몰 주차장을 나가자마자 기사는 미터기를 꺼버렸고, 말도 안 되는 금액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 사이 차는 이미 어두운 골목 어딘가를 지나고 있었고, 응하지 않으면 여기서 내리라고 협박했다. 이 어두운 골목길에 내려서 택시를 어떻게 잡는단 말인가. 우버가 온다고 해도 이 골목길에 서서 기다리는 건 무리였다. 무서웠고 달리 방법이 없어 기사가 처음에 제시한 터무니없는 금액에서 어느 정도 납득할만한(그러나 미터기를 이용했을 때의 2배가 넘는) 금액으로 협상했다.


 미터기로 하면 200바트 정도의 거리를 겨우 400바트로 합의하고 나서 확인해 보니 우리가 가진 잔돈은 350바트밖에 없고, 1000바트짜리 지폐만 있었다. 기사에게 잔돈 있냐고 물었더니 기사는 기분 좋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목적지인 달랏롯파이 야시장 앞에 멈춰 서서 어둑어둑한 차 안에서 400바트를 달라고 했다. 잔돈만 있었던 나는 뒷자리에 있던 동생에게 1000바트짜리 지폐를 받아 기사에게 건넨 후 잔돈을 기다렸다. 몇 초 후 기사는 세상 공손한 태도로 100바트 줬다고, 300바트를 더 줘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아무 의심 없이 300바트를 더 줬다.


 그때 뒷자리에 앉아 있던 동생이 분명 1000바트를 줬다고, 기어 옆에 떨어진 1000바트 같이 생긴건 뭐냐고 불 켜보라고 했다. 동생도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돈을 흘리거나 뭔가 실수가 있었던 것인 줄 알았지 사기를 의심하고 그 말을 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기사가 급히 그쪽에서 뭔가를 줍고 갑자기 의심하지 말라며 세상 억울한 사람처럼 울분을 토하며 화내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무섭기도 했고, 선량한 택시기사를 의심하는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동생에게 "왜 그래~"라고 하기까지 했다. 동시에 뒷 차 기다린다고 빨리 내리라고 다그쳐서 우리도 모르게 차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알았다. '당했구나.' 사기였다. 1000바트를 받고 내가 내릴 채비를 하는 사이 재빨리 100바트와 바꿔치기 한 다음 잔돈을 주지 않고 돈을 더 받아내기까지 한 것이다. 일부러 그랬는지 불을 켜지 않고 어두운 골목에 정차해서 차 안이 무척 어두웠다.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어 우리는 재빨리 가장 가까운 쇼핑몰 화장실로 들어가 잔여 현금을 세보았다. 돈이 대략 1000바트 정도 빈다. 우리는 처음에 1000바트를 낸 것이 맞다. 게다가 덜렁이인 나를 대신해 1000바트 단위 이상의 큰돈은 엄마와 동생이 반반 나눠 가지고 다녔다. 그들에겐 애초에 100바트짜리 지폐가 없었으므로 내게 100바트를 줬을 리가 없다. 200바트면 이동할 거리를 무려 1300바트를 내고 이동한 셈이다. 1100바트나 더 낸 것. 


 우리 돈 45000원 정도로 사실 큰돈은 아니지만 기분이 무척 상하고 말았다. 금액을 떠나 그냥 너무 불쾌하고 속상했다. 당시 현금을 꽤 가지고 있었고 카메라와 여권 등 다른 소지품이 있어 사람 많은 야시장에 갔다가 소매치기를 당할 것만 같고(당시 블로그 등 야시장 후기에 소매치기가 많으니 조심하라는 말이 많았다) 무엇보다 사람 많은 야시장에서 즐길 기분이 아니었다. 기껏 시간과 돈을 들여 이동한 야시장을 구경하지 않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을 야시장에서 먹으려고 계획했었는데 호텔로 그냥 돌아가게 되어 컵라면으로 부실하게 저녁을 먹어 더 속상했다. 나 때문에 가족들이 저녁을 굶다시피 하다니. 게다가 해외여행에서 한 끼가 얼마나 소중한데.


 자려고 누웠는데 내가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에 화가 나서 눈물이 났다. 게다가 뒷자리에서 동생이 분명 1000바트를 줬다고, 기어 옆에 떨어진 것 확인해 보라고 말까지 했는데 동생보다 기사의 말을 믿고 돈을 줘버리고 내린 내게 너무 화가 났고 자책했다. 이 일로 인해 그다음에 만난 모든 택시 기사를 의심하게 되고, 팁도 어지간하면 잘 주지 않게 됐다. 즐거웠던 방콕 여행을 떠올리면 이 불쾌한 기억이 먼저 나를 따라다녔다.



두 번째, 사기와 호구 그 어딘가

 치앙마이에서 호텔을 옮기는 날이었다. 도보로 10분도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마켓을 돌아다니며 산 물건들로 무거워진 캐리어가 있어 택시를 불렀다. 택시기사는 아주 나이스했다. 차는 비닐도 벗기지 않은 새 차였다. 차를 엄청 아끼는지 내부도 깔끔했다. 그는 캐리어 두 개는 트렁크에, 한 개는 조수석에 싣고 목적지로 갔다. 


 새 호텔에 도착해서 그가 조수석에 있는 캐리어를 꺼내는 동안 내가 트렁크에 있는 캐리어를 꺼내려고 들었다가 생각지 못한 무게에 놀라 캐리어를 살짝 놓쳤다. 곧바로 다시 들어서 혹시 흠집이 난 곳이 없나 살펴보았는데 별 거 없어서 다행이다 생각하고 말았다. 앞 좌석에 있다가 트렁크 쪽으로 온 기사가 오자마자 트렁크 쪽에 흠집 난 곳을 가리키면서 내게 돈을 요구했다.


 내가 봤을 땐 없었는데, 내가 캐리어를 놓친 건 사실이니(세게 놓친 게 아니고 한 3~5센티 정도 높이에서 살짝 놓쳤다가 다시 바로 들었다) 보상을 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새 차고, 차를 아끼는 것 같아 보여 미안했다. 미안하다고 진심을 담아 수차례 사과했다. 그가 2000바트(우리 돈 8만 원 정도)를 요구했다. 태국 물가로 2000바트는 과하다고 생각했고 놀랐다. 작은 흠집이지만 태국에서는 이 부분을 메우려면 전체를 다 도색해야 해서 돈이 많이 든다고 했다.


 아래 사진 속 흠집 중 파란 동그라미로 표시한 2개만 나로 인한 것이고 나머지는 원래 있었던 것이다. 전체 도색을 하겠다니 내게 원래 있던 흠집 메우는 비용까지 다 내라고 하는 셈이다. 사실 내가 냈다고 하는 흠집도 정말 내가 낸 게 맞나 의심스러운 것이 처음 가방을 떨어뜨리고 나서 내가 그 위치를 확인했을 땐 없었다(즉 다른 곳에 난 흠집을 내게 덤터기 씌운 것). 그리고 트렁크에서 가방을 꺼내다가 떨어뜨렸으면 저 트렁크 내부 검은 범퍼같이 생긴 부분으로 떨어지는 게 맞지 어떻게 큰 캐리어가 저기로 떨어져서 흠집을 내지? 저쪽에 흠집을 내려면 더 아래쪽으로 떨어져야 하는데. 내가 처음에 확인한 위치도 트렁크 내부 검은 부분과 그 바깥쪽 부분(빨간 동그라미 표시)이었다. 저곳을 보고 '아 괜찮구나' 하고 말았던 것.

 

동그라미 표시 없는 사진 원본
크게 보면 이렇다. 제일 오른쪽 위에 두 개가 내가 냈다고 하는 흠집, 아래쪽은 모두 원래 있던 것


 이 장면을 짐을 들어주러 나온 호텔 벨보이와 마중 나온 호텔 주인이 모두 목격했다. 그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돈을 달라는 택시 기사와 대치하다가 태국 사는 친척과 상의해 보겠다고 하고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헤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차를 아끼는 기사님께 피해를 입힌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컸고, 적당한 금액을 주고 합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말하는 영상을 찍어두기라도 할걸. 그 순간에는 당황해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체크인을 하고 생각해 보니 내겐 여행자보험이 있었다. 한국 여행사에 문의해 보니 서류를 갖추면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에게 톡으로 보험 처리를 하고 싶으니 해당 서류를 갖춰줄 수 있냐고 서류 리스트를 보냈으나 그는 만 하루 넘게 답장이 없었다.


호구의 결말

 그러다가 다음날 갑자기 전화가 와서 내가 있는 곳에 와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있던 식당 위치를 알려주었고, 그가 나타나서는 갑자기 말을 바꾸었다. 어제 나와 헤어지고 바로 수리받으러 갔었고, 수리비가 5900바트가 나왔다고 하며 간이 영수증 사진을 보여줬다. 말이 영수증이지 영수증 종이에 그냥 숫자가 쓰여 있는 거였다. 그리곤 차를 맡기면 4일간 일을 못하게 되는데 하루에 본인이 1000 바트씩 번다고(우리 돈 4만 원). 그러므로 차를 쓸 수 없으면 4000바트 손해가 추가된다고. 수리비 5900바트에 4000바트를 더해 1만 바트를 지불하면 보험 처리를 해주겠다고 했다.


 10분간 장황한 설명을 구구절절 늘어놓기에 말을 자르고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결국 그가 원한 것은 보험 처리를 하면 내가 본인에게 훨씬 많은 금액을 주어야 하고(1만 바트) 복잡하니 보험처리를 하지 말고 3000바트를 달라고 했다. 수리비 5900바트에다가 자기가 일 못해서 나는 손해까지 보상해야 하지만 수리비의 반만 지불하라는 얘기였다.


 어제는 2000바트라고 하더니 왜 말을 바꾸냐고 했더니 자기도 어제는 그 정도 금액이면 될 줄 알았는데 수리를 직접 받아보니 너무 금액이 많이 나와서 그런다고, 자기랑 반반 내는 거라고 했다. 내가 못 주겠다고 버티자 그럼 '어쩔 수 없지, 경찰서 가자'며 몇 번이나 당장 가려는 듯한 위협적인 행동을 취했다. 


 경찰서에 갈 필요도 없고 그의 이런 행동이 다 겁주려는 행동인 것을 당시에 나도 알고 가족들도 알았다. 그런데 그와 의미 없는 입씨름을 하느라 1시간 넘게 낭비하는 시간이 너무 아깝고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가족들은 다음날 출국이라 시간이 없어서 더 그랬다. 해가 지고 나면 돌아다니기 어려운 분위기라 낮 시간이 아까웠다. 결국 치앙마이 현지에서 10년 넘게 살며 일하고 있는 사촌에게 전화했고(멀리 있어 직접 오진 못했다), 사촌이 택시기사를 바꿔달라고 했다. 기사와 통화를 해 본 사촌은 저렇게 우기면 피곤하고 답도 없으니 그냥 원하는 금액을 주고 끝내는 게 낫다고 했다. 


 그가 하자는 대로 경찰서에 가면 어떻게 될까 해보고 싶었지만 더 낭비될 시간도 아까웠고, 가족들이 한국으로 돌아간 후 나 혼자 남은 이후에 경찰서에 간다 해도 혼자 그 일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으며, 현지 경찰이나 정비소 직원이 내 편을 들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 나도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아 결국 3000바트를 주었으나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마 또 오랫동안 치앙마이 하면 이 일이 떠오를 것이고,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호텔에 돌아가자 어제 이 상황을 목격했던 호텔 주인이 어떻게 됐냐고 물어서 3000바트를 줬다고 했다. 호텔 주인은 의아해하면서 2000 아니냐고 왜 3000이냐고 물었다. 사정을 설명하자 그녀는 화내면서 "그는 정말 나쁜 사람이다, 나의 호텔 직원과 내가 그가 어제 했던 말을 다 들었고 기억한다. 너는 운이 아주 나빴던 것이다. 니가 경찰서에 갈 필요도 없고 그는 나쁜 사람이라고, 정말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현지인이 흥분해서 이렇게 다다다 말할 정도라면 나는 또 당한 것이 확실하다. 


 나도 안다. 내가 호구였던 걸. 그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보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현장에서 바로 해결하지 않고 하루의 시간을 더 줌으로써 그가 판을 짜고 돈을 더 받아낼 방법을 궁리할 시간을 준 것이다. 그 수리비 영수증이라는 것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았으니. 이 때는 내가 흠집을 낸 것이 맞다고 생각했는데 다 끝나고 보니 사실 내가 낸 흠집이라는 증거도 없고 나도 확신이 없다. 


 사실 내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곧 출국 예정이므로 그의 연락을 받지 않고 잠적한다면 그는 나를 찾을 방법이 없다. 물론 호텔 앞에서 죽치고 있는다면 만날 수 있겠지만 어차피 호텔 체크아웃이 다음날이라 시간만 조금 끌면 됐다. 사실 아쉬운 쪽은 기사 쪽인데 내가 순순히 연락처도 주고, 먼저 라인 아이디도 알려주며 배상 의사를 밝혀서 내게 더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원래 큰 흠집 몇 개가 있었는데 내가 낸 흠집만큼은 당장 도색을 해야 한다고 우기는 것도 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저런 일이 생기니 너무 신경 쓰이고 머리가 아파 그냥 쉽게 해결하고 싶어서 돈을 주고 만 것이라 찜찜하다. 내게 씁쓸한 기억으로 남았지만 그가 또 다른 관광객들에게 이런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태국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좋은 것이지만(라이더들도 다 좋았다) 이렇게 한두 명의 사람들로 인해 생긴 나쁜 기억이 더 강렬하고 크게 남는 것이 안타깝다. 


 나도 적은 나이도 아닌데 어리숙하게 사기당하는 것 좀 멈춰야지. 아휴. 해외여행지에서는 언제나 긴장을 늦추지 말고, 힘 자랑 하지 말고 가방이 무거워 미안해도 기사님께 실어달라고 하고 차라리 팁을 드리자. 팁을 많이 줘봤자 3000바트보다 많을까. 그리고 중요한 것. 이런 일이 생기면 꼭 꼭 사진과 영상을 남기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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